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전여옥 '악재'..."공들이면 뭐하나"

한나라, 잇따른 설화 호남서 곤경...'오락가락' 대북관은 필연?

등록 2006.02.26 18:50수정 2006.03.01 15:39
0
원고료로 응원
"박근혜가 대표하면서 자주 내려오고 호남에 대해서도 신경을 쓰려고 하던데 그러면 뭐해? 좀 한다 했더니 (한나라당은) 역시 안 되나봐…."

지날 주말 광주 무등산을 오르던 한 등산객이 내뱉은 말이다.

a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하한 것으로 알려진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이 24일 오전 웃으며 의원총회장에 들어서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하한 것으로 알려진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이 24일 오전 웃으며 의원총회장에 들어서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최근 잇따른 '설화(舌禍)'로 한나라당이 곤경에 처했다.

이회창 전 총재는 김대중 전 대통령 방북에 대해 "시기가 아니라 방북 그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고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싸잡아 '친북좌파 세력'이라고 비난했다. 전여옥 전 대변인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치매노인'에 비유하며 6·15 남북공동선언을 폄훼해 정가를 뒤흔들어 놓았다.

구설수의 진원지인 이회창 전 총재와 전여옥 전 대변인은 한나라당의 간판급 인사라는 점에서 그 파장이 더 크다.

또한 공교롭게도(?) 이들의 공격이 '김대중'과 '북한'을 향해 있다는 점에서 지도부는 당혹스럽다. 두 아이콘은 김대중 정부의 최대 치적으로 꼽히는 6·15 남북공동선언의 의미를 뿌리째 흔드는 데까지 나아갔기 때문이다.

박근혜 체제 들어서 호남에 각별한 공을 들여온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왜 하필"이라는 탄식이 흘러나오고 있다. 한 당직자는 "평소 사석에서도 김대중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말해온 전 대변인이 왜 그런 얘기를 했는지 모르겠다"며 "당원들을 상대로 한 강연이라 분위기가 에스컬레이트(상승)되면서 튀어나온 말 아니겠냐"고 항변했다.


또한 이회창 전 총재에 대해서도 "요즘 그쪽(이 전 총재)이 흥분된 상태"라며 최근 '병풍' 등 각종 승소 판결이 나오면서 두 차례 대선에서 거푸 고배를 마신 원한을 드러낸 것 아니냐는 얘기다.

당내도 술렁술렁 "너무 나갔어"


그렇다 해도 "너무 나갔다"는 게 한나라당의 지배적인 분위기다.

박형준 한나라당 의원('수요모임' 회장)은 25일 CBS <시사자키>와의 인터뷰에서 "(전여옥 전 대변인의 말이 사실이라면) 대단히 부적절하다"며 "그 동안 한나라당이 호남 지역에 대해 나름대로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는데 특정 발언에 의해 무화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이회창 전 총재의 발언에 대해서도 "한나라당의 정체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며 거리를 뒀다. 박 의원은 "지금 한나라당에 필요한 건 좀더 유연하고 폭넓고 개방적인 사고"라며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이 남북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반대할 이유는 없다"고 비판했다.

한나라당 지역화합특위 위원장인 정의화 의원은 지난 24일 광주에서 열린 '국민의 정부 재평가 토론회에 참석해 "지역 화합에 찬물을 끼얹었다"며 대신 사과하기도 했다.

정 의원은 26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한두 분의 부적절한 표현으로 쓸데없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지역화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지역 민심도 술렁이고 있다. 광주시당의 한 관계자는 "최근 이런 발언은 호남과의 화해 노력을 기울어온 것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며 "어려운 여건에서 나름대로 일했는데 중앙 정치인의 말 한마디로 물거품이 되는 것을 많이 봐왔다"고 당 차원의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박광우 '참여자치21' 사무처장은 "서진정책을 펴는 와중에 그런 돌출행동이 나와서 그나마 성과마저도 일거에 날려버린 것이 아닌가"라며 "'국민소환제가 있다면 소환감'이라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고 전했다.

a 지난해 5월 정의화 한나라당 지역화합특위 위원장 등 5명의 한나라당 의원들이 전남 신안군 하의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가를 방문했다. 호남과의 화해를 위한 일환이다. 사진은 방문 당시 정의화(오른쪽)의원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형수인 박공심씨(앞줄 가운데) 허리를 만지며 "허린 괜찮으시네요, 건강하세요"하고 인사를 건네는 모습.

지난해 5월 정의화 한나라당 지역화합특위 위원장 등 5명의 한나라당 의원들이 전남 신안군 하의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가를 방문했다. 호남과의 화해를 위한 일환이다. 사진은 방문 당시 정의화(오른쪽)의원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형수인 박공심씨(앞줄 가운데) 허리를 만지며 "허린 괜찮으시네요, 건강하세요"하고 인사를 건네는 모습. ⓒ 오마이뉴스 이주빈

한 마디에 호남민심 물거품... "공들이면 뭐하나"

박근혜 체제에 들어 한나라당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관계 회복, 전향적인 대북 정책, 호남 껴안기 등의 행보를 보여왔다. 17대 국회 첫 의원 연찬회를 전남 구례에서 열고, 의원 전원이 광주 5·18 묘역을 참배하기도 했다.

