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총리 경질요구는 부당? 과연 그러한가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점입가경 '골프파동'의 가치 혼란

등록 2006.03.09 11:18수정 2006.03.09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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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분야 대정부질문이 열린 지난달 27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해찬 총리가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자료사진)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이 열린 지난달 27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해찬 총리가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자료사진)오마이뉴스 이종호
흐름이 이상하다. 이강진 총리 공보수석은 이해찬 총리가 사의를 표명한 적이 없다고 했고, <세계일보>는 청와대가 이 총리를 유임시키기로 잠정결론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세계일보>만이 아니다. 거의 모든 신문이 청와대가 유턴 한 것 같다는 보도를 내놨다.

사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지난 7일의 일이다. 이백만 청와대 홍보수석은 "이 총리가 사퇴할 경우 국가의 틀이 흔들리게 된다"고 했다. 이병완 비서실장은 "총리를 교체할 정도의 사안인지 사실관계를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문재인 민정수석은 한 발 더 나갔다. "이 총리가 이미 사과한 대로 철도파업 첫날 골프를 치는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며 "언론이 제기하는 로비의혹 등은 부당하다"고 단정했다.

청와대가 이렇게 판단하고 있다면 이 총리를 경질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 된다. 회초리를 들면 될 일에 철퇴를 드는 꼴이 될 테니까….

청와대가 논점을 던졌으니 이제 짚자. 일단 청와대가 안내한 길만 따라가 보자.

논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언론이 제기하는 각종 의혹이 문 수석 말대로 "부당" 한가 하는 점, 다시 말해 사실 판단 문제이다. 또 하나는 이 총리 골프의 적절성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즉 가치 판단 문제다.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캐낸 게 있으면 자세히 설명하라

언론이 제기하는 의혹은 정말 부당한 것일까? 질문은 이렇게 던졌지만 답은 내놓을 수 없다. 의혹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기에 하나씩 차근히 규명해야지 지금 당장 진위를 가름할 수는 없다.


그래서 질문을 약간 바꿔야 할 듯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 의혹이 제기되는 판에 문 수석은 무슨 근거로 "부당하다"고 단정한 것일까?

문 수석의 말은 이랬다. △부산 골프모임은 전임과 차기 상공회의소장, 그리고 영남제분 류원기 회장 등이 한 달에 한번 이상씩 정기적으로 가져온 모임으로 이 총리는 이들의 모임에 참석한 것일 뿐이며 △영남제분에 대한 공정거래위의 과징금은 이 총리 골프모임 전에 확정돼 있었기 때문에 로비를 목적으로 골프를 쳤다는 것은 시점도 안 맞는다.


문 수석은 이런 점을 근거로 들면서 "골프의 성격을 비리로 규정하고, 이 총리 퇴진으로까지 몰아가는 것은 대단히 부당하며 그것을 이유로 경질을 요구한다면 전혀 고려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대단히 강경한 발언이지만 근거는 그리 세 보이지 않는다. 공정위 과징금 문제야 그렇다쳐도 골프모임의 성격에 대한 해명은 완결판이 아니다. 언론이 제기하는 의혹은 골프모임의 성격만이 아니다. 이 총리가 왜 그 골프모임에 참여했느냐이며, 그 골프모임에서 어떤 얘기가 오갔느냐 하는 점이다. 하지만 문 수석은 이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다.

이런 상태에서 "부당"과 "고려 불가"를 공언하는 건 속도위반이다.

고려할 사항이 있다. 청와대 안에는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있다. 고위 공무원의 비위사실 등을 수집·조사하는 곳이다. 이 공직기강비서관실을 지휘하는 최고 책임자가 바로 문 수석이다. 따라서 문 수석의 단호한 '사실 판단'이 나오기까지 공직기강비서관실의 정보가 큰 역할을 했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문 수석의 발언을 일방적으로 내칠 수는 없다. 하지만 바로 이 점이 더 큰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문 수석이 '자신만의 정보'에 기대어 단호한 어조를 끌어냈다면 이는 부적절한 행동이다. '자신만의 정보'에 견줘볼 때 언론이 제기하는 의혹이 "부당"한 것이었다면 차라리 일괄해서 자세히 설명하는 게 맞다. 그래야 불필요한 의혹과 논란을 끝낼 수 있다.

하지만 문 수석이 제시한 '정보'는 파편적이고, 핀트는 언론과 사뭇 다르다. 그래서 공직기강비서관실의 정보 자체가 극히 제한된 것일 가능성을 떨쳐버릴 수 없지만 이렇게 되면 더 큰 문제가 제기된다. 문 수석이 극히 파편적인 정보만 갖고 무리하게 사실 판단을 해버렸다는 애초의 지적이 한층 강화된다.

총리는 공무원 행동강령을 제대로 지켰는가

공무원 행동강령은 "직무관련자로부터 금전, 부동산 선물 또는 향응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향응이라 함은 음식물, 골프 등 접대 또는 교통, 숙박 등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라는 규정도 두고 있다.

