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그런 못된 학부모가 되고 말았습니다

미쳐야 부모 노릇하는 이 땅의 교육 현실

등록 2006.02.27 17:44수정 2006.02.27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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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이 꺾이는 나이로 접어들 때까지 먹고 살면서 세상이 상식이 통하며 정의가 넘치기를 간절히 바라고 살아왔습니다. 언젠가는 그런 날이 이루어지겠지 하면서 하루 이틀 기다리다 보니 이제는 제 자식들이 삶을 고민하고 세상을 판단하는 나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아이들은 쥐가 고기 쥐어뜯듯이 나와 아내를 몹시도 닦달하고 애간장을 녹입니다.

내가 예전에 어머니 속을 썩힐 때에 어머니가 앙가슴을 주먹으로 치는 것을 보았는데 이제는 내가 내 가슴을 갈비뼈가 으스러지게 치고 싶습니다. 아마 그때 어머니에게 준 아픔을 이제 내가 당하나 봅니다. 이런 나날을 보내다 보니 세상을 향해 판단하는 일들이 무서워지고 나아가 심드렁해졌습니다.

나 자신 하나 건사하지 못하면서 세상을 향해 이러쿵저러쿵 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시달리면서 나 자신이 용해되고 급기야 모든 것을 감싸안는 액체로 변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 액체는 나를 세상에 흡수되고 세상에 순종해 버리는 결과에 빠지게 할 수도 있겠죠. 부모가 된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법이나 가치관을 변하게 하는 듯합니다.

나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우리 아이들이 크기 전에는 학부모들이 선생에게 우리 아이를 잡아 달라고 부탁하는 일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했죠. 부모들이 제 아이 하나 건사하지 못해 학교 선생에게 부모 할 일을 떠맡기나 하면서요. 그러나 지금은 그런 부모들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나도 지금 내 아이의 학교 담임을 찾아가 아이를 바로잡아달라고 부탁하고 싶은데요. 또, 그렇게 해왔고요.

부모의 힘만으로 아이를 잡기가 어려운 세상에 되어 버린 듯합니다. 과거에는 많은 형제자매들이나 한 동네에 사는 집안 어른, 동네 친구들이 함께 지내면서 모르는 사이에 생활을 바로잡아주고 생각의 모를 다듬어주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핵가족인 데다가 어른들은 일 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하고 친구들이라 해봤자 함께 게임을 하거나 군것질을 하는 관계일 뿐이죠. 함께 놀거나 부대끼면서 생활이나 의식에 영향을 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아이들이 제멋대로 자라나고 버릇도 없으며 인간관계도 제대로 맺지 못합니다.

부모들은 맞벌이가 많아 아이들과 함께 오래 지내거나 언행에 영향을 줄 시간이 많지 않을 뿐더러 늘 피곤해 귀찮아지기도 합니다. 이러니 제멋대로 자라는 아이들을 부모가 학교 선생님에게 부탁할 수밖에요. 그나마 아이들이 공동체를 이루며 인간관계를 쌓는 곳이 학교이며 또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곳이 학교이기도 하니까요.


때로는 무서운 선생님을 만나 매를 맞기도 하면서 좀 엄하게 생활하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나는 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면서 체벌을 반대하고 아이들에게 체벌을 하지 않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자식들이 중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는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학원에 보내지 않으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이 쓸데없는 입시 공부나 선행학습에 시달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막상 아이들이 중고등학교에 들어가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제발 학원에 다니라고 사정을 합니다. 물론 대놓고 부탁하거나 강요하지는 않지만 은근히 그렇게 해주기를 바랍니다.


요즘 아이들은 집에서 혼자 공부를 하는 능력이 없는 듯합니다. 책상에 앉아서 스스로 공부할 거리를 챙겨 공부의 진도를 나가거나 문제 해결을 위해 끝까지 버티지를 못합니다. 공부를 누군가 시켜줘야 하는 세상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학원이 바로 이런 구실을 하는 것이지요. 물론 부모들이 맞벌이하여 아이들과 함께 공부할 시간이 없어서 그런 점도 있겠지요. 또, 공부의 양이나 질이 예전과는 달리 아주 많고 깊기 때문에 부모의 힘으로 도와줄 수 없는 이유도 있겠지요.

