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통과하는 초능력이 생긴다면?

유쾌한 상상 통해 진한 감동 선사하는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

등록 2006.03.13 10:47수정 2006.03.14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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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공연을 마친 후 출연진이 관객들에게 인사하는 모습

공연을 마친 후 출연진이 관객들에게 인사하는 모습 ⓒ 쇼노트

현실 속에서 불가능한 일들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잠시나마 즐거워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는 일이다. 더구나 어릴 적에는 '만약 투명인간이 된다면 제일 먼저 무얼 해볼까'라든가 '걸어 다니기 힘든데 길 전체를 에스컬레이터로 만들면 얼마나 편할까' 등등 부질없거나 실현가능한 것들에 대해 무수히 많은 공상을 해보기도 한다.

헌데 어린 시절의 공상들은 현대과학의 눈부신 발전에 힘입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문명의 이기로 현실화되어 있기도 하다. 요즘 우리시대를 살아가는 소시민들은 대부분 '로또복권 한번 맞았으면 소원이 없겠다'라는 꿈을 안고 고단한 삶에 한 가닥 희망을 품어보기도 한다.


파리의 한 우체국에서 말단공무원으로 근무하는 주인공 듀티율은 무엇 하나 특별히 내세울 것 없는 평범한 남자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벽을 뚫고 다닐 수 있는' 대단한 능력이 생기면서 극은 흥미롭게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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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노트

대사 없이 극의 모든 내용을 오직 노래만으로 풀어가는 레스타티브 방식의 '오페레타 뮤지컬'이라는 보도자료를 미리 접했기에, 충분한 내용전달이 관객들에게 원활히 이뤄질까라는 걱정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완벽한 노래라고 볼만한 부분은 전체의 절반 정도에 그치고 나머지는 대사와 노래를 절충한 듯한, 어찌 보면 랩을 듣는 것처럼 처리했기 때문이다. 읊조리는 듯한 이런 방식의 노래는 배우들의 음악성을 돋보이게 하는 데는 조금 부족해 보였다.

그럼에도 배우들 각각의 가창력과 빼어난 연기력은 무대 곳곳에서 수시로 분출됐다. 뮤지컬 <돈키호테>의 주인공으로 잘 알려진 김성기는 3가지 배역을 코믹하면서도 자연스런 연기로 완벽하게 소화해 내 관객들로부터 커다란 박수를 받았다. 특히 그의 우스꽝스런 연기에 몰입된 중년여성 관객들은 극 후반부엔 그가 나오기만 해도 웃음을 터트렸다.

a 뮤지컬이 끝난 후 사인회장에서 만난 배우들의 모습.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성기, 오세준, 조유신, 최혁주.

뮤지컬이 끝난 후 사인회장에서 만난 배우들의 모습.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성기, 오세준, 조유신, 최혁주. ⓒ 유영수

어디 그뿐인가. 임철형과 김영주는 풍부한 성량과 탁월한 연기실력으로 전작 <페퍼민트>에 이어 또다시 '주연보다 빛나는 조연'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도 '샬랄라 음악교실'로 대중들에게 친숙한 최혁주와 강연종, 조유신, 유혜령, 김승필 등 조연배우들의 활약은 가히 눈부시다. 어느 누구 하나 특별히 비중이 떨어지는 역할이 없다 싶을 만큼 각자의 배역을 충실히 소화해낸다.

그렇다면 주연배우들은 어떠한가. 뮤지컬을 보러가기 전부터 흥미진진하게 여겨진 대목이다. 특히 국민배우라 할 정도로 대중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박상원과, 뮤지컬 마니아들 사이에서 '엄짱'이라 불리며 폭발적인 인기몰이를 하고 다니는 엄기준의 연기대결이 사뭇 호기심을 유발시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a 듀티율 역으로 캐스팅돼 연기대결을 펼치고 있는, 엄기준(왼쪽)과 박상원의 제작발표회장에서의 모습

듀티율 역으로 캐스팅돼 연기대결을 펼치고 있는, 엄기준(왼쪽)과 박상원의 제작발표회장에서의 모습 ⓒ 쇼노트

박상원과 엄기준은 우선 외모에서도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꽃미남 스타일의 엄기준은 곱상한 외모에 부드러움을 지니고 있어 젊은 여성관객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다. 기자의 눈에는 뮤지컬보다 '엄기준'을 보러 온 사람들도 꽤 많은 것으로 보였다.

반면 오랫동안 신사복 모델로 활동하고 있을 만큼 편안하면서도 품격 있는 외모를 자랑하는 박상원은 엄기준과는 차별되는 또 다른 매력을 유감없이 발산한다. <아이다>와 같은 정통 뮤지컬이 아니기에 박상원이 걱정하는 것처럼, 약간은 부족해 보일 음악성이 현저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의 음악이 요구하는 정도의 가창력과 성량은 충분히 갖췄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하지만 중간 중간 호흡이 딸려 부드럽게 이어지지 못하는 것과 반주와 노래의 박자가 안 맞아 극의 흐름이 끊기는 것은 옥의 티라 여겨질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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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노트

그럼에도 그의 뮤지컬 복귀는 성공적인 것으로 봐도 될 듯하다. 풍부한 표정연기와 관록이 돋보이는 무대매너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충분히 채우고도 남았기 때문이다. 사전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연기에서 승부를 걸겠다는 그의 전략이 적중했다고나 할까.

