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이후 북한은 줄곧 '미국위협론'을 주장해왔다. 특히 부시 행정부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예방적 선제공격 대상에 북한을 포함시키자, 북한에 대한 '미국위협론'은 북한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비교적 공감하고 있는 내용이다.
미국이 1만개 이상의 핵무기를 갖고 있고, 북한보다 약 200배의 군사비를 사용하고 있으며,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수만명의 미군을 한국 땅에 주둔시키고 있는 것은 이러한 위협의 '물리적 근거'인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 가운데 비교적 온건파로 분류되는 로버트 아인혼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고문과 국제위기감시그룹(ICG) 동북아 소장인 피터 벡은 위의 내용과 상반된 주장을 내놓았다.
클린턴 행정부 때 북한과 미사일 협상 대표를 맡기도 했던 아인혼은 지난 2월 14일 평화네트워크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정권이 미국의 위협을 거론하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다"며 "이는 북한 정권이 주민들을 통제하고 권력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나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북한의 '미국위협론'은 정권유지를 위해 왜곡·과장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인혼은 미국이 주한미군의 주둔 및 군비증강을 정당화하기 위해 '북한위협론'을 활용하고, 한반도의 긴장 유지를 선호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위협론'을 이용하는 당사자는 부시 행정부가 아니라 김정일 정권이라는 것이다.
피터 벡 "북한의 최대 위협은 남한"
피터 벡 소장 역시 북한이 미국의 위협을 거론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반응이다. 벡 소장은 지난 2월 22일 평화네트워크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네오콘들조차도 북한과의 전쟁은 극도로 파괴적일 것이라고 여긴다"며 "미국은 북한과 전쟁을 하기 원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북한과의 전쟁은 "너무나 비용이 많이 들고, 관리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에, "미국은 어떤 경우에도 고의적으로 북한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의 위협은 북한이 대결국면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든 핑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걸음 더나가 "북한 정권에 대한 진정한 위협은 남한이다"고 말했다.
벡 소장은 그 근거의 하나로 최근 남한을 방문했던 북한의 여성 응원단 일부가 수용소에 수감되었다는 보도를 근거로 들었다. 이는 북한은 정치적, 경제적으로 실패한 정권인 반면에 남한은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성공했기 때문에 "북한 정권에게 근본적인 위협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울러 북핵 문제 해결의 열쇠는 북한이 쥐고 있다며 "현재 그들은 해결책을 찾고 있는 것 같이 보이지 않고, 오히려 현재 상황을 즐기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북한도, 중국도, 미국도 정말로 타협점을 찾고자 하는지 의심스럽다며, 2000년까지 평화적 해결도 힘들고, 군사적 충돌도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현상태로 유지될 것으로 전망했다.
왕이쩌우 부소장 "부시 행정부가 가장 큰 문제"
위에서 언급한 미국의 두 전문가들과는 달리, 왕이쩌우 중국사회과학원 세계경제정치연구소 부소장은 북한이 핵 개발에 나선 데에는 미국의 대북 위협을 비롯한 대북강경책이 가장 큰 요인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평화네트워크에 기고한 글을 통해, 북핵 문제는 근본적으로 "동북아 지역의 냉전 구조와 떼어놓고 생각해 볼 수 없으며, 특히 21세기 들어 세계 유일 초대강국인 미국의 적대 정책과도 관련이 있다"고 강조했다.
왕 부소장은 부시 행정부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김정일 위원장을 "독재자"로 표현함으로써 북한의 불안감을 증폭시킨 것이 북핵 문제 재발의 가장 큰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그는 최근 북한을 방문해 보니 "북한 국민들의 심적인 압박감과 미국인들에 대한 분노"가 대단히 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북핵 문제 해법도 이러한 맥락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왕 부소장은 "미국이 적대정책과 오만한 태도를 바꾸고, 김정일 정권 전복을 목표로 삼지 않으며, 아울러 무력을 동원하여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철회하기만 한다면, 중국을 포함한 주변 국가 및 국제사회는 북한이 핵 의혹을 해소하고, 핵을 포기하고 합리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한반도에 존재하는 각종 대립적 요소들을 제거하도록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북핵 문제 해결의 최대 관건은 부시 행정부의 태도 변화 여부이며, 부시 행정부가 대북 적대정책을 철회한다면,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들은 북한의 핵포기에 대해 설득과 압박을 병행할 수 있다는 것이 왕 부소장의 요지인 것이다.
한반도의 최대 위협은 어느 나라?
이처럼 핵문제를 둘러싼 북미간의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문제의 원인과 해법에 대한 해외 전문가들의 인식도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위협'을 이용하는 당사자는 누구이고, 그들의 주장은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 북핵 문제 미해결의 가장 큰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등을 둘러싼 논란은 더욱 거세게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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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인터뷰와 기고문 전체 내용은 평화네트워크 홈페이지(www.peacekorea.org)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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