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의 경계를 넘어서

[서평] <중국신화>을 읽고

등록 2006.03.11 14:27수정 2006.03.11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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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세상을 보여주는 <중국신화>를 읽고
넓은 세상을 보여주는 <중국신화>를 읽고현문미디어
아들아이는 그리스 로마신화, 삼국지, 초한지, 살아남기 시리즈를 만화로 섭렵했다. 이런 책을 만화가 아니면 쉽게 보지 못했을 거란 생각도 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렇게 만화책만 보다보니, 줄글로 된 책은 잘 읽지 않고 가벼운 언어감각을 익히는 것 같아 걱정이다. 그래서 만화로도 잘 나온 중국신화가 있지만, 이번엔 줄글로 된 것을 골라 봤다.

현문미디어에서 나온 <중국신화>는 단행본으로 되어 있고 동화로 꾸며졌다. 세상이 처음 만들어 질 때 나타난 신들과 괴물이야기, 선악을 구별되는 세상이야기 따위가 신기하게 펼쳐진다. 신화란,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나 구전되는 것을 글로 기술한 것이다. 그래서 단편적이고 하나의 텍스트가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형성된다.


그러면서도 같은 영역 권에서는 비슷한 신화를 공유하는 데, 견우와 직녀 이야기나 홍수를 피한 남매 이야기, 공주와 결혼한 개 반호이야기, 활을 쏘아 아홉 개의 태양을 떨어뜨린 예 이야기가 그렇다. 이 이야기들은 비슷한 소재로 조금씩 다르게 구성되어 우리의 신화로 자리 잡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 신화를 우리가 빌려와 꾸민 것이라는 소극적인 생각은 금물이다.

중국은 하나의 국가이면서 다양한 종족들로 이루어져 거대한 대륙을 지배하는 나라다. 그런 중국에 꼬랑지처럼 붙어 있는 작은 땅 덩어리로 오천의 역사와 문화를 유지했다는 것은 실로 대견한 일이다. 더욱이, 우리는 고구려와 발해 같이 대륙을 차지했던 역사도 있다. 고구려와 발해가 지금의 중국 영토를 지배했던 시기, 우리는 중국의 문화를 수용하기도 하고 우리의 문화를 중국에 전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니, 중국의 신화와 우리의 신화가 흡사하다하여, 우리가 중국문화권에 속한다고 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아이들에게 중국신화와 한국신화를 들려 줄 때, 중국과 우리는 같은 동북아 영역에 속해 있다는 것과, 그렇게 가까운 지역에 사는 나라는 비슷한 신화와 문화를 공유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

이 책에는 중국역사상 가장 평화롭게 나라를 다스렸다는 요·순임금과 우 임금에 대해 나온다. 순은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와 계모 밑에서 자랐다. 계모와 배다른 동생의 온갖 구박을 받으면서도 부모님께 효심을 다 한다. 이런 순의 사람됨을 알아보고 칭송하며, 따르는 자들이 생겨났다. 결국, 요임금 귀에까지 순의 따뜻한 마음이 알려졌다. 마침, 훌륭한 사람을 골라 왕의 자리를 물려 주려했던, 요임금은 순에게 자신의 두 딸을 아내로 삼게 한다.

순이 왕의 두 딸을 아내로 맞자, 배가 아파진 계모와 동생은 아버지와 합세하여 순을 죽이려 한다. 순은 지혜로운 아내들 덕분에 요행이 살아 돌아온다. 이 신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두 아내의 지혜로움이 아니다. 미련하리만치 우직한 순임금의 효심이다. 이 순 임금이 우리와 같은 민족인 동이족이 세운 은나라의 시조이다.


태양과 달에 관한 흥미로운 신화도 있다. 먼 옛날엔 태양이 10개가 있었다. 10개의 태양은 하늘의 신인 제준이 희화에게서 나은 아들들이다. 10개의 태양은 하루에 한번씩 교대로 하늘에 떠오르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10개의 태양이 재미삼아 하늘에 떠올라 놀았다. 그러자 사람들이 큰 고통을 받았다. 이를 지켜보던 제준은 활을 잘 쏘는 천신인 예를 지상에 보냈다.

제준은 예가 아들들에게 겁을 주면 원래 상태로 돌아 갈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만 9개의 태양을 쏘아 죽이고 1개만 남겼다. 이렇게 아홉 아들이 죽자, 제준은 예에게 벌을 내렸다. 그래서 예는 아내와 땅에 내려와 살게 되는데 예가하는 사냥 때문에 지상에 동물이 남아나질 않게 되어 먹고살기 어려워졌다. 아직 예에게는 신선이 되는 약이 있었지만, 사랑하는 아내를 홀로 두고 신선이 될 수 없어 먹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사냥을 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아내가 없었다.


알고 보니 아내가 신선이 되는 약을 먹고 달나라로 올라간 것이다. 달나라로 올라간 항아는 남편을 버린 것이 부끄러워, 평소에는 두꺼비 모습을 하고 있고 손님이 찾아오면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항아 말고도 달나라엔 옥토끼와 오강이 산다. 옥토끼는 이 곳에서 사람들에게 행복을 내려주기 위해 열심히 약을 빻고 있다. 오강은 원래 신선이 되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큰 실수를 저질러 스승이 달로 보내 도끼질을 하는 벌을 내렸다. 그래서 오강은 지금도 계수나무를 향해 열심히 도끼질을 하지만 계수나무를 쓰러뜨릴 수 없다.

이 밖에도 이 책에는 태양과 달리기 경주를 한 과보족 거인이라든지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고사성어의 유래, 삶과 죽음을 다스리는 남두육성과 북두칠성의 이야기 따위의 신기한 이야기들이 있다. 그런데 이런 신화들이 허무맹랑한 소리로만 들리지 않았다. 단순히 인간의 염원과 상상 속에서 만들진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인류의 역사 속에 홍수와 폭염 같은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또 당시에는 아직 살아남은 공룡이나 익룡과 비슷한 동물이 있었을 수도 있지 않은가, 이런 동물들은 사람을 위협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활 따위의 새로운 무기를 잘 다루는 예와 같은 사람이 나타나 이런 괴물들을 물리친 것이 아닐까, 그래서 괴물이 없어지자, 예와 같은 사람은 세상을 평화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계층으로 등장하여 스스로 괴물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 아닌지 말이다.

그래서 필요해진 것이 질서이고 은나라 순과 같은 인물이 등장하여, 우직한 효심 즉, 상하의 질서와 예를 섬기게 된 것이란 생각을 해 보았다. 아쉬운 점은 이건 나의 사상이고 이 책은 아이들 책이라는 것이다. 중국신화를 인류의 역사적 사건에 따라 분석해 놓은 책이 있다면, 한번 읽어 보고 좀더 근거 있는 가상세계을 아이에게 그려주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덧붙이는 글 | 중국신화/ 이경덕 글 / 현문미디어

리더스 가이드, 알라딘, 네이버에 실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중국신화/ 이경덕 글 / 현문미디어

리더스 가이드, 알라딘, 네이버에 실었습니다.

중국신화 - 넓은 세상을 보여주는

이경덕 지음, 송은경 그림,
현문미디어,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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