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키키 브라더스와 당신의 추억

[리뷰·인터뷰 5] 잃어버린 꿈을 찾아서, 뮤지컬 <행진! 와이키키 브라더스>

등록 2006.03.06 08:25수정 2006.03.07 15:52
0
원고료로 응원
지난 2004년 초연 이후 전국 순회공연을 통해 이미 22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한 토종대형뮤지컬 <행진!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 우뚝 섰다(이하 와이키키).

a 국내 순수창작 대형뮤지컬의 자존심을 세우게 될 <행진! 와이키키 브라더스>

국내 순수창작 대형뮤지컬의 자존심을 세우게 될 <행진! 와이키키 브라더스> ⓒ (주) 서울뮤지컬컴퍼니

3월 3일부터 4월 2일까지 한 달여 동안 격랑을 일으킬 <와이키키>는 지난해 8월 LA 윌셔이벨극장에서 가진 공연을 통해 전회 기립박수의 기록을 세운 바 있다. 교포들이 아닌, 미국인들의 아낌없는 찬사가 절대 과장이나 거품이 아니었음을 나는 지난 3일(금) 확인할 수 있었다. 나 역시 공연이 끝난 뒤 기립박수를 칠 수밖에 없었다.



"정말 재미있고, 신나고, 힘이 넘치는 무대다. 지금까지 관람한 최고의 뮤지컬 중 한 작품이다(This is a funny, exciting and energetic show! It's one of the most excellent shows ever I seen)!"

혼신을 다한 배우들과 제작진 특히, 외국작품이라면 무조건 수입부터 하고 보는 풍조에 대한 반감으로 지난 11년 동안 '서울뮤지컬컴퍼니'를 이끌며 창작뮤지컬의 신화를 쓰기 위해 '모든 재산 다 털고 남은 것은 빚뿐'이라고 말하는 김용현(55) 대표에게 감히 이 덜 익은 관람기를 헌정한다.

7080 세대에겐 향수를, 젊은 세대에겐 감동을

a 국내 뮤지컬 관계자 20인이 선정한 '베스트 5 연출가' 이원종(45)씨. 치밀한 분석과 짜임새 있는 연출로 이미 여러 성공작을 내놓은 그는 세계로 향하는 <행진 !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위해 지금도 업그레이드 구상 중에 있다.

국내 뮤지컬 관계자 20인이 선정한 '베스트 5 연출가' 이원종(45)씨. 치밀한 분석과 짜임새 있는 연출로 이미 여러 성공작을 내놓은 그는 세계로 향하는 <행진 !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위해 지금도 업그레이드 구상 중에 있다. ⓒ 이동환

인생이라고 하는 긴 여정 가운데 누구나 겪어야 하는 질풍노도의 시기가 있다면 그건 바로 고등학생 시절이 아닐까 싶다. 세상에 무서운 것 없고, 뭐든지 이룰 수 있을 것 같고, 뜨거운 피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넘쳐 흐르고, 그리고 풋풋했던 꿈들!

이원종 : "<와이키키>는 우리 모두 나이가 들어가면서 잊고 사는 잃어버린 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뮤지컬의 주제는 '꿈'이다. 추억 속 한 갈피를 열어보면 누구나 묻어두었던 꿈을 발견한다. 그래서 <와이키키>는 7080 세대에게 특히 정겹다.

이원종 : "꿈은 뭐가 되겠다, 무엇을 가지겠다는 것만은 아닐 듯싶어요. 예를 들면 갈대로 배를 엮어서 바다를 건너가는 과정이랄까, 뭐 그런 게 아닐까 싶은데요. 꿈이란 현실적인 목표라기보다는 삶의 원동력 즉, 지금 자신의 삶이 있게 하는 원천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해요. 우리가 나이 들어가면서 직업을 가져야 한다든지, 현실에서 이루는 어떤 성취, 그런 것들만 중요시하다보니 진정한 꿈을 자꾸 잊는 것은 아닐까요?"


a 탤런트 안정훈(성우 역), 개그맨 이휘재(정석 역), 가수 이재영(인희 역)을 비롯, 뮤지컬 배우로서 전문성과 깜냥을 인정 받은 조병곤(성우 역), 임춘길(정석 역), 전병욱·조한철(강수 역), 이정화(인희 역), 홍지민(길주 역), 춘자·김지영(영자 역) 등이 활화산 같은 무대를 선보인다.

