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연 훈김 밀려나오는 정겨운 국숫집

늘 그 모습 그대로인 우리들의 어머니 같은 그 집

등록 2006.03.07 09:06수정 2006.03.07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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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유난히 시간의 흐름이 빠르게 느껴지는 계절이다. 황금빛 들판, 푸른 하늘, 단풍과 낙엽이 힘겹게 얻어지는 것과는 달리 너무 쉽게 단숨에 사라져 버리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자주 허기가 지는 것일까.


국숫집

대략 스무 해 전부터 가을만 되면 내가 들르는 식당이 있다. 가을 햇살이 유난히 강한 강화도의 비빔국수집이다.'


이렇게 시작되는 글이 있다. 소설가 성석제가 쓴 '비빔국수'라는 글이다.

강화경찰서로 들어가는 길목 안쪽에 그 국숫집이 있다. 여간해선 찾기 어려운 곳에 그 국숫집은 있다. 아는 사람만이 찾아가는 집, 오랜 세월 동안 조용하게 한 자리를 지키며 장사하는, 뚝심이 있는 분들이 대개 이런 곳에서 장사를 한다.

이 국숫집도 그렇다. 모르는 사람은 절대 모를 그런 곳에, 골목 안쪽으로 쑥 들어간 곳에 이 국숫집이 있다. 그렇다고 요란하게 간판 같은 걸 길가에 내놓고 그러지도 않는다. 그냥 그대로, 마치 엄마처럼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다.


입구 문을 밀고 들어서면 나지막한 천장 아래 옹기종기 너덧 개의 낡은 탁자가 있고, 그리고 김이 막 뿜어져 나오는 입구 주방에는 모녀간으로 보이는 여인들이 한창 바쁘게 일을 하고 있다. 발갛게 달아있는 연탄난로에서는 뜨거운 불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주방에선 사람이 흐릿하게 보이도록 김이 서려 있다. 밖에서 꽁꽁 얼어들어온 사람도 여기만 들어오면 절로 몸이 녹을 것 같다.

2006년 1월 국숫집2
2006년 1월 국숫집2이승숙
내가 이 국숫집을 만난 날이 생각난다. 사람들 말을 듣고 국수를 먹으러 국숫집에 갔다. 메뉴는 딱 두 가지뿐이었다. 비빔국수와 물국수 딱 두 가지밖에 없었다.


주변 사람들 눈치를 보면서 나도 비빔국수를 시켰다. 그리고 국수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식당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꾸밈이었다.

'이 곳에 들어오는 모든 이에게 평화를'이라는 성구가 새겨진 액자가 벽에 붙어 있었고 그리고 바닷물 때 시간표가 있는 강화도만의 달력이 벽에 있었다. 또 다른 한 벽엔 치렁치렁하게 조화가 걸려 있었고 그리고 내 바로 눈앞의 벽엔 커다란 패널이 걸려 있었다.

처음엔 그것이 뭔지 몰랐다. 꾸미지도 않은 그것, 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무언가가 쓰인 것이었다. 저게 뭘까. 무심히 읽어 보았다.

'비빔국수'.

그것은 성석제가 이 식당을 소재로 쓴 '비빔국수'라는 글이었다. 그 글을 크게 복사해서 벽에 붙여 놓았다. 걸어놓은 지 오래된 듯 글자 색이 좀 바래 보였고 그리고 밑줄 친 빨간색 사인펜 색깔도 흐릿하게 보였다.

2006년 1월 국숫집3 패널사진
2006년 1월 국숫집3 패널사진이승숙
좁은 골목길엔 차를 세워둘 곳도 마땅찮았다. 그래서 경찰서 마당에 차를 세웠다.
날이 추워서 그런 걸까 점심시간인데도 별반 사람이 없었다. 친구들끼리 온 고등학생 셋이 비빔국수를 맛있게 먹고 있었고 그리고 다 먹고 나가는 한 팀뿐이었다.