또한 박 대표는 대표 취임 직후 김 전 대통령을 찾아가 "아버지 시절에 여러 어려움을 겪은 것에 대해 딸로서 사과한다"고 밝히고, 한나라당 대표로서는 처음으로 '6·15 남북 공동선언' 기념 행사에도 참석해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당 차원에서도 과거 '전략적 상호주의'(이회창)에서 '호혜적 상호주의'(박근혜)로 바뀌더니 최근엔 대북 상호주의 자체를 폐기하고 남북공존으로 선회했다. '퍼주기' 용어를 사용하지 말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특히 원희룡 의원 등 소장파 의원들은 호남에 직접 찾아가 현장 정치를 꾸준히 펼쳐왔다.

그 결과 때문인지, 1%대에 머물던 호남(광주·전라)에서의 한나라당 지지도는 2004년 2.8%에서 2005년 5.4%로 두 배 가량 높아졌다(한국사회여론연구소). 또한 작년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마의 40% 벽을 깬 데에는 수도권·30대·화이트칼라 외에 호남권이 '유입'되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대북 현안 나올 때마다 오락가락... "진정성에 의구심"

하지만 '김대중' '대북' 현안이 터질 때마다 한나라당은 혼란상을 연출했다. 최근 '김대중 방북'도 그런 연장선상이었다.

극단적인 사례는 한나라당에서 가장 '오른쪽'에 있는 김용갑 의원과 가장 '왼쪽'에 있는 고진화 의원이다. DJ 방북에 대해 찬반 입장으로 갈라진 두 의원은 최근 "얼치기 좌파, 누가 좀 안 잡아가나"(김용갑) "냉전의 쳇바퀴를 헛도는 다람쥐"(고진화)라며 상대방을 향해 거친 말들을 쏟아냈다.

박근혜 대표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박 대표는 북핵 등 대북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특사를 자청하기도 했고 "남북 문제에 있어서는 초당적으로 참여할 의사가 있다"고 밝혀왔다. 하지만 이번 김대중 전 대통령 방문에 대해선 "하필 선거를 앞두고 이뤄진다는 것은 의심받을 수 있는 문제"라며 '지방선거용'이라 규정했다.

의원 개인의 '돌출 발언'으로 여타의 혼란상을 일축하기엔 당 내부의 '필연적 요소'가 남아 있다는 시각이다. "전체 분위기와 다르지만 그런 목소리가 큰 것 자체가 한나라당의 한계"라는 지적이 그렇다.

이회창 전 총재는 한나라당 내에서 여전히 '살아있는' 세력이고, 전여옥 전 대변인은 박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정치인이다. 방북 시기가 연기되었음에도 "6월로 연기해도 선거에 영향을 미친다"고 여전히 불만을 드러낸 이방호 의원은 정책위의장이다.

특히 박 대표의 '유연한' 대북관은 '강경한' 국가정체성 입장과 배치되면서 진정성을 얻는 데 실패해 왔다. 한 당직자는 "사학법 장외투쟁 과정에서 강경한 태도로 비판을 받았으니 앞으로 호남, 대북에 대해서는 더 유연한 정책을 밝힐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선거용'으로 왔다갔다 그네타는 행보가 '근본적인 변화'를 예의 주시하는 호남 민심에 먹힐 지는 미지수다.

박광우 사무처장은 "한나라당의 서진 정책이 광주와 근본적으로 화해하지 않고 진행되고 있다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광양시청에 근무하는 한 공무원은 "한나라당의 노력을 일면 평가하지만 진정성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한나라, 호남에서 10% 나와도 '두자릿수 따낸다"

한편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은 불모지 호남에서 '희망의 싹'을 틔우겠다는 전략이다. 광주시장 출마에 공을 들여온 이정현 부대변인(전남 곡성 출신)은 한나라당의 의미있는 선전을 위해서라면 '참신한 외부인사'에게 양보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 부대변인은 "19년 동안 호남을 사실상 포기해 왔다, 나서는 후보가 없었다"며 "이번 선거는 득표보다 '호남 발전'에 대해 한나라당이 고민을 시작하는 장"이라고 '겸손한 접근'을 주문했다. 그러면서 "9.9%가 아닌 10.0%가 되더라도 두자릿수 지지율을 따낸 것"이라며 상징적 효과를 기대했다.

박 대표는 내주 일본 방문을 끝낸 뒤 귀국해 호남 등 취약지를 돌며 본격적인 지방선거 행보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a 지난 2004년 8월 전남 구례에서 사흘간 의원연찬회를 마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의원들은 광주 망월동 5.18묘지를 참배하고 헌화분향했다. 헌화분향을 마친 박근혜 대표와 김덕룡 원내대표, 의원들이 묘역을 둘러보고 있다.

지난 2004년 8월 전남 구례에서 사흘간 의원연찬회를 마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의원들은 광주 망월동 5.18묘지를 참배하고 헌화분향했다. 헌화분향을 마친 박근혜 대표와 김덕룡 원내대표, 의원들이 묘역을 둘러보고 있다. ⓒ 이종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겁나면 "까짓것" 외치라는 80대 외할머니 겁나면 "까짓것" 외치라는  80대 외할머니
  2. 2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3. 3 대세 예능 '흑백요리사', 난 '또종원'이 우려스럽다 대세 예능 '흑백요리사', 난 '또종원'이 우려스럽다
  4. 4 오빠가 죽었다니... 장례 치를 돈조차 없던 여동생의 선택 오빠가 죽었다니... 장례 치를 돈조차 없던 여동생의 선택
  5. 5 영부인의 심기 거스를 수 있다? 정체 모를 사람들 등장  영부인의 심기 거스를 수 있다? 정체 모를 사람들 등장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