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놈을 어찌할꼬?

[오클랜드 하늘에 뜨는 무지개 41] 선물로 받은 도미의 내장을 따다

등록 2006.03.06 13:17수정 2006.03.06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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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 늦게 딸아이 동윤이의 친구 쥬디(Judy)네 가족이 우리 집에 잠깐 들렀다. 쥬디는 딸아이의 초등학교 시절 단짝 친구인데, 10년 전 홍콩의 중국 반환을 앞둔 즈음에 가족들과 함께 이곳 뉴질랜드로 이민을 왔다고 한다.


동윤이와 쥬디는 초등학교 졸업 이후에는 서로 다른 중학교로 진학했고 지금도 서로 다른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요즘도 가끔 만나면서 절친한 친구 사이로 지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양쪽 가족도 종종 내왕을 하면서 친하게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것이라 반갑게 쥬디네를 맞은 우리에게 쥬디 엄마는 묵직한 비닐봉지를 건네주었다. 쥬디 아빠가 낚시를 하러 가서 갓 잡아온 싱싱한 도미라고 했다. 우리 집에 오기 전에 쥬디가 미리 전화를 걸어 귀띔을 해주었기에 기대는 하고 있었지만, 제법 묵직하게 손에 전해오는 무게가 보통이 아니었다.

쥬디네가 다른 약속이 있다면서 문 앞에서만 인사를 나누고 떠나고 난 후, 아내와 나는 얼른 비닐봉지를 풀어 보았다. 과연 큰놈이었다. 몸통의 길이가 30cm도 더 되어 보이는 싱싱한 도미가 우리 눈앞에 나타났다. 아니, 이게 웬 횡재야! 아내의 입이 함박 벌어졌다. 저녁 반찬거리를 고민하고 있던 차였으니 이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으랴!

나 역시 저녁에 내가 좋아하는 생선 요리를 먹을 생각을 하니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더군다나 바다에서 막 잡아온 싱싱한 놈이 아닌가! 또한 도미는 제법 값이 나가는 비싼 생선이라 생선가게에서는 한번도 돈 내고 사 먹은 적이 없었으니 더욱 그랬다.

그런데 바다에서 직접 잡은 그 귀하고 싱싱한 도미를 다른 사람을 모두 제쳐두고 우리에게 선물로 줄 생각을 하다니! 아마도 올해 초 우리가 한국 방문길에 사온 조그마한 선물들을 쥬디네 식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선사한 것에 대한 답례로 여겨졌다.

우리의 선물에 대한 답례이든 아니면 그냥 이웃간에 나누는 인정의 표시이든 간에 마음을 써 준 쥬디 아빠와 엄마가 너무나 고맙게 생각되었다. 내가 그런 마음에 잠시 젖어 있자니 옆에서 아내가 서둘렀다. "뭐해, 이제 생선 다듬어야지. 자, 여기 칼하고 고무장갑."

비위가 약해서 지금껏 생선 내장 따기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고 또 그걸 쳐다보는 것조차도 역겹게 생각하는 아내가 칼과 고무장갑을 내놓고는 재빨리 부엌에서 나가버렸다. 그렇지만 생선 내장 따기를 해본 적이 없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게 싫어서 우리는 생선 가게에서 생선을 살 때도 늘 일하는 점원에게 내장을 따고 깨끗이 정리해달라고 부탁하곤 했으니 말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열광하는 낚시에 내가 전혀 흥미를 느끼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도 바로 여기에 있다. 낚시로 잡은 생선을 내 손으로 배를 갈라 내장을 딸 생각을 하면 몸서리가 쳐질 정도이다. 그런데 어제 오후에는 도망갈 구석이 없었다. 개수대에서는 도미의 눈이, 거실에서는 아내의 눈이, 그리고 옆에서는 딸아이의 눈이 나를 주시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a 이 놈을 어찌할꼬?

이 놈을 어찌할꼬? ⓒ 정철용

나는 할 수 없이 고무장갑을 끼고 도미를 집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이 놈을 어찌할꼬?'하는 심정으로 잠시 가련한 도미의 눈을 쳐다보았다. 너무 싫어서 주저주저하는 표정이 내 얼굴에 역력히 나타났는지, 옆에서 지켜보던 딸아이 동윤이가 깔깔대고 웃어댔다.


무색해진 나는 바로 작업에 돌입했다. 가위로 지느러미를 잘라낸 후 칼로 몸통을 긁어 비늘들을 벗겨내었다. 익숙지 않은 내 손길에 굵은 비늘들이 여기저기로 튀었다. 힘겹게 비늘 벗기기를 대충 마치고 이제 남은 일은 내장 따기. 생각만 해도 눈이 감겨지고 몸서리가 쳐지는 일이었지만 나는 칼을 들어 도미의 아랫배를 갈랐다.

그 동안 잘 구경하고 있던 동윤이도 그건 못 보겠던지 도망가고 말았다. 나는 내장을 빼내기 위하여 갈라진 생선의 아랫배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물컹하고 느껴지는 이물감이 고무장갑 낀 손을 타고 전해졌다. 손을 빼내니 피와 함께 쏟아져 나오는 선홍빛 내장들! 으으, 징그러워라.

그래도 나는 이를 악물고 몇 차례 그 짓을 더해서 내장 따기 작업을 모두 마칠 수 있었다. 직접 볼 수가 없는 아내는 멀리서 "아직 멀었어?"라고 자꾸 물어왔다. 마침내 내가 "자, 이제 다 됐어"라고 대답했을 때는 벌써 40분 가까이 지나 있었다. 생선가게에서는 5분이면 뚝딱 해치울 일인데….

나는 아내에게 부엌을 넘겨주고 나왔다. 입이 썼다. 저녁 식탁에서 마주할 생선 요리를 맛나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내 손으로 배를 갈라 내장을 긁어내면서 붉은 피와 징그러운 내장들을 직접 보고 만졌으니 말이다.

a 저녁 식탁에 차려진 맛있는 도미구이

저녁 식탁에 차려진 맛있는 도미구이 ⓒ 정철용

하지만 한 시간 후, 아내가 오븐의 그릴에서 구운 도미를 저녁 식탁에 옮겨 놓았을 때 내 입에서는 군침이 돌고 있었다. 아, 인간의 입이란 얼마나 간사한가! 얼마나 맛이 있던지, 우리는 그 큰 도미를 하루저녁에 다 먹어치우고 말았다.

아마도 쥬디네의 따뜻한 마음이 생선의 맛에 더해져 그토록 맛이 있었고 그래서 나도 내가 자행한 잔인함(?)을 쉽게 잊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우리도 조만간 쥬디 엄마가 좋아하는 김치라도 한 접시 가져다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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