식당 안은 3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조금도 없었다.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액자며 조화 그리고 달력까지 그 자리에 그대로 걸려 있었다. 연탄 난롯불에 손을 쬐면서 비빔국수 둘에 곱빼기 하나를 시켰다.

"할머니, 여기 주인이 누구세요?"
"주인? 다 주인이지. 손님도 주인이고 다 주인이지."

주인 할머니가 그리 말하자 옆에 있던 다른 할머니가
"우리 사돈이 주인이지."
그랬다. 그러자 따님인 듯한 젊은 여인이
"하나님이 주인이지."
그러면서 다들 호호호 웃었다.

김이 뭉글뭉글 피어오르는 좁은 주방에서 바쁘게 일하던 세 여인은 참 고왔다.

"사돈 간이세요? 그럼 누가 따님이고 친정어머니세요? 할머니가 친정어머니세요? 두 분이 많이 닮았다."

그러자 두 여인이 벙긋 웃었다.

"우리 둘이 닮았어요? 내 딸이 아니고 며느린데 닮았나?"
"할머니 진짜세요? 진짜 며느님이세요? 그런데 진짜 닮았다. 오래 같이 함께하다 보니까 서로 닮았는갑다."

정말로 며느님과 시어머니는 많이 닮아 보였다. 오히려 친정어머니가 남인 것 같이 보일 정도로 두 고부간이 닮아 보였다.

2006년 1월 국숫집4, 모녀 같은 고부
2006년 1월 국숫집4, 모녀 같은 고부이승숙
국수가 나왔다. 뜨끈뜨끈한 멸치국물과 김치 한 종지 그리고 비빔국수, 이렇게 단출한 차림이었다. 국수 면발 위에 양념한 김치를 얹고 파, 통깨, 고춧가루, 김 가루 그리고 노란 설탕 한 숟갈을 얹은 국수가 나왔다.

멸치국물을 조금 따라 붓고 젓가락으로 국수를 비볐다. 아삭거리는 김치와 설탕, 그리고 개운한 뒷맛을 위해 넣은 김 가루와 파, 멸치국물을 한 숟갈 떠먹고는 잘 비빈 국수를 한 젓가락 가득 집어 올렸다.

2006년 1월 국숫집5, 아삭한 비빔국수 한 그릇
2006년 1월 국숫집5, 아삭한 비빔국수 한 그릇이승숙
비빔국수도 물국수도 2500원밖에 안 한다.

"할머니, 언제부터 하셨어요?"
"응, 한 사십 년 됐지."
"그런데 사람들 말 들어보니까 가격을 안 올린다면서요?"
"응, 이제 올려야지. 올릴라 그러고 있어."

사돈 간이라는 두 분도 선량해 보였고 따님이자 며느님도 선량해 보였다. 말을 꾸며 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하시는 그 할머니들을 보니 오래전에 돌아가신 친정 엄마같이 느껴졌다.

자랑할 일이 있어도 자랑하지 않았고 항상 나를 낮추던 어른들. 작은 성취에도 기고만장해 하고 작은 성공에도 자랑이 늘어지는 요즘 우리네와 다른 세대의 어른들이다. 강화경찰서 앞 비빔국수 집 할머니들은 그런 세대의 어른이었다. 잔잔한 미소와 주름이 정겹고 아름다운 할머니들이었다.

덧붙이는 글 | 제 아이들은 둘 다 고등학생입니다. 아침 일찍 집을 나가서는 한밤중에 돌아옵니다. 오랫만에 애들과 함께 했던 어느 추웠던 토요일 오후는 아삭아삭한 비빔국수와 인정이 있어서 참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제 아이들은 둘 다 고등학생입니다. 아침 일찍 집을 나가서는 한밤중에 돌아옵니다. 오랫만에 애들과 함께 했던 어느 추웠던 토요일 오후는 아삭아삭한 비빔국수와 인정이 있어서 참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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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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