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금치가 아니라 우금티입니다

지명은 그 역사성을 살려 불러야

등록 2006.03.02 15:50수정 2006.03.02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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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금티'는 공주에서 부여로 넘어가는 길에 있는 고개 이름이다. 그런데 이 고개 이름을 '우금치'라고 하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혹자는 혼동 끝에 어느 게 맞느냐고 묻기도 한다. 어학적으로 말하면 둘 다 맞다. 하지만 지명의 역사성을 고려하면 하나로 통일하는 것이 옳다.

우리 역사에서 순수한 우리말을 대대적으로 한자어로 바꾸어 표기한 적이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당나라 문물을 수용한 신라 진흥왕 때고, 또 한 번은 일제가 세밀한 측량을 거쳐 지도를 새로 만들면서 모든 지명을 한자로 표기할 때였다.


그런데 우리말을 한자어로 바꾸면서 원래 이름과는 전혀 다른 뜻의 글자가 사용되기도 했다. 크다는 뜻을 가진 우리말 '마'를 그 발음이 같다는 이유로 가축 '말'을 뜻하는 글자로 바꾼 것이라든지, '위'를 뜻하는 우리말을 가축 '소'를 뜻하는 글자로 바꾼 것들이 그 예다.

원래 고개를 뜻하는 순수 우리말은 '티'나 '재'다. 그런데 한자에는 '티'를 적을 수 있는 글자가 없다. 그래서 새로 글자를 만들었다. 그 글자가 바로 '치(峙)'다. 따라서 이 한자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쓰이지 않는다. 국어학적으로 보면 '치'는 '티'의 구개음화된 발음이다.

이 글자가 만들어짐으로 해서 우리말 고개 이름이 한자로 표기될 수 있게 되었다. 공주 주변의 몇 예를 들어보면 공주에서 논산 가는 길에 있는 '널(늘)티'를 판치(板峙)로, 반포 가는 길에 있는 '마티'를 '마치(馬峙)'로, 청양 가는 길에 있는 '한티'를 '대치(大峙)'로 바꾸어 쓰게 된 것이다.

지명은 보수성이 강해 새로운 이름을 만들어도 옛 이름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도 한자 이름과 우리말 이름이 함께 사용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우금티'와 '우금치'도 이 같은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대개 지명에는 그 유래에 얽힌 전설이 있게 마련인데, 우리말 지명이 한자로 바뀌면서 엉뚱한 이야기가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큰 고개'를 뜻하는 '마티'에 말 (馬)과 관련된 전설이 생겨나는 것이 그런 예에 속한다.

조심스럽긴 하지만, 널리 알려진 우금티 전설도 이와 관련하여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나 한다. 만약 '우금티'가 순수한 우리말이라면 이를 한자로 바꾸는 과정에서 이런 오해로 인해 '소'와 관련된 전설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필자의 은사인 동초 선생은 우금티를 원래 '윗곰티'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 추정이 맞는다면 도적이 많아 소를 끌고 늦게 가지 말라고 해서 우금(牛禁)이라 했다는 전설은 그야말로 엉뚱한 조작이 아닐 수 없다. 또 이 전설의 신빙성이 문제되는 것은 일부 문헌에 이 고개 이름의 한자 표기가 우금치(牛金峙)라고 된 것에서도 다시 확인된다.

본디 지명은 특정한 땅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지만 이 이름에 역사성이 덧붙으면 그 이상의 의미를 생성해 내기도 한다. 아인슈타인은 이런 시간과 공간의 불가분성을 '스페이스타임'이라는 용어로 정리했고, 미하일 바흐찐은 '크로노토프'라는 개념으로 재정립했다.


예를 들어보자. '청산리'는 저 북녘 땅의 작은 마을 이름이지만 우리에게는 김좌진 장군의 통쾌한 항일 전투 승리를 떠올리게 한다. '황산벌'은 논산 지역의 작은 들이지만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우리는 결사 항전하던 계백 장군을 떠올린다.

우금티는 고개 이름이면서 동시에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그 역사는 두말할 필요 없이 동학농민전쟁이다. 그로 인해 이곳은 국가 사적지(제387호)로 지정되었다. 또 특별법에 의해 이곳에서 산화한 분들의 명예회복과 서훈도 추진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동학농민전쟁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하고 있는 분들도 있다. 반면 자발적으로 나서 이 역사적 사건의 의미를 계승하고 확산시키고자 하는 시민 단체도 있다. 한 세기 전 처절한 전투 끝에 스러져 간 무명 농민군들의 구호(자주, 평등, 대동)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치열한 세계화 경쟁 시대에 우리가 살아남을 길은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금티동학농민전쟁기념사업회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전문가의 고증을 거쳐 이 고개 이름을 '우금티'라고 불러오고 있다. '우금치'라고 해서 어학적으로 틀리는 것은 아니지만 지명의 역사성을 감안한다면 반드시 그 고유성을 살려 불러야 할 것이다.

따라서 공주시청을 비롯한 여러 자료에 '우금치'라고 표기되어 있는 것은 '우금티'로 통일하여 혼동을 줄여야 한다. 이제부터는 '우금치'가 아니라 '우금티'라고 바르게 불러주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충남 공주 <백제신문> 133호(2월 27일자)에 실렸던 것을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충남 공주 <백제신문> 133호(2월 27일자)에 실렸던 것을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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