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새싹을 기다리는 겨울나무입니다장옥순
이제는 적응할 때도 되었는데 아직도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습니다.
초임지였던 고흥, 젊음을 불사르며 열심히 달렸던 영광, 담양을 거쳐 구례에서 보낸 7년을 마감하고 다시 마지막 임지가 될지도 모르는 강진으로 내신을 낸 것은 순전히 남편때문이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명분에 밀려 생면부지의 땅을 찾아가는 내 마음은 겨울나무처럼 춥기만 합니다. 경력이 많아질수록,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힘들게 느껴지는 이 소심함때문에 며칠 전부터 입이 부르트고 입맛조차 잃어버린 내가 참 한심스럽습니다. 어서 빨리 개학을 해서 아이들을 만나면 나을 것 같습니다.
내가 이렇게 힘든 걸 보면 우리 아이들도 새로운 선생님에 대한 기대와 설렘, 특히 처음으로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1학년들의 스트레스가 얼마나 클지 짐작을 해봅니다. 우리 삶은 늘 새로운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임을 생각하며 긍정적이고 필연적인 만남이라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주어봅니다. 내 생애에서 꼭 만나도록 준비된 사람들, 아이들이라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벌써부터 아이들을 만나는 첫날에 입을 옷을 손질해 두고 첫인사를 생각하니 어서 빨리 아이들이 보고 싶습니다.
강진의 끝자락, 바닷가 마을에 자리한 마량초등학교는 초임지였던 고흥의 가화초등학교처럼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었습니다. 쌀쌀한 날씨에 살림집을 찾아다니며 초임지를 떠올렸습니다. 담벼락까지 바닷물이 들이치던 26년 전의 그 바다는 다시 돌아와 내 앞에 서 있습니다. 긴 생머리를 자랑하던 처녀선생님 대신 흰머리를 감추고 싶어하는 이 나이에 꼬마 친구들을 만나는 작은 떨림과 설렘, 새로운 시작에 대한 두려움으로 잠을 설칩니다.
이제는 빈 가지로 서 있는 겨울나무처럼 지난 시간을 훌훌 털고 새로운 시간을 잉태할 준비를 하고 싶습니다. 사랑했던 아이들과 시간들을 잊지는 않되, 연연해서는 안 되는 탓입니다. 저 겨울나무처럼 새봄을 준비하며 깊은 호흡으로 마음으로부터 새싹을 키울 준비를 합니다. 그리하여 아이들이 지나는 여정에서 만나 나의 정자에서 몸과 마음의 안식을 얻고 다시 앞으로, 먼 길을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