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이중생활, 그 위험한 이야기

제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

등록 2006.03.09 19:40수정 2006.03.10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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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여자가 있다. 여러 남자와 자는 것을 지극히 당연하게 생각할 뿐 아니라 자신의 애인이 그렇게 하면 함께 파티를 하자고 말할 수 있는 그녀는 일부일처제 따위는 쓰레기통에 넣으라고 외칠 수 있는 '초월'적 인간이며 놀라운 여자다. 그렇다하여 그것을 세상에 공공연하게 알리는 것도 아니다. 어디서나 며느리 감으로 일등, 아내 감으로 최고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뛰어난 위장술을 발휘한다. 이 여자, 정말 무서운 여자다.

이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가 있다. 처음에는 그저 호감을 느끼는 정도였지만 축구 때문에 여자에게 푹 빠진 남자는 이 여자가 아니면 안 된다는 운명론에 사로 잡힌 상태다. 남자는 여자에게 사귀자고 한다. 여자는 쉽게 응한다. 대신 조건이 있다. 사생활을 건드리지 말자는 것이다. 남자는 대수롭지 않고 생각하고 알겠다고 하는데 얼마 못가 애간장 타는 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사귄다는 것을 연인에 대한 독점으로 생각하는 남자는 애인이 다른 남자와 자유롭게 만나고 관계를 맺는 것을 견뎌낼 재간이 없다.


이럴 때 남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여자를 너무 사랑하는지라 헤어지자고 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그냥 참아내자니 그것도 불가능하다. 벙어리 냉가슴 앓는 심정으로 살아가던 남자는 마침내 한 가지 방법을 알게 된다. 그것은 바로 결혼! 바람둥이 친구의 말마따나 잘 놀던 여자도 결혼하면 어느새 그랬냐는 듯 조신한 아내가 된다는 믿음을 갖고 청혼을 한다. 여자는 거부한다. 하지만 끈덕진 구애에 마침내 여자는 승낙하는데 이번에도 조건이 있다. 사생활 보장이다. 밤늦게 들어오든, 설사 외박을 하든 간에 신경 쓰지 말라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결혼한 남자와 여자는 어떻게 됐는가. 바람둥이 친구의 말처럼 여자는 조신한 아내가 되어 남자와 아름다운 신혼살림을 꾸려갈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반반'이라고 할 수 있다. 여자는 정말 조신한 아내가 되어 남자를 행복하게 해준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것이 있다.

아내는 여전히 다른 남자를 만난다. 약속은 약속이니 남편은 쿨한 척하며 어떻게든 참는다. 하지만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아내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겠다는 말을 하니, 더욱이 이중 결혼생활을 하겠다고 하니 쿨이고 뭐고 세상이 노랗게 보일 따름이다.

아내의 이중결혼을 다룬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는 도발적이다. 일부일처제에 대한 반란을 선언하고 있으니 '도발'이라는 말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물론 예전에도 일부일처제를 겨냥한 문제적인 소설들은 많았다. 하지만 그 소설들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현실에 무릎을 꿇고 마는 문제를 보이며 사라져갔다. 아무리 애를 써서 법과 윤리의 틀을 합리적으로 벗어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뻔한 불륜소설이나 신파조의 이야기를 꺼내다 마는 수준에 머무는 문제를 보였던 게다.

그런데 <아내가 결혼했다>는 이 과정을 뛰어넘었다. 어떻게 도약했는가? 먼저 윤리적인 측면을 보자. 아내 입장에서 이중결혼은 남편이 허락해주면 되는 것이고, 남편이 정 허락해주지 않으면 이혼한 뒤에 다른 남자와 살면 그만이다. 아내로서는 아쉬울 게 없다. 반면 남편은 어떤가. 기막힌 상황이지만 하늘 보고 웃으며 허락할 수밖에 없다. 이로써 윤리적인 측면이 풀린다. 당사자들이 좋다면, 다른 이들의 시선은 상관없이 그 윤리적인 잣대를 자신들의 기준으로 옮길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중생활은 사회에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다. 또한 당사자들에게 '윈-윈' 원리가 되어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길이기도 하다. 그러니 윤리적으로 무엇을 더 따지겠는가. 그럼 법적인 측면은 어떤가? 그 또한 말할 필요가 없다. 결혼식만 두 번 하면 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사는데 혼인신고를 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랴. 이것 또한 당사자들이 만족하면 그만이다. 그러니 이들의 이중생활을 막아서는 건 아무것도 없게 된다.

그러나 역시 소설이 소설 안에서 이 모든 걸 해결했다 치더라도 쉽게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합리적인 과정을 거쳐 공개적으로 벌이는 이중결혼생활이라는 설정은 어딘가 위험하고 무엇보다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한 마디로 '해괴'하고 '망측'하다. 하지만 소설에서 한발짝 걸어 나와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해괴함이나 망측함의 정체가 모호해지고 그 자리에 질문들이 생겨난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평생을 거쳐 살아간다는 것이 가능할까? 사랑이 바뀌어도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우리의 통념은 100% 옳은 것일까?


통념에 대한 의문을 갖게 했다는 것은 <아내가 결혼했다>의 도발이 확실히 위력적이라는 뜻일 게다. 그렇다. <아내가 결혼했다>는 도발성은 그 세기가 강력하다. 또한 위험하다. 통념에 의문을 갖게 하는 건, 아무리 축구를 갖고 소설을 유쾌하고 흥미진진하게 포장했고 세련된 유머와 코믹스러운 장면들로 위장한 가벼운 가면을 쓰고 있다 해도 위험한 것임이 틀림없다.

날카로운 문제의식과 번쩍이는 상상력을 양 날개 삼아 많은 소설들이 무릎 꿇었던 지점에서 가볍고도 경쾌하게 날아버린 <아내가 결혼했다>, 남녀 누구든 한 번 읽으면 유쾌하게 웃을 수 있을 게다. 하지만 두 번 읽으면? 이 땅의 남자는 등골이 서늘해지고 여자는 꿈을 가질 수 있을 지도. 그리고 세 번 읽으면? 남자와 여자는 새로운 생각을 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 <아내가 결혼했다>의 도발적인 시선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으리라. 그만큼 이 소설은 '문제적'이다. 아주 화끈한.

아내가 결혼했다 - 박현욱 장편소설

박현욱 지음,
문학동네,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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