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실력과 국어능력 좌우 날개로 난다

'영어가 권력! 그러니까 국어에 투자하자?' 그 이후

등록 2006.03.09 14:21수정 2006.03.15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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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가 권력! 그러니까 국어에 투자하자?' 글에 대해 정작 글을 올린 내 자신이 놀랄 정도로 많은 분들께서 관심을 보여 주셨다.

초등학교에서 영어 교육을 3학년부터 시작하는 것을 1학년으로 당긴다는 기사가 나오자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교육부 반박이 나왔다. 2008년 개교할 인천국제학교 수업료가 연 2천만 원에 이를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된 것처럼 영어를 가르치고 배우는 문제는 개인이나 가정 차원을 넘어선 국가 정책 영역으로 넘어가 버렸다.

하지만 이런 정책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당장 영어 유치원을 보내야 하는지 조기 유학을 보내야 하는지 개인과 가정은 늘 어려운 판단에 놓여 있다. 뚜렷한 답은 없고 지금 내린 선택에 대한 결과도 10~20년은 지나 봐야 결과를 알 수 있기 때문에 더 조바심이 나고 선뜻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다. 하물며 들일 밑천이 빤한 '가난한 아빠와 강북 엄마'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본 기자의 졸고에 대해 여러 분들이 올려 주신 의견을 놓고 이야기를 이어가 보자.

의견 : 그래도 영어는 배워야 한다

물론이다. 영어와 담을 쌓고 국어만 파자는 얘길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영어가 권력'이라는 주장에 떠밀려 모든 걸 희생해서 영어 하나만이라도 가르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다 걸기'를 경계하자는 얘기다. 가난한 아빠와 강북 엄마들은 좀 더 냉정하게 자기가 투자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신중하게 가르쳐야 한다. 영어 권력과 영어 양극화는 엄연한 현실이다. 어차피 승부처가 다르다는 것을 냉정하게 인정하고 접근하자.

우리는 영어를 읽거나 들어 정보를 얻지만 영어 권력 진영은 무슨 미국 명문고 출신 끼리, 무슨 컨설팅 그룹 출신끼리 네트워크로 정보를 얻는다. 이게 영어 권력의 본 모습이다. 영어 유치원이나 조기 유학은 교육의 질에도 차이가 있겠지만 진입 장벽을 통해 걸러낸 세력들끼리 새로운 연줄을 만들어 영어 권력을 굳혀 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걸 따라가는 데 드는 비용은 단순히 우리가 알고 있는 유학비용을 넘어서는 것으로 어떻게든 따라갈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따라 가다가 밀려 난다면 오히려 자식에겐 상처만 남기고 부모에겐 경제적 위기를 불러 올 수 있다.


영어처럼 다른 교육에 비해 돈이나 부모의 지위가 뚜렷하게 영향을 주는 분야도 없다. 알려진 보도만 보아도 자녀를 조기 유학 보내는 부모의 평균치는 학력 석사 이상 월 소득 700만 원 이상이라 한다. 강남 영어 유치원은 적어도 월 100만 원은 들고 인천국제학교 수업료가 월 2000만 원을 넘을 것이라 한다. 보이는 비용이 이 정도고 보이지 않는 것까지 고려하면 여기에 뛰어 들라고 도저히 권할 수가 없다.

이런 불공평한 대결을 해결하는 것은 나라가 할 일이겠지만 당장은 뭘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이고 가난한 아빠와 강북 엄마들이 꼭 필요한 것부터 무리하지 않고 가르치는 냉정한 판단을 내렸으면 하는 것이다. 저쪽은 '영어 권력'을 대물림 하는 것이고 우리는 실제로 쓸 수 있는 '영어 실력'을 키워주는 것이 목표다. 저쪽은 판돈 무제한 베팅이고 이쪽은 있는 만큼만 써야 한다. 절대 빚져서 영어 가르치지 말자. 저쪽에서 월 100만 원 넘는 영어 유치원 보낼 때 우리는 EBS <기글스>라도 열심히 녹화해서 따라 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의견 : 국어 잘하는 아이가 영어도 잘 하더라

적지 않은 분들이 국어를 잘 하는 아이가 영어도 잘 한다는 의견을 주셨다. 영어에 다 걸기를 하기 보다는 영어 실력을 한 쪽 날개로 삼고 국어능력으로 나머지 날개를 달아 주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아마도 국어라는 과목으로 좁혀 생각하기 보다는 국어능력(또는 언어능력)이 갖춰지면 영어도 배우기 쉬워진다는 뜻으로 봐야 할 것 같고 이런 국어능력을 키우는 좋은 도구가 바로 모국어라는 의견이라 생각한다.

