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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8년만에 처음으로 딸집에 찾아오신 부모님은 닷새간의 몸조리를 마치고 남동생 집으로 가셨다. 수술결과가 좋으면 그 길로 집으로 내려가신다고 하셨으니 아마도 내 집에서 부모님을 얼굴을 다시 대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봐야겠다.
엄마 말마따나 구정물 보따리 하나만 덜렁 들고 딸집에 오신 부모님은 피해만 주게 생겼다며 미안해 하셨다. 솔직히 모셔오던 날은 찬은 뭘로 해야할지 국 없으면 밥을 못드시는 아버지신데 끼니때마다 국은 또 뭘로 끓여야할지 걱정이 태산이였다.
그런데 막상 가시고 나니 빈 자리가 이리 허전할 수가 없다. 드시라고 사놓은 쥬스도 아직 두 병이나 남아있고, 집안이 눅눅해지도록 고아서 달여놓은 사골도 어미잃은 강아지꼴로 냉장고안에 들어있다.
가져가서 드시라 해도 굳이 입맛 없다고 사골을 많이 마셨더니 자꾸 화장실만 들락거리게 된다고 핑계를 대셨지만 난 알고 있었다. 객지 가서 고생하는 사위한테 사골 한그릇이라도 남겨주어야 미안함이 덜할 것 같은 보태 줄 거라곤 한숨 주머니뿐인, 가난해서 미안한 부모님의 그 마음을...
아버지랑 엄마가 벗어놓고 가신 빨랫감들이 부모님을 떠나보내야했던 못난 딸의 마음을 대변하듯 웅웅 거리며 돌아가고 있다.
이른 저녁을 먹고, 해지기 전에 나서자며 서둘러 옷을 챙겨 입으시는 아버지의 호주머니에 여비를 찔러넣어드렸다.
그러자 "아니다...부모라고 찾아와서는 하나 도움은 못 주고 피해만 주고가는디 나가 어찌 부모랍시고 차비꺼정 받겄냐. 그 돈 놔 뒀다가 건이 아범 오거든 괴기나 한근 사서 몸보신 시키줘라."며 굳이 딸의 손을 뿌리치셨다.
하지만 나 역시 두번이고 세번이고 찔러드렸다.
"아부지..많지 않아요. 많이 못 드려서 죄송해요. 다음에는 많이 드릴께요.."
"나가 느그들 살림을 뻔히 아는디 참으로 염치가 없다" 며 딸자식이 드리는 여비 몇만원을 억지춘향으로 받아 넣으시는 아버지가 고맙게 느껴졌다.
하지만 아이 입학식을 핑계로 따라나서지 못한 마음까지 그 차비 몇 만원에 담겨있다는건 모르실 것이다.
아버지가 주무셨던 방을 정리하려고 보니 아직도 아버지의 체온이 이불밑에 남아있었다. 귓전에 떠도는 아버지의 음성처럼.
찬거리가 없어서 수제비를 만드느라 냄비소리 칼소리, 웃음소리가 요란스러웠던 어제는 "봉사잔치가 묵을거는 없고 시끄럽기만 오살나게 시끄럽다드만은 봉사잔치가 여기도 벌어졌네"라고 해서 웃느라고 수제비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정도였고.
손톱을 너무 짧게 잘라서 화끈거린다고 했을때는 "옛날에 손톱 아픈 사람이랑 이빨 아픈 사람이 있었는디 이빨 아픈 사람이 '아이고 이빨이 아파서 사람죽겄네'헝께
손톱 아픈 사람이 이빨 아픈 사람 뺨을 올려치면서 허는 말이'이빨 아픈것이 뭣이 아파야 여기 손톱 아픈사람도 있는디'했을 정도로 손톱 아픈 것이 이빨 아픈 것보다 더 아픈것이다"라며 아무도 알아주지않는 딸의 고통을 덜어주시기도 했었다.
이제는 생전가야 아이들외에는 웃을 일이 없던 내게 아버지의 구수한 농담은 잊혀진 추억마저 일깨워주셨는데 가시고 없으니..이쪽을 돌아봐도, 저쪽을 돌아봐도 헛헛함만 자욱하다.
내일부터는 아무래도 하루에 전화를 두번 드려야할것같다. 한번은 "아부지 보고싶어요. 언제 오실래요?"하고 드리고 또 한번은 "아부지 내일 오실래요?"하고 말이다.
그런데 아부지 좋아하는 누룽지는 왜 저리도 맛나게 눌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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