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 380회

등록 2006.03.03 08:07수정 2006.03.03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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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사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면서 잠시 풍철한을 노려보았다. 이제 말해 줄때도 되었으련만 여전히 뭔가를 숨기고 있다. 내심 짐작가는 바도 있고, 함부로 발설할 일이 아니라 그럴 것이라 이해는 하지만 자신에게까지 함구하고 있는 것에 대해 섭섭함을 지나 노여움까지 치미는 것이다.

“정주에 육양수 어른의 친구가 어디 있어요? 친구 만나러 가시는 분이 그렇게 조심스럽고 은밀하게 정주에는 왜 가고, 더구나 왜 그리 허겁지겁 밤길을 달려오셨던 거죠?”


풍철한은 내심 뜨끔했다. 공연히 손으로 톡톡 연못에 지풍을 날리며 잉어 떼들만 못살게 굴고 있었다.

(노인네도 이젠 늙으셨군. 단사의 이목에 걸리시다니....)

그는 내심을 감추며 말을 돌렸다.

“주모께서는 담가장을 떠나신 후 어디로 움직이고 계신 것이냐? 아무래도 영 마음에 걸리는구나.”

“언제 오라버니보고 주모 걱정을 하시라 했어요? 이쪽을 향하시도록 유도했으니 걱정하실 필요 없다구요. 옥형위 이개조를 은밀하게 붙여 놓았으니 그리 위험하시지는 않을 거예요.”


“그래도 아이를 가진 몸인데....”

계속 딴청을 부리며 말을 돌리려 하자 단사가 쟁반을 소리 나게 난간에 내려놓았다. 쟁반 위의 사발이 쓰러질 듯 흔들리며 데구르르 소리를 냈다.


“오라버니....!”

“귀 안 먹었다.”

단사가 빽 지르는 고함에 풍철한이 마지못해 단사를 바라보았다.

“이제 알려주실 때도 되었잖아요? 모용정과 독접이 정주로 도망간 건가요? 그녀들을 뒤쫓아서 무엇을 알아내신 거죠? 우검 조장은 어디 있다가 육양수 어른과 동행하게 된 것이냐구요? 그녀들을 붙잡아 오지도 않고 단지 뒤쫓는데 풍검조장까지 동원할 필요가 있었어요?”

한 번 터져 나온 그녀의 질문은 끝이 없었다. 하늘이 여자들에게 부여한 한순간에 저렇듯 십여 가지 질문을 쏟아내는 능력은 사내들에겐 아주 불편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더구나 뭔가 감을 잡고 따지듯 묻는 통에 풍철한은 어떻게 변명할 것인지가 아니라 어떤 질문부터 대답해야 할지 분간 할 수 없었다.

허나 분명한 것은 이제 단사와 상의할 때가 되었다는 점이었다. 단사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고, 그녀의 정보는 그가 지금까지 생각하고 조사해왔던 것을 구체화시켜 줄 것이었다.

“너도 이미 짐작하고 있는 것을 굳이 내 입으로 듣기를 원하는구나....”

풍철한이 어색한 웃음을 접었다. 단사의 얼굴에 얼핏 긴장된 표정이 흘렀다. 풍철한의 표정을 보니 이제 모두 말해줄 모양이었다.

“지금부터 우리 내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나에게 말해 봐. 특히 우리 형제들과 딸려있는 조장들의 움직임에 대해서 말이야......”

풍철한은 그녀가 짐작하고 있었던, 그래서 조사해왔던 사실부터 알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녀는 그녀가 파악했던 모든 사실을,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해할 수 없었던 일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

“그 때 죽였어야 했어...... 그 기회를 놓친 것이 천추의 한이 되는군.”

방백린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미 지나간 일을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그는 앞에 놓인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다시 물었다.

“금룡기주가 손속에 정을 두었던 것은 아닌가? 그 알량한 도리라는 것 때문에 말이야....”

“봐준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금룡기주는 스스로 그 자의 검에 죽기를 바랬지만 그 자를 죽이고자 했던 것은 사실인 모양입니다.”

