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은사 가는길에 만난 백제의 숨결

삼일절에 광복의 의미와 친일 청산을 되새기며

등록 2006.03.02 10:46수정 2006.03.02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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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공산성 입구

공산성 입구 ⓒ 유병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매표소를 지나 금서루가 있는 공산성 서문에 들어선다. 조선시대 공주목사로 부임하였던 김효성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가 보인다.

영은사 가는 길은 두 갈래로 나눠진다. 곧장 가면 성안마을과 공북루를 지나 영은사로 가는 길이 나오고 오른쪽으로 가면 오솔길을 지나 진남루를 거쳐 영은사로 가는 길이다. 오늘은 운동 삼아 나온 길이라 우측으로 발길을 돌렸다. 대략 한바퀴 도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2시간 남짓이다.


a 금서루(錦西樓)와 성벽길

금서루(錦西樓)와 성벽길 ⓒ 유병관

북쪽 금강(전망대)을 뒤로하고 바라보면 성문 위에 지어진 금서루와 성벽길이 보인다. 그리고 성곽주변에 진달래, 산철쭉, 개나리로 수종을 바꾸는 작업이 한창인 듯하다.

공산성의 경우도 성의 동서남북 사방에 성문을 두고 있는데 남문과 북문만이 그 본래의 형상을 간직한 것이다. 특히 북문에 지어진 공북루는 조선시대 문루건축의 대표적인 것으로 꼽히고 있다. 또한 남문에 지어진 진남루는 <여지도서>의 기록과 일치하여 역사적 가치가 있는 문루 건축물이다. 서문에 지어진 금서루와 동문에 지어진 누각은 문헌기록과 유적조사에 의한 실증을 거쳐 근래에 복원한 것이며 문루는 조선시대 성문의 일반적인 양식에 따라 지어졌다.

a 공산성 안내도

공산성 안내도 ⓒ 유병관

공주에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사찰이 많다. 여름철 가족단위 휴가로 안성맞춤인 마곡사를 비롯하여, 갑사, 동학사, 신원사 등이 있다. 이들 사찰들은 공주의 명산 계룡산과 태화산 자락 깊은 곳에서 유구한 세월을 함께 하고 있다.

특히 공주시 금성동에 위치한 공산성(公山城)은 사적 제1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백제시대에는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으나 조선시대에 석성으로 고쳐 쌓았다. 백제 성왕 16년(538)에 부여로 도읍을 옮길 때까지의 백제 도성이었으며, 이후 조선시대까지 지방 행정의 중심지였던 곳으로 역사적 가치가 크고 연구할 가치가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a 명국삼장비(明國三將碑)

명국삼장비(明國三將碑) ⓒ 유병관

정유재란 때 충주에 주둔하면서 왜적의 위협을 막고 선정을 베풀어 주민들을 평안하게 하였던 명나라 장수 이공, 임제, 남방위의 사은 송덕비이다. 그들의 은덕을 기리기 위해 1599년(선조 32년)에 금강 변에 비석을 세웠는데 홍수로 매몰되어 흔적을 알 수 없게 되자 1713년(숙종 39년)에 다시 세운 것이다. 일제 침략기에 일인들이 왜구(倭寇)등의 글자를 지워 공주읍사무소 뒤들에 묻었던 것을 1945년 발굴하여 현재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a 광복루(光復樓)

광복루(光復樓) ⓒ 유병관

원래 공산성 내에 주둔한 군대를 지휘하는 중군영의 문루이다. 일제 침략기 초에 일제가 공산성의 북쪽문인 공북루 옆에 있는 문루를 이곳으로 옮기고 웅심각 또는 해상루라 하였다. 1946년 4월에 김구(金九)선생과 이시영(李始榮)선생이 와서 나라를 다시 찾았음을 기리고자 광복이라 하여 광복루로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a 임류각(臨流閣)

임류각(臨流閣) ⓒ 유병관

임류각은 서기 500년(백제 동성왕 22년)에 왕궁 동쪽에 지은 건물로써 왕과 신하들의 연회 장소였을 것으로 보인다. 1980년 공산성 발굴조사로 임류각터를 발견하고 1993년 정방형에 가까운 2층 누각을 지었다.
건물의 단청모양은 무령왕릉에서 나온 장신구 및 현실의 벽돌에 있는 무늬를 많이 활용하였다.


a 연지(蓮池)

연지(蓮池) ⓒ 유병관

공산성 북쪽의 금강과 영은사 사이에 있는 이 연못은 가장자리를 돌로 층을 쌓아 무너지지 않도록 하였다. 수면에 접근할 수 있도록 북쪽과 남쪽에 계단시설을 하였다. 위가 넓고 아래가 좁은 형태이다.

금서루에서 공북루까지 성벽 길을 따라 가자면 숲길로 이어지는데 초입에 느티나무 고목 서너 그루가 이 성의 내력을 짐작케 하고 있다. 숲길을 지나면서 강가로 돌아나가는 성벽은 숲에서 벗어나고 공북루가 있는 북문을 향해 급한 경사를 이룬다.

a 고즈넉한 영은사(靈隱寺)

고즈넉한 영은사(靈隱寺) ⓒ 유병관

마당 앞 금강 가에 백제 때의 유적 공산성 연지와 전통 누정건축물 만하루가 있으며 그 너머로 금강이 흐르고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또 성벽과 오솔길을 걸으며 가는 길 곳곳에 금서루와 진남루, 공북루 같은 건축문화유산이 함께하니 하루 여행길에 보고 느끼는 것도 많은 여행지이다

영은사는 그 규모의 단출함이 인상적이며 소박하기까지 하다. 4단의 석축을 쌓고 다듬은 경사면에 1단의 기단을 쌓고 지어진 강당과 요사에 비해 적은 규모의 원통전. 그래서 더욱 단아해 보인다. 인적 또한 드물어서 고즈넉한 영은사. 2시간을 넘게 걷다 보니 손이 매우 차가웠다. 장갑을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바람이 불어와 처마를 스치면서 풍경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몸은 차가웠지만 마음만은 청량감을 느낄 수 있었다.

a 쌍수정(雙樹亭) 사적비

쌍수정(雙樹亭) 사적비 ⓒ 유병관

a 한참 공사 중인 쌍수정

한참 공사 중인 쌍수정 ⓒ 유병관

1734년(영조 10년)에 관찰사 이수항이 인조를 기리기 위해 세운 정자이다. 이괄의 난을 피하여 왕이 공산성에 머물렀을 때 두 그루의 나무 밑에서 반란의 진압소식을 기다렸다고 한다. 난이 진압되자 왕은 쌍수에 정삼품 통훈대부를 명하고 성을 쌍수성이라 부르도록 하고 한양으로 돌아갔다. 영조 때에 이수항이 관찰사로 부임하여 나무가 늙어 없어진 자리에 삼가정을 건립하였는데 이 건물이 쌍수정이다.

공주의 유명한 사찰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금강 곁에 자리한 고즈넉한 영은사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백제의 웅진시대를 열었던 역사적 현장 공주 공산성(公州 公山城) 안의 북쪽 끝에 자리 잡고 있는 곳….

영은사 처마를 스치는 풍경소리가 다시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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