뮤지컬계에서 실력파 배우로 소문난 엄기준은 오히려 그런 면에서 손해를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아쉬움이 남는다. 연기보다 음악성 면에서 호평을 받아야 할 그에게 <벽을 뚫는 남자>의 음악은 그리 화려하거나 뛰어난 가창력을 요구하지 않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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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노트

하지만 이사벨에게 사랑을 고백하라는 동료들의 부추김에도 우유부단한 성격 때문에 안절부절 못하는 장면에서는, 그의 귀엽고 부드러운 캐릭터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져 극대화된 느낌을 주는 효과를 내기도 한다.

듀티율과 애절한 사랑을 나누는 여주인공 이사벨역을 맡은 임수연과 가수 해이는 두 사람 모두 탁월한 가창력으로 무대를 사로잡는다. 청아하면서도 흐느끼는 듯한 호소력 짙은 목소리의 해이와, 약간은 탁한 듯하면서 중량감 있게 다가오는 임수연의 노래대결도 흥미롭게 지켜볼만한 대목이다. 다만 주인공이라고 하기엔 너무 빈약한 극중 분량이 아쉽게 느껴진다.

a 이사벨 역을 맡은 임수연(왼쪽)과 가수 해이의 연기대결 또한 지켜볼 만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사벨 역을 맡은 임수연(왼쪽)과 가수 해이의 연기대결 또한 지켜볼 만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 쇼노트

이쯤에서 몽마르트 거리를 재현해 낸 무대를 살펴보자. 미니어처인 듯 아기자기하면서도 아름다운 무대는 관객들이 실제 몽마르트 언덕에 와있는 듯한 착각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수채화처럼 부드러운 색감의 조명이 더해져 한 폭의 그림을 감상하는 느낌이 흠씬 묻어난다.

무대와 조명의 환상적인 어우러짐은 주인공 듀티율이 벽을 뚫는 장면에서 최고조에 다다른다. 프랑스 오리지널 프로덕션에서보다 더 진일보한 기술과 예술미로 승화시켰다는 제작진의 자신감이 이해될 정도로 사실적이고 '매지컬'한 무대를 지켜보며, 관객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 할 것이다.

프랑스와 일본, 그리고 브로드웨이에서까지 관객과 평단의 호평 속에 성공을 거둔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 우리나라에서 초연되고 있는 이 뮤지컬은 과연 외국에서처럼 성공가도를 달릴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선 보완되어야 할 점이 눈에 띈다. 뮤지컬 부분 부분마다 넘치는 위트와 재기발랄한 상황설정은 관객들에게 일순 폭소를 안겨다 주지만, 전체적인 극의 흐름은 어느 정도 지루함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회가 거듭될수록 다듬어져야 할 부분이 아닌가 생각된다.

남자친구 성화영(28·서울 월계동)씨와 함께 뮤지컬을 보러 왔다는 현정민(30·서울 면목동)씨는 "기대했던 것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만족하며 전체적으로는 조금 느슨한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혹시 주연배우을 골라 예매를 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저는 엄기준 왕팬이고 남친은 박상원을 좋아해서 서로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캐스팅과 상관없이 그냥 예매를 했는데, 오늘 박상원씨가 주연이네요"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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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노트

이 뮤지컬을 보며 음악적인 부분에서 아쉬워했던 관객들은 극 후반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듀티율과 이사벨이 사랑을 나눈 후 듀엣을 부르는 장면에서 아름다운 하모니를 선사하고 극이 종반으로 치달으면서 배우들간 펼쳐지는 환상적인 앙상블은 절정에 이른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의 합창은 전문합창단의 깊이와 어울림을 연상케 할 정도로 아름답게 느껴진다.

주인공 듀티율이 자신의 이상한 초능력에 괴로워하며 신경정신과 의사에게 상담을 받는 장면에서 알코올중독자인 의사는 이렇게 진단을 내린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랑에 빠지게 되면 벽 뚫는 증상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a 듀티율 역의 박상원과 이사벨 역의 임수연이 연기하는 장면

듀티율 역의 박상원과 이사벨 역의 임수연이 연기하는 장면 ⓒ 쇼노트

나는 평범한 남자 성실한 공무원
…중략…
장미에 물을 주고 우표수집을 하고
특별한 거 없다해도 괜찮은 내 인생
아름다운 인생이여 아름다운 인생이여


마지막 장면에서 듀티율의 선창에 이어 출연진 모두에 의해 합창되는 이 노래의 가사에서, 작은 행복에 만족해하며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을 엿볼 수 있다. 별스러운 것 없지만 우리 모두는 각자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덧붙이는 글 |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는 4월 2일까지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됩니다. 공연에 대한 더 상세한 정보는 '벽뚫남' 홈페이지( http://www.musicalpass.com/)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맛있는 음식과 멋스런 풍경사진을 테마로 하는 제 홈피 '멀리서 바라보다 뜨겁게 사랑하기' 
(http://blog.naver.com/grajiyou)에도 올려 놓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는 4월 2일까지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됩니다. 공연에 대한 더 상세한 정보는 '벽뚫남' 홈페이지( http://www.musicalpass.com/)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맛있는 음식과 멋스런 풍경사진을 테마로 하는 제 홈피 '멀리서 바라보다 뜨겁게 사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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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고 대자연을 누리며 행복하고 기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서울에서 평생 살다 제주에서 1년 반,포항에서 3년 반 동안 자연과 더불어 지내며 대자연 속에서 깊은 치유의 경험을 했습니다. 인생 후반부에 소명으로 받은 '상담'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더 행복한 가정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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