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방아쇠 당겼으니 응사는 당연하다?

[取중眞담] '전여옥 발언', 여야 논평도 위험수위... '막말의 성찬' 끝은?

등록 2006.02.24 19:08수정 2006.02.25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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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하한 것으로 알려진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이 24일 오전 의원총회에 참석해 김재원 의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하한 것으로 알려진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이 24일 오전 의원총회에 참석해 김재원 의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의 말이 '또' 문제가 되고 있다.

국회에서 탄핵당한 대통령을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야 할 미숙아에, 청와대 민정수석과 법무장관의 만남을 '불륜남녀'에 비유한 사람.

외국 순방에 나가는 대통령을 향해 "모처럼 나라가 조용해질 기회이니 오래 머무르라"고 권유하고, 차기 대통령은 대학을 나온 사람이 되어야 한다며 학력차별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사람.

국회 대정부질문·상임위에서 국무위원들의 얘기는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고성을 지르며 자기 말만 해대는 사람.

적어도 내 눈에 전여옥 의원은 그런 모습으로 남아있다. 전 의원으로부터 주로 공격을 받는 열린우리당과 청와대가 이런 사람을 좋아할 리 없고, 같은 야당인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에서도 그에 대한 평가는 호의적이지 않은 것 같다.

한나라당 지지층이라면 그의 발언에 후련함을 느낄 만한데, 의외로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는 사람도 많은 듯 하다. 전 의원의 말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될 때마다 한나라당 홈페이지 게시판에 "발언 취지는 십분 이해하지만, 지나친 독설은 당의 이미지에 누가 된다"는 식의 반응들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 그렇다.

선거라는 게 이쪽도 저쪽도 아닌 중간층을 잡아야 승기를 잡는 법인데, 야당의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지지층에게만 듣기 좋은 말을 해대는 그의 행동이 곱게만 보일 리 없다.


자극적 발언→비난여론→정당논평→흐지부지

항상 그렇지는 않았지만, 정치인의 발언 논란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수순을 밟곤 했다.


① 모 정치인이 정적을 자극하는 발언을 한다.
② 언론 보도에 분노한 대중들이 인터넷에 비난의견을 올린다.
③ 문제의 발언을 비난하는 정당 대변인들의 논평이 불을 뿜는다.


하지만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아마 이번에도 흐지부지될 것이다.

지금까지 정치권 공방들이 그런 수순이었으니 이번에도 그렇게 될 공산이 크다. 물론 정치인들이 진정으로 질낮은 국회의원의 발언이 문제된다고 생각한다면 여야를 막론하고 건성건성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여당이 전 의원을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제소할 방침을 밝히기도 했지만, 여야 공방 속에 대부분의 안건들이 논의조차 못하고 폐기됐던 윤리특위의 전력을 생각하면 이번엔들 제대로 처리될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전 의원의 발언에 분노한 여권 지지자들이 무기력한 열린우리당에도 삿대질을 해대니 여당 의원들이 뭐라도 하는 시늉을 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전 의원은 자신의 잘못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을 것이고, 그는 앞으로도 정적들을 자극할 발언들을 계속할 것이다. 전 의원이 '대선 승리를 통한 노무현 정권 심판'을 필생의 과업으로 생각하는 한 그의 독설은 선거가 다가올수록 강도를 더해갈 것이다.

전 의원이 이번 일을 반성하고 다른 정치인들의 반면교사가 되지 않는다면 이 모든 '정치적 액션들'은 헛소동에 불과하다.

'악의 꽃' '조로치매' '여의도개똥녀'... 막말엔 막말?

a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이 24일 오전 웃으며 의원총회장에 들어서고 있다.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이 24일 오전 웃으며 의원총회장에 들어서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그런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 바에야 내가 걱정하는 것은 전 의원을 비난하는 여야의 논평들도 위험 수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었다는 점이다.

이규의 열린우리당 부대변인은 전 의원을 '악의 꽃'이라고, 같은 당 유은혜 부대변인은 '조로 치매환자' '공주의 여자'라고 불렀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은 전 의원을 중용했던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에게까지 비난의 화살을 날렸다.

"전여옥 의원에게 비례대표 의원직을 주었고 대변인까지 시켰던 한나라당과 박근혜 대표가 이번 배설물을 깨끗이 치우고 국민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박근혜 대표는 지하철에서 개똥을 치우지 않고 내려 국민에게 비난받았던 개똥녀가 될지도 모른다. 박근혜 대표가 '여의도의 개똥녀'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박용진 민주노동당 대변인)

"박 대표가 전 의원에 대해 출당조치를 못한다면 긴 주름치마 광폭정치가 아니라 실제로는 미니스커트 짧은 정치를 하면서도 국민들을 기만하고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김재두 민주당 부대변인)


상대방이 먼저 논란의 '방아쇠'를 당겼으니 총 맞은 사람들이 '응사'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는 항변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분노의 총격전'이 정치권의 진정한 평화를 가져온 적이 있었던가? 상대당의 발언을 빌미삼아 '조로 치매환자' '여의도 개똥녀'라고 거친 반격을 되돌려준다면 언젠가는 더욱 거칠고, 질 떨어지는 재반격을 불러올 것은 자명하다.

막말 전투, 누가 제일 좋아할까

"네가 날 10대 때렸으니 나도 널 그만큼 쥐어박아야겠다"는 발상에서 나온 막말의 성찬이 오늘날 여야 의원들에게 상처를 주고, 끝도 안 보이는 정쟁으로 이어졌다. 반대당과의 '막말 전투'를 위해 다수의 대변인단을 두는 한국의 정당 시스템도 정치 선진국에서는 보기 힘든 진풍경이다. 이런 말을 하는 게 입이 아프고 짜증이 날 정도다.

전 의원의 막말 해프닝도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잊혀질 것이다. 비록 논란의 단초는 전 의원이 제공했지만, 대중들의 뇌리에 "정치인들이 또 시끄럽게 싸웠다"는 피상적인 기억을 하나 더 보태는 것이 걱정된다. 정치권이 수준 떨어지는 공방으로 인해 대중들의 손가락질을 받는다면 누가 제일 좋아할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어떻게 풀어야 할 지 앞길이 캄캄하지만 '전여옥 사건'에 가장 합리적인 반응인 것 같아 이낙연 민주당 원내대표의 말을 소개한다. 여야 공방이 첨예했던 2002년에 '큰 사고' 없이 여당 대변인을 맡았던 사람의 말이니 한번쯤 경청해봐야 하지 않을까?

"정치적 입장이 달라서 비판하더라도 좀더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이왕이면 품격있게 하는 게 설득력을 높인다. 나도 대변인을 1년 4개월 가량 해본 사람인데, 이렇게 야박하게 안 해도 충분히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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