특히 해외 유학 경험이 있으신 분들이 오히려 국어능력이 영어능력이라고 지적해 주신 것이 인상 깊었다. 실제 유학을 갔던 내 친구들도 발음이나 회화 같은 것 보다 무수하게 써내야 하는 에세이들이나 발표에 익숙하지 못해서 고생했던 경험들 그리고 한국에선 아예 들어 보지도 못했던 언어추론이나 논리게임 같은 것들을 전하고 있다. 원어민 수준 발음도 중요하지만 영어가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면 그 영어를 이용해서 쓰고 말하는 능력이 발휘되어야 하는데 국어능력이 뒷받침된 사람이 여기에서 진가를 드러낸다는 얘기다.

'새는 좌우 날개로 난다'는 얘기인데 영어실력과 국어능력이 단지 원투 펀치를 갖추는 것이 아니라 원투 펀치가 연타로 들어갈 때 파괴력이 높아지는 것처럼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실력을 키워준다고 할까. 영어실력을 키우면서 얻은 경험들은 국어능력을 풍부하게 하고 국어능력은 영어실력을 키우는데 받침이 된다는 얘기다. 문제는 공교육이건 사교육이건 이걸 체계적으로 해 주는 곳이 없는 현실이라서 당분간은 가난한 아빠와 강북 엄마들이 영어실력과 국어능력을 모두 중요하게 여기고 함께 키워준다는 입장을 갖는 것부터라도 시작하자.

의견: 한문을 가르쳐야 국어를 잘 한다

여러 분들이 한문을 가르쳐야 국어를 잘 한다는 의견을 주셨고 여기에 대해 찬성과 반대가 이어졌다. 조기 영어 교육 논란에 가려져서 그렇지 사실 한글전용과 국한문혼용 문제는 국어 교육에서 쉽게 해결되지 않는 예민한 문제라 하겠다. 현실은 공교육에서 국어 공부는 한글전용으로 굳어진 반면 사교육에선 한문교육이 빼고 갈 수는 없는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다양한 한문검정시험들이 존재하고 입시나 입사 시험에 반영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참고로 필자가 일하고 있는 국어능력인증시험(KET)에서는 한문평가도 문항에 포함되어 있다. 다만 한문 실력 자체를 보는 것이라 한문으로 된 어휘들을 국어의 부분으로 이해하고 접근하는 방식인데 이런 점에 대해서 국어능력인증시험(KET)이 갖는 입장은 좀 유연한 쪽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영어로 한국사람 이름을 표기하는 방법을 묻는 문항도 있었던 것처럼 그것이 한문이건 영어건 국어로 표현하고 생각하는데 하나의 요소가 되었다면 그걸 인정하고 활용하는 능력을 평가에 반영하고 있다.

의견 : 국어가 홀대받고 있다

도서관에서 검색을 하면 영문법 책은 줄줄이 나오는데 국어 관련 책들은 빈약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이걸 비롯해서 국어가 홀대받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우리가 분명 느끼는 것이다. 문제는 홀대받는 국어가 단지 국어 과목을 위축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고 전반적인 국어능력(또는 언어능력) 저하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 그 결과 전반적인 학습능력 저하로도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갈수록 똑똑해지긴 하는데 통 말귀를 못 알아먹는다'는 선생님들의 하소연은 전반적인 국어능력 저하를 뜻하고 있다.

이른바 세계화 또는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면서 개인이 영어를 더 선호하는 것은 실존하는 현상으로 인정해야겠지만 문제는 공적 영역에서 이뤄지는 국어 홀대다. 오늘도 지하철을 타고 오는데 소나무가 자랑인 어느 지방자치단체에서 '파인피아'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자기 고장을 홍보하는 것을 보았다. 외국인까지 고려한 전략인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그래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꼭 여기 뿐 아니라 지금 정부 부처나 지자체들은 뭘 하나 해도 '비전 얼마', '다이나믹 어쩌고'하는 식으로 영어로 나가질 않으면 일이 되지 않는다.

필요하지 않은 부분까지 굳이 영어를 남용하는 것을 정부가 앞장서서 할 이유는 없다. 영어 단어가 자국어에 영향을 주는 것은 그 자존심 강하다는 프랑스마저도 겪고 있는 세계적 현상이긴 하지만 미리부터 남발할 필요는 없고 무엇보다 정부가 나서서 그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기업들이 '갈아 만든 무엇', '좋은 기름으로 살짝 두 번 구운 무엇'하는 식으로 우리말 쓰임새를 늘려 소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던 경우도 있었다.

