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격차 없으면 통일도 필요 없다

고이즈미의 조기통일 비관론은 비현실적

등록 2006.03.04 18:33수정 2006.03.0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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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3일 참의원 결산위원회 답변에서 "한반도 통일은 한국과 북한의 비원(悲願)이라고 생각한다"고 하면서도 "남북한이 곧 통일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조기통일을 비관적으로 보는 이유로 그는 남북 간의 경제적 격차가 크다는 점을 들었다.

a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 ⓒ 일본 총리관저 홈페이지

남북 간의 경제적 격차에 대한 우려는 흔히 통일 비용에 대한 우려로 직결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한국사회 일부에서도 경제적 격차와 그에 따른 과다한 통일 비용을 근거로 조기통일을 비관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무슨 일이든지 간에 '돈' 문제는 중요할 수밖에 없으며, 또 결코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통일 비용을 우려하는 일부의 목소리도 전혀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통일 비용에 대한 우려가 통일 그 자체에 대한 비관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비용에 대한 우려는, 통일 재원을 만들기 위한 가일층의 노력으로 이어지는 게 마땅하다. 이는 결혼 비용에 대한 우려가 결혼 그 자체의 포기로 이어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통일비용 걱정되면 통일비용 만들어야

그리고 다음과 같은 7가지 관점에서 볼 때에, 남북 간의 경제적 격차는 통일을 저해하는 요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통일을 촉진하는 요소가 된다. 아래에서 상세히 언급되겠지만, 경제적 격차는 오히려 통일의 촉진제 기능을 할 것이다.

첫째, 지역 간 경제적 격차의 존재는 전체지역의 경제적 성장을 위한 잠재력이 될 수 있다. 지역 간의 경제적 격차는 후진지역에게는 하나의 '기회'를 의미하는 것이고, 또 선진지역에게는 '후진지역의 성장으로 인한 시너지 효과'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저명한 역사학자인 마크 엘빈은 1973년 미국 스탠포드대학 출판부에서 발행한 <중국 역사의 패턴 - 사회·경제적 해석>이라는 책에서, 13세기 중국의 선진지역과 후진지역(예컨대, 지금의 후난성 등) 간의 경제적 격차에 관해 이렇게 언급했다.

"이와 같은 지역 간의 차이는 후진지역의 수준을 선진지역의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림으로써 총생산량을 높일 수 있는 잠재력이 있음을 의미한다."


마크 엘빈이 언급하였듯이, 선진지역과 후진지역의 경제적 교류는 후진지역의 수준을 끌어올림으로써 전체 지역의 총생산량을 높일 수 있는 하나의 동력이 될 수 있다.

지역 간 격차는 오히려 성장의 원동력

둘째, 경제력의 격차를 운운하기에 앞서, 먼저 경제력의 개념을 재정립해야 한다. 한국이 북한에 비해 더 많은 자본을 갖고 있다는 점만을 근거로 남북의 경제적 격차를 운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어느 쪽의 노동력이 더 우수한지, 어느 쪽에 토지가 더 많은지, 어느 쪽이 기술이 더 좋은지 하는 점까지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제반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게 되면, 일본측에서 생각하는 남북 간의 경제적 격차는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게 될 것이다.

셋째, 경제력뿐만 아니라 종합적인 국력을 고려해야 한다. 한국의 경제력이 북한을 능가하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지만, 경제력만 갖고 남북을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외교력·인공위성기술·단결력 등까지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경우에는, 경제력만 놓고 비교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결과가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

경제력 개념 재정립하고, 국력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넷째, 통일은 기본적으로 '격차'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양쪽이 모두 똑같은 것을 갖고 있다면, 두 개체는 결코 통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내게 없는 것이 상대방에게 있다는 점은 두 개체를 서로 당기는 힘이 되는 것이다.