탤런트 안정훈(성우 역), 개그맨 이휘재(정석 역), 가수 이재영(인희 역)을 비롯, 뮤지컬 배우로서 전문성과 깜냥을 인정 받은 조병곤(성우 역), 임춘길(정석 역), 전병욱·조한철(강수 역), 이정화(인희 역), 홍지민(길주 역), 춘자·김지영(영자 역) 등이 활화산 같은 무대를 선보인다. ⓒ (주) 서울뮤지컬컴퍼니

프롤로그 : 충주고의 밴드 '충고보이스' 멤버인 성우, 강수, 정석은 발표회를 앞두고 분주하다. 한편, 충주여고의 밴드 멤버인 길주와 영자는 음악을 접겠다는 인희를 다시 영입하기 위해 안달이다. 큰 무대를 꽉 메운 남녀학생들이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무대복판을 가로지르며 환상적인 춤과 노래를 쏟아낸다. <세상만사>(송골매)가 오케스트라와 함께 웅장한 코러스로 연출되면서 순탄하지 못할 주인공들의 운명이 복선으로 깔린다.

"세상만사 모든 일이 뜻대로야 되겠소만…(합창)."

a 푸릇푸릇하기만 한 고교시절. 세상에 거칠 것 없는 패기로 그들은 미래를 꿈꾼다.

푸릇푸릇하기만 한 고교시절. 세상에 거칠 것 없는 패기로 그들은 미래를 꿈꾼다. ⓒ (주) 서울뮤지컬컴퍼니

첫째 마당 : 발표회에서 성우네(충고보이스)는 '어쩌다 마주친 그대(송골매)'로 여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한다. 인희네(버진 블레이드)는 < Bad case of Loving You >(로버트 팔머)를 불러 객석을 휘어잡는다. 현란한 조명과 어우러져 속도감 있게 전환되는 배경. 완벽한 화음으로 봄꿈보다 더 달콤하게 펼쳐지는 코러스, 그리고 거의 기예수준으로 안무된 춤들은 관객을 숨도 제대로 못 쉬게끔 몰아세운다.

딴생각 할 틈 없이 전개되던 주인공들의 고교시절이 끝나가고…, 진로에 대해 막막할 수밖에 없는 친구들이 기약할 수 없는 꿈과 희망을 노래할 무렵 1막을 마감하는 휘장이 서서히 드리워진다.

a 30대 중반이 되어버린 친구들. 이제 꿈을 잃어가면서 친구끼리 다투는 일도 잦다.

30대 중반이 되어버린 친구들. 이제 꿈을 잃어가면서 친구끼리 다투는 일도 잦다. ⓒ (주) 서울뮤지컬컴퍼니

둘째 마당 : 30대 중반이 될 때까지 와이키키 브라더스란 이름으로 밤무대를 전전하다 결국 고향인 수안보로 향하는 세 친구들. 그들에게 더 이상 상큼하던 시절의 꿈은 없다.

"꿈? 우리한테 그런 게 있기는 했었나(강수)?"

이제 그들은 추억을 곱씹으며 소주잔을 기울일 때만 행복을 느끼는 나이가 돼버렸다. 그들이 고향의 밤무대에 취직한 첫 날, <토요일은 밤이 좋아>(김종찬)를 열창하지만 왠지 쓸쓸하다. 그들은 새로운 꿈을 꿀 수 있을까?