아시는 분이 거의 없던데 '국어기본법'이 이미 만들어져 있고 시행령도 나와 있다. 현재 국어능력인증시험(KET)과 한국어능력시험(KLT)이 바로 이 국어기본법에 의해 모의검정시험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 법에 따르면 국어능력 검정시험을 본 사람들을 우대해야 한다거나 각 기관은 국어담당관을 지정해야 한다거나 전국에 국어 상담소를 운영한다거나 하는 좋은 내용들은 많이는 있는데 법만 딸랑 있을 뿐 후속 지원이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국어 홀대를 극복하는 책임을 뜻있는 개인이나 단체에게만 지울 것이 아니라 나라에서 책임지고 나설 필요가 있다.

의견: 국어능력인증시험은 무슨 책으로 공부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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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언어문화연구원

국어능력을 키울 수 있는 책을 소개해 달라는 의견이 계셨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딱히 뭐 이 책을 읽으면 된다고 할 수는 없다. 국어능력을 키우는 것은 국어 공부하고는 좀 다른 차원의 얘기로 하루 이틀에 뭘 외워서 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단련하면서 그 능력을 키워 나가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국어능력인증시험(KET) 3대 영역을 요약한 그림 파일을 소개해 드리니 어떤 능력을 키워야 하는지 참고하셨으면 한다. 이 3대 영역을 바탕으로 '언어사고력'을 키우는 것이 목표라 하겠다.

요즘도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필자가 운전면허 딸 때 코스 시험은 외워서 붙었다. 아마 다들 비슷한 경험 하셨을 텐데 '백미러에 맞춰서 세운 뒤 두 바퀴 감았다…' 뭐 이런 식으로 외워서 했다. 지금까지 논술 시험이 딱 이런 식으로 예상 지문을 골라 주고 그거에 대비한 모범 답안을 외워서 고득점을 얻어 왔다. 하지만 이번 대학별 논술에서도 그랬듯이 지문이 다양해지고 복합적인 질문들이 들어와서 예전처럼 외워서 해결할 차원을 넘어섰다. 더 이상 족집게 과외로 해결할 수 없다는 얘기다.

만약 눈을 딱 떠보면 서울 어딘가에 무작위로 데려다 놓고 차종도 그때그때 추첨으로 걸린 것을 몰아야 하는 식으로 운전면허를 딴다고 가정한다면 필요한 것은 코스를 외우는 것이 아니라 어떤 차로 어떤 길을 달려도 잘 갈 수 있는 기본기와 응용력일 것이다. 국어능력을 키우는 것도 비슷해서 어떤 지문이 주어져도 바로 읽고 이해하고 그걸 바탕으로 자기 논리를 세워 표현할 수 있는 능력 자체를 키워주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물론 국어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문법이나 어휘력 같은 기초도 필요하고 기본이 되는 몇 가지 틀을 따라서 읽고 표현하는 것을 훈련할 필요도 있지만 일단 습관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단편적인 정보를 쉽게 얻어 소비하는데 그치고 좀 더 깊게 사실을 확인하거나 다양하게 견줘보거나 나름의 의견을 내는 일과는 멀어지는 추세인데 이런 생활 습관은 패스트푸드를 먹어 비만에 이르는 것처럼 국어능력에 좋지 않다. 신문 보고 책 읽고 일기 쓰고 가족들이 함께 이야기 나누는 작은 습관에서 국어능력이 키워지고 아이 미래가 열린다.

신문에 소개된 어느 강남 엄마 말마따마 '돈으로 해결되는 유일한 과목이 영어'고 사실 영어는 돈을 바르는 만큼 효과가 나타나지만 국어능력은 (물론 돈이 아예 들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좋은 생활 습관과 학습 태도를 갖는 것만으로도 쑥쑥 커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아침마다 신문 보는 습관, 매일 일기 쓰는 습관, TV 뉴스 보고 인터넷에서 다른 각도를 찾아보는 습관들이 바로 국어능력을 키워준다. 고된 생활에서도 틈틈이 책 읽는 아빠, 살림하랴 <오마이뉴스> 시민 기자하랴 바쁘지만 즐거운 엄마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자녀들 국어능력 키우는데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장익준 기자는 현재 국어능력인증시험(KET) 시행본부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장익준 기자는 현재 국어능력인증시험(KET) 시행본부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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