한국에 없는 것이 북한에 있고 북한에 없는 것이 한국에 있다는 점은, 통일을 저해하는 요인이 아니라 오히려 통일을 더 절실하게 만드는 촉매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격차가 있기 때문에 통일을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바로 그 격차가 있기 때문에 통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격차는 통일의 이유

다섯째, 경제적 격차는 엄밀히 말하면 통일의 문제가 아니라 통합의 문제다. 다시 말하면, 경제적 격차는 통일 이전의 문제가 아니라, 통일 이후의 사회통합의 문제인 것이다. 통일 이후에 남과 북의 경제·사회적 수준을 어떻게 일치시킬 것인가는 통일부 소관이 아니라 바로 '보건복지부' 소관이다.

여섯째, 남북 간의 격차는 남북 간의 평화를 가능하게 하는 요소다. 힘의 우열이 뚜렷한 사람 간에는 싸움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싸움은 힘이 대등한 사람 사이에서 생기는 것이다. 힘이 대등하여 힘의 우열을 확인할 필요가 있을 때에 싸움이 의미를 갖는 것이다.

남과 북이 경제력을 포함하여 주요 분야에서 상호 대등한 존재라면, 양쪽의 통일을 이루는 방법은 전쟁밖에 없다. 다행히 남과 북이 각각의 장단점을 갖고 있고 또 남과 북 사이에 격차가 존재하기에, 남과 북은 굳이 싸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내가 부족한 것을 상대방이 채워줄 수 있기에, 내가 부족한 분야에서는 상대방에게 고개를 숙일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내가 우월한 분야에서는 상대방으로부터 주도권 인정을 받기가 그만큼 수월해지는 것이다.

이 점과 관련하여, 과거 삼국시대나 후삼국시대의 경우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당시의 통일운동은 평화적 방법이 아닌 무력적 방법으로 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평화적 양상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당시의 통일운동은 전쟁을 기본수단으로 하고 있었다.

그것은 당시의 사람들이 평화의 중요성을 몰라서가 아니다. 그것은 그 당시에는 평화적 통일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 시대는 지금보다 훨씬 더 단순해서 '격차'라는 게 그리 크게 부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다 고만고만했기 때문에 전쟁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과거 역사 속에서 국가 간 갈등이 평화롭게 해결된 경우도 있었는데, 그런 경우는 대개 어느 한 쪽의 힘이 우월해서 힘을 쓸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남과 북이 상호간 격차를 갖고 있다는 점은 오히려 통일의 활력소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격차가 있기에, 남과 북은 전쟁 대신 평화를 통일의 수단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격차가 있기에 평화통일도 가능

일곱째, 지금까지 거론한 그 어떤 측면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남과 북이 상호간 격차를 포용할 수 있는 혈육이라는 점이다. 남과 북이 혈육이 아니라면, 경제적 격차를 논할 이유조차 없다. 남남이라면 통일할 필요가 애당초 없기 때문이다.

혈육 간의 경제적 격차는 형제를 따돌리고 회피하는 요인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혈육에 대한 더 뜨거운 연민을 자아내는 요소가 될 뿐이다. 먼 곳에 사는 혈육이 잘살고 있다면, 혈육에 대한 걱정은 오히려 적을 것이다. 반대로 먼 곳에 사는 혈육이 극심한 가난에 쪼들리고 있다면, 우리는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식사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혈육을 가까운 곳으로 데려오는 게 차라리 마음 편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북한이 경제적으로 쪼들리고 있다면, 다른 '과학적 이유'를 댈 것도 없이 북한을 하루라도 빨리 곁에 두는 게 동족인 우리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검토한 몇 가지 측면을 고려할 때에, 남북 간의 경제적 격차는 절대로 통일의 방해물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오히려 통일의 필요성을 증대시키는 요인이며 또한 통일을 가능하게 하는 요인인 것이다. 일본 내 분위기로 볼 때에도, 조기통일을 반대하는 것은 우리 민족에게 이익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주변국에게 보다 더 많은 전략적 이익을 제공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덧붙이는 글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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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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