에필로그 : 고단했던 삶을 뒤로 하고 용기를 낸 인희는 성우와 함께 다시 노래를 부른다. <사랑밖엔 난 몰라>(심수봉)를 부르는 인희의 표정에 생기가 돈다. 소박하나마 다시 희망을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이 고달픈 이유는 좌절되는 꿈 때문이 아니라 다시는 꿈을 꾸지 않기 때문이라는 경구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성공스토리가 아니라 더욱 애절한…

이원종 : "이 뮤지컬은 세상 기준으로 볼 때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의 얘기입니다. 현실에서 세속적인 꿈을 이룬 사람보다는 이루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분들이 아, 이거 내 얘기일 수도 있구나, 하고 느꼈으면 합니다. 극장 문을 나설 때, 그동안 꿈을 잊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자신이 꾸었던 꿈을 다시 한 번 떠올릴 수 있는, 향수 짙은 기억을 되짚어볼 수 있는, 그래서 힘을 다시 얻는, 뭐 그랬으면 합니다만…(웃음)."

휘모리장단처럼 몰아치던 공연이 끝났나 싶을 무렵 모든 배우들이 다시 등장한다. 한 사람 한 사람, 공연 중 불렀던 노래와 춤을 보여주며 피날레를 장식한다. 흥에 겨운 관객들이 일어나 무대 앞으로 몰려나간다. 마지막으로 전개되는 전 출연진의 화려한 춤과 노래. 그 역동성이 관객들에게 옮아오면서 여기저기 환호성과 박수소리가 요란하다. 2004년부터 이어져 온 네 번째 공연, 그 첫날 공연임에도 꽉 찬 객석에 더 이상 앉아있는 사람은 없다.

a 공연 끝난 뒤, 분장도 미처 지우지 못한 채 팬사인회에서 여념 없는 배우들.

공연 끝난 뒤, 분장도 미처 지우지 못한 채 팬사인회에서 여념 없는 배우들. ⓒ 이동환

이원종 : "원작은 아시다시피 동명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우리 가요를 드라마적 분위기를 살리기 위한 장치로 적절하게 잘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뮤지컬도 우리 가요를 살려 쓰면 괜찮겠다고 생각했지요. 사실 창작뮤지컬 할 때 가장 애먹는 부분이 음악입니다. 어차피 작품의 주 배경이 과거인 만큼, 그 시절 우리들이 좋아했던 노래들을 모두가 호응할 수 있도록 엮어보고 싶었습니다."

<와이키키>는 아바의 노래 22곡을 삽입해 만든 뮤지컬 <맘마미아>에 비할 때 전혀 손색이 없다. 탄탄한 구성과, 말미에 가슴노리를 치는 감동으로 볼 때 오히려 낫다. 창작곡과 우리 가요를 포함해 서른 곡 정도가 적절한 편곡과 오케스트라에 흐무러지면서 전혀 새로운 맛을 보여준다. 안무 또한 서양인들의 몸짓과는 전혀 다른, 우리만이 보여줄 수 있는 선을 맛깔스럽게 그려내고 있다.

작년 LA에 이어 미국 내 다른 지역과 일본 중국 등에서 공연이 추진 중이라고 한다. 부디 <와이키키>가 우리네 순수창작 대형뮤지컬의 자존심을 걸고 새로운 '한류'를 불러일으키기를 희망한다. '우리 것이기 때문에 무조건 좋다'가 아니라 어디에 내놔도 자랑할 만한, 격 높은 완성도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예매문의 : 티켓파크 ☎ 1544-1555  티켓링크 ☎ 1588-7890
공연문의 : ☎ (02) 3141-1345

덧붙이는 글 예매문의 : 티켓파크 ☎ 1544-1555  티켓링크 ☎ 1588-7890
공연문의 : ☎ (02) 3141-1345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얼굴이 커서 '얼큰샘'으로 통하는 이동환은 논술강사로, 현재 안양시 평촌 <씨알논술학당> 대표강사로 재직하고 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2. 2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3. 3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4. 4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5. 5 한전 '몰래 전봇대 150개', 드디어 뽑혔다 한전 '몰래 전봇대 150개', 드디어 뽑혔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