좌상 과노인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동귀어진이라도 하려 했다는 말인가? 그 자가 그 정도였던가?”

방백린은 사실 아직까지 믿을 수 없었다. 전월헌은 아직까지 나타나고 있지 않았다. 금룡기주를 죽일 정도의 능력이 있다면 전월헌으로서는 벅찼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아직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상황에서 전월헌이 죽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는 일. 문제는 과거와 달리 무섭게 성장한 그 자의 무위였다.

“지켜보았던 후송의 말입니다.”

“후송노인도 그렇지 그래 친구가 그 자 손에 죽은 것을 보고도 그 자를 고이 내보내주었단 말이야? 아무리 친구가 부탁을 했더라도 그렇지....쯧....”

“그 자는 왼쪽 어깨가 심하게 다친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 기회는 있습니다.”

“어쩔 수 없군. 본 곡에 들어오기 전에 처리하는 수밖에..... 결국 유항밖에 없겠군.”

“주모까지 나서 직접 처리하시기에 너무 위험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이 안의 일을 처리하기도 빡빡한데 다른 손을 빌릴 수 없는 일 아닌가?”

“공격을 잠시 늦추심이 어떠하신지.....?”

“시간이 없어. 저들은 이미 외부와 연락을 하기 시작했어. 더구나 달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황이 우리에게 매우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어. 이 시기를 놓치면 대업에 지장이 오게 돼.”

기국공(淇國公) 구복(丘福)이 십만 정병을 이끌고 달탄을 향해 정벌을 떠난 일을 말하는 것일 게다. 사실 황실에서도 촉각을 세우고 있었지만 전황은 매우 불리하게 보고 되고 있었다. 추가 병력을 파견할 것인지, 아니면 퇴각을 시킬 것인지 갑론을박으로 뒤숭숭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예정대로 내일 새벽을 기해 공격하도록 하게. 문제는 섭노야와 장철궁, 등자후야..... 우상(右相)은 도착했는가?”

“오늘 저녁이면 천심관(天心關) 폐관을 끝낼 모양입니다. 대신 둘째 공자께서 폐관에 들겠다고 하셨습니다.”

“수(秀)... 그 아이가?”

“아마 이번 그 자를 마차에 태우고 돌아오는 과정에서 자신의 실수를 스스로 용납하지 못하시고 계신 듯 합니다. 그 동안 천무관(天武關)에서 무공수련만 하시고 계셨습니다.”

“그 녀석 그 동안 게으름을 피운 대가지. 아마 그 자의 무위를 보니 정신이 든 모양이군.”

두 사람의 대화를 보면 모용수에 대해 말하는 것인 듯 했다. 좌상 과노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차라리 우상이 폐관을 끝내면 그 자를 처리하게 함이 어떠신지.....?”

생각해 볼 문제였다. 하지만 공격이 시작될 때 섭장천이 움직인다면 더 큰 낭패를 볼 수 있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야..... 우상은 곡 내의 일이 급해. 그 자는 유항에게 맡겨두는 것이 더 나을 것 같군...... 헌데 곡 밖에서 진행되는 일들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가?”

“금룡기를 제외한 오룡기가 모두 움직이고, 남허(藍虛)의 칠로단(七路團)은 만반의 준비가 끝났다는 전갈입니다. 동주(洞主)의 명령만 기다리고 있는 상태입니다.”

때를 기다리고 있다. 경천동지할 힘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때를 만나지 못하면 대업을 이루지 못한다. 부친은 너무 신중해 그 기회를 두 번 놓쳤다. 하지만 천하를 얻는다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시기란 바로 천심(天心)이다. 천심이 동해야 민심(民心)이 움직이고, 민심의 변화로 또한 천심이 결정되는 것이다.

“얼마 남지 않았군. 이곳 일을 마치고 나 역시 나가봐야겠어.”

방백린은 다시 식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입이 마르는 것 같았다. 천마곡 내의 일을 빨리 마무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제 89 장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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