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도 다리 위로 올 봄 햇물이 밀려오고 있다

등록 2006.03.12 10:02수정 2006.03.12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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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봄산.

후두둑, 잔설을 털고 날아오르는 오색 빛의 꿩 한 마리, 그 뒤를 따라 오르는 까투리들이 내 묵은 잠을 깨우고 간다.


산, 산길.
제 막 물오르기 시작하는 이 향기. 어디선가 삭정이를 건드리며 들려오는 이 호젓한 바람 소리. 겨우내 낙엽이 깔린 그 위로 이제 더욱 부드러워진 봄 흙을, 그대여, 한 번 밟아 보았는가.

아직까지 밟아 보지 못했다면 창문을 열어놓고 봄산에 올라보라. 가지 끝마다 밀어 올리던 꽃눈이 어제인가 싶더니, 오솔길 옆 바위 틈새로 산수유꽃이 노랗게 불을 밝혔다. 수천의 꽃등을 들고 선 꽃나무, 첫사랑의 소녀처럼 눈 밝게 서 있다.

산비탈 묵정밭에는 힘 있게 보습날을 박는 농부 하나, 바지게 위로 나비 한 마리 앉아 있고, 무당의 경 읽는 소리 돌담 사이로 흘러나온다.

수만 송이 물꽃을 일으키며 봄 길을 돌아 나오는 배들, 날치처럼 유선형의 몸들이 다도해(多島海)를 돌아 지금 막 돌산대교 아래를 지나가고 있다. 운동장에는 이제 막 깨어난 병아리들의 함성이 예까지 들려오고,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작년 겨울에 져 버린 구절초 곁에 앉아본다.

남해마을 끝자락,
이제 막 도착한 기차에는 동백꽃처럼 붉은 가슴들이 쏟아지고, 오동도 다리에는 올 봄, 햇물이 밀려오고 있다.

종포, 용굴.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반짝이는 환호성을 울리는 향일암, 동백꽃들. 그 위로 은가루는 쏟아지고, 은빛인지 바다인지 장엄하게 잠기는 화엄의 바다. '세상에! 눈이 모자라서 못 본다'는 무주구천동에 사는 시골 아낙네의 얘기가 문득 바람결에 들려오고.


당나라 시인 백낙청이 심양강 지방에 유배 가서, 어느 달밤에 뚜르릉 하고 비파줄 뜯는 소리를 듣고, '곡조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정이 먼저 통한다(未成曲調 先有情)'고 하더니, 봄 산에서 '꽃이 피기도 전에 마음이 먼저 동한다'.

오동도의 봄
오동도의 봄윤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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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5년여 세계오지 배낭여행을 했으며, 한강 1,300리 도보여행, 섬진강 530리 도보여행 및 한탄강과 폐사지 등을 걸었습니다. 이후 80일 동안 5,830리 자전거 전국일주를 하였습니다. 전주일보 신춘문예을 통해 등단한 시인으로 시를 쓰며, 홍익대학교에서 강의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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