이총리의 경우 부산 아시아드 골프클럽의 최모 사장으로부터 골프비를 대납 받았고, 기업인으로부터 술과 식사 비용을 제공받았다. 그래서 명백한 공무원 행동강령 위반 같다. 하지만 문 수석은 아니라고 했다.

"아시아드 골프클럽 사장은 이해관계자(직무관련자)가 아니므로 이 총리가 공무원 행동강령을 위반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했고, "총리의 식사대를 부산 기업인이 대신 낸 것도 사회 상규에 어긋나는 정도는 아니다"고 했다. 기껏해야 "파업이 벌어진 3.1절에 골프를 친 것에 대한 국민정서상 비판이 있을 수 있(는)" 정도라는 말이다.

논란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문 수석은 골프장 사장은 직무관련자가 아니라고 했지만 반론도 있다. 총리가 행정을 총괄 관리하는 위치에 있고, 골프장은 행정기관의 지도대상이란 점에서 직무관련자로 볼 수 있다는 반론 말이다.

더 중한 반박 사례도 있다. 일부 언론이 오늘자에서 인용한 대법원 판례다. "향응을 제공받은 공무원의 뇌물죄가 성립되지 않으려면 접대가 개인적 친분관계 때문에 필요했다는 점이 명백히 인정돼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 총리와 아시아드 골프클럽 최모 사장과의 개인적 관계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별로 없다.

"사회 상규"에 관한 것도 문제다. 국가청렴위는 공무원 행동강령을 제정하면서 숨통을 틔워준 바 있다. 공무원이 어쩔 수 없이 직무관련자로부터 접대나 향응, 편의를 제공받을 경우 그 한도액을 3만원으로 제시했다. 물론 3만원 한도액을 절대 기준으로 제시한 건 아니지만 심리적 마지노선을 설정한 건 틀림없다.

하지만 이 총리가 아시아드 골프클럽 사장으로부터 대납 받은 골프비는 3만8천원이었다. 아울러 기업인으로부터 제공받은 술과 식사 비용은 대략 수십만원, 이를 1/n로 나누면 수만원이 된다.

이것이 "사회 상규"는 고사하고 공무원 행동강령이 포괄적으로 제시한 3만원 기준에 부합하는 것일까?

사회 상규 벗어난 '골프광'... 대통령은 묵묵부답인데 보좌진이 이러쿵저러쿵

백번 양보하자. 언론이 제기하는 의혹은 모두가 '허위'이고, 이 총리 골프 접대는 "사회 상규"에 어긋나는 게 아니라고 치자. 그럼 이 총리 유임은 상규에 부합하는 결정일까?

문 수석 뿐만 아니라 이병완 비서실장도 인정한 게 있다. 철도파업이 시작된 3.1절에 골프를 친 행위는 "부적절한 행동"이었다는 점이 그것이다.

3.1절 골프의 부적절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남은 문제는 단 하나, 부적절지수를 어떻게 매길 것인가 하는 점이다.

부적절지수를 재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문 수석이 제시한 "사회 상규"다. 한국인이 전통으로 여겨온 사회 상규가 있다. 한 번 실수는 봐줄 수 있지만, 되풀이 되는 실수는 실수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총리는 바로 이 사회 상규에 걸린다. 지난해 식목일에 강원도에서 큰 불이 났는데도 골프를 쳤고, 남부지방에 큰 비가 내렸을 때도 골프를 쳤다. 이번이 세 번째다.

사정이 이렇다면 판단을 달리 해야 한다. 범죄자가 동일 범행을 되풀이 저지르면 가중처벌 하는 게 법의 상규이며, 현금영수증 발급을 세 번 거부하면 우선 세무조사 대상으로 분류하겠다는 게 국세청이 어제 발표한 조세 상규다.

그럼 이 총리는? 이 물음에 답할 사람은 오직 노무현 대통령 뿐이다. 하지만 노대통령은 국내에 없다. 아프리카 순방을 위해 출국하기 전에도 묵묵부답이었다고 한다. 인사권자는 말을 아끼고 있는 판에 그 보좌진들은 차단막을 치고 있다.

어찌 보면 이게 가장 큰 문제일지도 모른다. 사실 규명 요구는 외면하면서 자기만의 가치를 공언하는 모습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는 따져볼 일이다. 정무직에 대한 검증, 특히 도덕성에 대한 판단, 그것도 논란이 빚어질 수 있는 판단이라면 말을 아끼는 게 옳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총리에 관해서라면 더더욱 그렇다.

어차피 그에 대한 가치 판단은 대통령이 내린다. 보좌진이 할 일은 대통령의 가치 판단이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사실 판단의 재료를 풍부히 제공하는 일이며, 설령 가치 판단 문제에 대해 입장을 개진한다 해도 그건 대통령 앞에서 '건의' 형태로 하는 게 옳다.

둘러보건대 국민 정서와 상충될 가능성이 농후한 자기의 가치 판단 결과를 대통령 앞에 서서 제시하는 모습, 모양새가 별로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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