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위주 술 문화를 바꾸자

등록 2006.03.06 09:41수정 2006.03.06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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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덕 / 덕유법률사무소 변호사
고승덕 / 덕유법률사무소 변호사여성신문
[고승덕 기자]초임 판사 시절 나에게 가장 힘든 것은 판결을 쓰는 일이 아니라 술자리였다. 모시는 부장판사마다 유난히 술을 잘 마셨기 때문에 밤늦게까지 벌어지는 술자리는 정말 괴로웠다. 술자리를 피하는 것은 선배와 인간관계를 끊자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에 거역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술을 못하는 내가 자해 수준에 가깝게 오가는 술잔을 그대로 들기도 어려웠다.

20여 년이 흐르는 동안 술 문화는 더 거칠어지고 더 남성 위주로 변했다. 스트레이트 술잔은 어느 사이에 폭탄주로 변했고, 상대방이 억지로 술을 먹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온갖 방법이 난무하고 있다. 술은 성과 뗄 수 없게 결합되어 이제는 노래방에서까지 접대부를 볼 수 있다. 술 문화가 잘못된 것을 다들 알면서도 술자리를 피하면 따돌림을 받을까봐 두려워하고 있다.

잠깐 희망이 보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여판사가 배속된 재판부는 접대부가 있는 술집에 가지 않고 회식 자리에서만 술을 간단히 마시고 해산하기도 했다. 양성평등의 술 문화가 등장하는 듯해서 기대를 가진 것도 잠시, 각 분야에 여성이 활발하게 진출하면서 여성들이 기존의 술 문화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여성이 폭탄주를 주도하고 때로는 접대부가 있는 술집까지 동행하는 경우도 있다. 여성도 남성 못지않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지만 아쉽다.

정부는 성매매단속법을 만들고 부산을 떨더니 이제는 경찰도 신고가 들어오지 않으면 단속하지 않는 것 같다. 성과 결합된 술집들이 다시 성업 중이지만 제대로 단속하라는 목소리는 크게 들리지 않는다. 접대부가 나오는 술집에서 먹는 양주가 거의 다 가짜 술이라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화학성분이 독한 가짜 술로 국민의 내장은 상해가고, 좀 더 유용한 곳에 사용되어야 할 아까운 돈들이 증발하고 있다.

잘못된 술 문화는 사회적 비용이 크다. 왜곡된 성문화를 가져오고 폭력이 유발되기 쉬운 환경을 만들고 있다. 우리 술 문화도 이제는 경제 수준에 맞게 달라져야 한다. 건전한 술 문화가 되려면 술은 식사와 결합되어야지 성과 결합되어서는 안 된다. 최근 모 의원이 술에 취해 성희롱하다가 체통을 구겼지만 개인의 우발적인 실수로 넘길 일이 아니다. 잘못된 술 문화를 그대로 두는 한 비슷한 사건은 오늘도 술이 있는 곳마다 무수히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여성 개개인은 양성평등에 반하는 술자리에 적응하려고 하지 말고 분명히 이의를 제기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또한 술을 똑같이 먹이려는 폭력적 술 문화에 대해서도 저항할 필요가 있다. 술과 성 산업이 국내총생산(GDP)의 10% 이상을 차지한다지만 이제 경제가 확실한 상승세를 타고 있으니 경기 침체 걱정하지 말고 올바른 술 문화를 이야기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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