'서양종교는 동양종교의 무위를 배워라'

아르눌프 지텔만의 <교양으로 읽는 세계의 종교>를 읽고서

등록 2006.02.22 14:35수정 2006.02.22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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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겉그림
책 겉그림예담
"나는 노자와 붓다의 세계, 유대교와 기독교, 마호메트의 복음을 내가 아는 그대로 독자에게 소개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명료한 부분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한 개인이 자신만의 종교를 가질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모든 종교는 그 안에 너무나 많은 것들을 담고 있고 너무나 다양한 형태를 지닌다. 종교는 수백 세대가 일궈낸 문화적 산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관점을 선호한다."

이는 아르눌프 지텔만이 쓴 <교양으로 읽는 세계의 종교>(예담·2006)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세계에는 그만큼 많은 종교가 있지만, 노자와 붓다, 유대교와 기독교, 그리고 마호메트와 관련된 종교들을 다루면서 그것만 들여다봐도 그 자체가 얼마나 방대한 것인지, 그것 자체만 해도 얼마나 다양한 형태를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모든 종교 내에는 하나의 틀로 짜 맞출 수 없는 독특한 형식이 있고, 그 형식 속에 담겨 있는 내용 또한 다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하나의 종교를 완전한 것으로 간주한다고 한다면 그것 자체가 불완전한 생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각각의 종교를 하나의 틀로 짜 맞추어 몰아세우려는 전체주의적인 종교관이야말로 엉뚱한 것일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아르눌프 지텔만은 2차 세계대전의 곤궁한 전후시대를 겪으면서 자라났다. 히틀러 치하와 유대교의 갈등 속에서, 종교란 무엇인지, 종교는 국가와 어떤 관계 속에 있는 것인지, 종교는 인간 개개인의 삶을 통제하고 보호해 줄 수 있는 것인지, 고민하고 또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갈등과 고민 속에서도, 그는 세계사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각각의 종교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그것이 바로 전쟁통 속에서 노자의 <도덕경>을 읽어 본 일이며, 그것이 철학과 사상을 뛰어넘어 종교적인 신념으로까지 올라설 수 있다고 내다 본 최초의 일이다.

이를테면 히틀러 치하에서는 오직 강한 것을 경배하는 자만이, 강한 국가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하지만, 노자는 모든 것을 물처럼 버리고 물처럼 받아들이는 자만이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고, 그것은 모든 통치 기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시작도 끝도 없는 일이요, 무위(無爲)를 통한 종교적 신념과 행위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누구도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완전한 합일과 일치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유대교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유대교와 개신교, 그리고 마호메트를 어떤 시각으로 봤을까? 물론 어린 시절에 봤던 종교관과 학문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들여다보는 종교관은 사뭇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바라보는 그 세 종교는 어떤 시각차가 있을까?

세 종교가 한 뿌리를 두고 출발한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아브라함 때를 전후로 모두 비슷비슷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양상으로 변했는지를 들여다보는 관점은 사뭇 독특하고 다르다.


무엇보다도 독특한 점이 있다면 유대교든 개신교든, 그리고 마호메트든 간에 세 종교는 모두 책을 통한 종교였다는 것이다. 다른 신화들도 그렇듯이 그들 종교들도 신이 원하든 원치 않던 간에 후대의 종교를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서 각각의 제의와 지침이 담긴 책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가 있다면, 마호메트의 알라는 신으로서 인간에게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하지만, 유대교와 개신교는 신과 인간의 계약을 통한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이를테면 <코란>에서는 알라에 대한 인간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것 자체가 신성모독이라는 것이고, 유대교와 개신교는 그만큼 신이 인간의 자유로운 의지를 허락해 준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살아남은 종교들이 앞으로도 계속 존속하려면, 자신의 지역주의를 수정해야만 한다. 특히 서구의 종교들은 더욱 바뀌어야 한다. 또한 그들은 하나의 중요한 사상을 도입해야만 할 것이다. 동양의 종교들에는 낯 설은 발전과 진화에 대한 사상, 이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 유대교와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는 초지일관 목적 지향적인 사유를 고수하고 있다. 이 세 종교는 단 하나의 목적이 실현되는 일직선상의 발전 과정을 신봉한다. 구원사로 이어지는, 이들 종교의 역사에는 우주적 완성 속에서 목표를 달성하는 단 하나의 시작이 있을 뿐이다."(340쪽)

그가 마지막에서 가장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다. 모든 사람, 모든 종교인의 마음에 와 닿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종교 나름대로의 지역주의를 극복하는 것이요, 종교 내의 전체주의적인 요소와 행동지침을 수정하는 일이다.

이는 자기 종교만의 우월성을 내세운 채 타종교에 대해 터부시하고 비판하는 일은 고쳐야 할 일이란 뜻이다. 종교적 수행을 해 나감에 있어서 서로들 배울 것은 배우고 좋지 않는 것들은 버릴 수 있기 위해서라도 서로의 종교들을 존중해 주는 길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서양 종교는 동양 종교에서 강조하고 있는 무위(無爲)를 통한 종교적 신념을 배우는 것도 좋은 일이지 않나 싶다. 채우고 쌓고 늘리는 결과지상주의에서 벗어나서 물 흐르듯 자연스레 흘러가게 하는 종교적 신념이 그것이다. 정복과 약탈과 억압의 틀에서 벗어나서 조화와 상생의 흐름을 타게 하는 것이 그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자기 종교만의 내용과 형식이 완전한 것이라 하여, 그 종교 내에 있는 모든 개개인들의 뜻을 무시한 채 하나의 틀로 짜 맞추고 몰아쳐 가는 일들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자칫 그런 일에 몰두하다보면 목표보다도 결과에만 치중하게 되고, 과정이 선하지 못하여 뒤틀릴 수밖에 없고, 결국 세상 사람들로부터도 크나큰 지탄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교양으로 읽는 세계의 종교

아르눌프 지텔만 지음, 구연정 옮김,
예담,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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