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훈련소 동기생이 보내온 특별한 편지

우정을 계속 잇고 싶다며 아들에게 안부 전달 부탁

등록 2006.02.22 18:05수정 2006.02.22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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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102 보충대에서 눈물을 훔치며 돌아서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등병 엄마가 된 지 벌써 한 달이 되었습니다. 아들이 자대 배치된 후엔 전화를 자주 하게 되어 편지 쓰는 걸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아들의 훈련소 동기생이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뜻밖에 받은 편지라 기쁨보다는 놀라움이 컸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손가락 끝이 파르르 떨렸습니다. 한 장은 아들에게 보내달라는 편지였고, 한 장은 우리 가족에게 쓴 내용이었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서명승 이병과 함께 23사단 훈련소 내무반에서 동고동락했던 동기 우승근이라고 합니다.
저희는 훈련기간 동안 서로 위로하고 웃으며 헤어지는 순간에도 눈시울을 붉힐 정도로 사이가 좋았었습니다.
그렇기에 이대로 서로 타인이 되어 추억 속에 서로를 묻어두는 것보다 다시금 서로간의 교류를 통해 각자의 소식을 알고 힘든 군 생활을 하면서 위로를 함께 얻고자하는 바램으로 이렇게 편지를 써보았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이병에게 이 편지를 보내 주십사하고 부탁을 해보려 합니다.
훈련소 시절 같이 생활하면서 본 이병은 틀림없이 선임들의 신뢰를 받고 빠른 시간 내에 훌륭한 한 명의 군인으로 다시 태어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쌀쌀한 날씨에 감기 조심하시고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서명승 이병의 동기
이병 우승근


편지를 읽고 나니 코끝이 찡합니다. 읽고 또 읽으면서 두 사나이의 모습을 생각합니다. 얼룩무늬 군복을 입은 씩씩한 장병이 편지 위를 스쳐갑니다. 듬직한 사나이의 우정에 마음이 따스해집니다. 그 소중한 만남이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우승근 장병에게 답장을 씁니다.

우승근 장병,


명승이를 잊지 않고 편지를 보낸 정성이 고맙고 기뻤다네.
명승이 아빤 뭔가 확실하게 해낼 녀석이라며 우 이병을 칭찬했지.

몸은 아픈 곳은 없는가?
이등병의 졸인 마음이야 말로 듣지 않아도 짐작이 가지만
우승근 장병은 잘 해낼 것으로 믿네.


어제는 남원을 가다가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낮은 계곡으로 들어섰다네.
얼음장 밑 계곡에 몸을 낮추어 흐르는 계곡물이 차갑게 느껴지지 않아서
손바닥에 물을 떠서 한 모금 마셨다네.

제 자리를 찾겠다고 서둘러 온 봄의 입김에도
계곡물은 쉼 없이 흘러 가파른 곳과 평탄한 곳에 따라
한결 같은 소리로 졸졸 흐르고 있었다네.

철저하게 자신을 희생하면서 순리대로 받아들이는
자연의 아름답고 순수한 섭리랄까?
저 높은 산등성이에서 이곳 아래에 이르기까지 겪어야했을
수많은 상처와 아픔을 헤아려보면서 이등병 명승이가 떠올랐다네.

이름만 들어도 안타까움이 답답하게 몰려오는 이등병.
우 이병의 부모님께서도 이병의 심정이 되어 그렇게 맘 졸이며
기다리고 계실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도 순리대로 살다보면
씩씩하고 당당한 병장이 되어 제대할 날도 그리 멀지 않겠지?
화이팅~~

2006년 2월 21일 서명승 장병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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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방문 후 놀랬다. 한창 나이 사십대에 썼던 글들이 아직까지 남아있다니..새롭다. 지금은 육십 줄에 접어들었다. 쓸 수 있을까? 도전장을 올려본다. 조심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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