어찌됐든 아이들은 학원에 나가거나 과외를 하지 않으면 공부를 하지 않으니 나로서도 아이를 학원에 나가라고 권유할 수밖에요. 그리고 집에 있으면 텔레비전을 시청하거나 컴퓨터게임을 하는데 일단 밖에 나가 있기를 바랄 수밖에 없습니다.

가족끼리 오순도순 대화하며 정을 나누는 시간은 아예 존재하지 않으니 차라리 아이들이 학원에서 공부를 하기를 바랍니다. 학원에서 공부를 하지 않더라도 그 시간만큼은 거기에서 생활하니 안심이 되기도 하고요. 학원이 가정을 대신하여 아이들을 수용하고 있는 셈이지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에 성적을 두고서 그 아이의 미래를 평가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예컨대, 공부를 잘 하면 편하게 잘 살 수 있고 좋은 직장뿐만 아니라 좋은 배우자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을 금기로 삼았지요. 교사로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스스로 교사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니까요. 나아가 공부 잘하는 아이들보다는 오히려 못하는 아이들에게 더 관심을 쏟고 격려를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내 아이들이 중고등학교에 들어간 후에 성적표를 여러 번 받아보고 나서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갑자기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되는 것입니다. 공부 잘 한다고 인생이 행복한 것은 아니라고 단언하던 학교에서의 태도를 집에서는 견지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내 아이가 공부를 지지리 못하여 대학에 못 가거나 그렇고 그런 대학에 가 등록금만 날리고 졸업 후에 백수로 생활할 일을 생각하니 미래를 생각해서 공부 좀 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고 말았습니다.

심지어는 공부하는 정도에 따라서 내 미래의 편안한 정도가 달라진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고 하고 있으니 너무 이중적이지요. 아이들의 순간순간 삶에 의미를 두고 그것에 행복의 기준을 두라고 말해야 당연한 것인데 세상은 나를 이렇게 두지를 않는 듯합니다. 참 서글픈 일입니다. 세상에서 정의를 찾고 상식을 찾아 헤매었건만 이제 와서 자식들에게는 세상의 현실을 직시하여 거기에 맞추어 살라고 설득하고 있으니 이를 어찌해야 합니까?

아이가 공부를 우연히도 잘하고 있다면 여유를 갖고 세상 현실과는 좀 거리가 먼 가치를 주고받을 수 있겠지만, 공부를 못하여 뻔한 낙오자의 길로 가는 것을 보고서는 세상 현실에 영합하는 가치를 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현재 우리나라 부모들의 고민인 듯합니다.

갈수록 소신 있게 자녀들을 키우고 교육 환경을 바꾸는 부모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 현실에 빠져 현실의 가치를 버리고서는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는 나로서는 감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그리고 학교 교사로서의 가치와 부모로서의 가치도 갈수록 간격이 벌어만집니다. 이렇게 나가다가는 학교에서조차 아이들에게 현실에 맞추어 살라 하면서 성적에 급급해하는 선생이 될 것만 같습니다.

혹자는 부모가 되어 봐야 세상을 안다는 말을 하지요. 그러나 이 세상에서 부모가 된다는 것은 이렇게 끔찍한 가치를 떠안아야 하니 세상을 아는 것일까요, 아니면 세상을 이기려고 하는 것일까요. 나의 미래는 점칠 수 있지만 자녀들의 미래는 점칠 수 없으며 운에 맡겨야 하는 이 세상이 답답할 뿐입니다.

어제 학원 숙제 하느라 엄청난 스트레스 받다가 엊저녁 늦게까지 텔레비전을 보던 아이들은 아직도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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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사람을 위해 필요한 교육을 하고자 몸부림치는 고등학교 교사입니다. 또한 이 세상이 정의와 평화가 넘치는 곳으로 바뀌기를 간절히 염원하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학교에서 경험한 일을 토대로 우리가 짚고 넘어거야 할 문제를 알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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