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반위의 천사 '김연아', 큰 나무가 되길

등록 2006.03.17 11:56수정 2006.03.17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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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즈믹 댄서(Cosmic Dancer)>라는 영국 영화가 있었다. 거기에는 '티 렉스'(T. Rex)라는 록 그룹이 만든, 영화제목과 같은 제목의 노래가 나온다.

I was dancing when I was twelve(나는 열두 살에 춤추기 시작했어)
I was dancing when I was aaah(아아 소리밖에 할 줄 모를 때부터 춤을 췄지)
I danced myself right out the womb(엄마 뱃속에서 나올 때부터 춤을 췄어)
Is it strange to dance so soon?(그렇게 일찍부터 춤을 추다니 이상하지?)



a 한국의 '피겨 요정' 김연아가 7일 슬로베니아 류블리나에서 열린 2006 국제빙상연맹(ISU) 세계주니어피겨선수권대회 쇼트프로그램에서 멋진 연기를 펼치고 있다.

한국의 '피겨 요정' 김연아가 7일 슬로베니아 류블리나에서 열린 2006 국제빙상연맹(ISU) 세계주니어피겨선수권대회 쇼트프로그램에서 멋진 연기를 펼치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크레센도적(점점세게)인, 그런 노랫말로 음악은 시작된다. 그렇다면 T. Rex의 음악에서 주장하는 '코즈믹 댄서'(우주적 춤꾼)는 처음부터 춤을 추도록 되어 있는 사람, 타고난 춤꾼, 그 사람의 존재가 곧 '춤'으로 설명될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일 것이다. 세상의 모든 길 위에서, 특히 그 길이 예술인의 길이라 할 때, 원래부터 그 길을 가도록, 타고난 사람보다 더 위대한 사람은 없다.

나는 2006년 3월10일 새벽, TV를 보다가 그런 사람을 목격했다. 바로 슬로베니아 류블랴나에서 열린 '세계 주니어 피겨 스케이팅 대회'에 참가한 김연아 선수였다. 김연아 선수는 1990년 9월 생으로 올해 16살이 됐다. 그녀가 은방위에서 안무를 펼칠 때 화면을 스쳐간 피켓이 있었는데 거기엔 'Heavenly Creature'라고 씌어 있었다. '신의 창조물'이라는 뜻으로 그보다 더한 극찬은 없을 것만 같다.

김연아 선수는 배경음악으로 1983년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연출 및 주연을 맡았던 영화 <옌틀(Yentl)>의 대표곡(Song Score) < Papa Can You Hear Me?'(아빠, 듣고 계시나요?)>를 사용했다. 그 음악은 '이착 펄만'의 바이올린과 '존 윌리엄스'가 지휘하는 '피츠버그'교향악단의 협주곡을 편곡한 것이었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가사는 없다. 펄만과 윌리엄스의 연주시간은 4분이 조금 넘지만, 3분30초의 길이로 편집했을 것이다.

음악은 아름답고, 다소 슬퍼서 고독한 사람이 몰두해서 듣는다면 눈물을 흘리고 말 것이다. 아름다운 선율의 파도사이에서 움직이는 몸짓을 보면서 나는 "우리에게도 이렇게 아름다운 은반위의 천사가 있었구나"라고 나는 생각했다. 음악에 대한 소화력도 탁월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는 1위로 입상했다.

로마시대에 있었던 원형 경기장을 생각해 볼 때 이 시대의 수많은 경기장, 극장들의 디자인은 거기서 크게 진화되지 않은 모습들을 가진다. 빙상경기장은 원형 경기장의 그라운드가 얼음으로 바뀐 것이다. 거기서 벌어지는 아이스하키 경기는 로마시대와 비교한다면, 검투사들의 싸움을 연상케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좋아하는 쇼트트랙 경기는 다이내믹한 전차경주, 또는 단거리의 달리기 시합에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피겨 스케이팅'은 거기서 벌어지는 모든 게임 중에서 가장 예술적이며 가장 평화로운 모습을 갖는다.


a 이착 펄만의 Cinema serenade 자켓사진

이착 펄만의 Cinema serenade 자켓사진 ⓒ 나의승

그녀의 이번 1위 입상은 이 땅에 '피겨 스케이팅'이 시작된 이래로 약 100년 만에 일어난 쾌거라고 한다. 이제 사람들은 '트리플 루츠', '트리플 악셀', '더블 악셀' 등의 단어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우리들의 숲에 미칠 영향을 생각할 때, 그녀는 보석 같은 존재다.

감동의 짧은 시간 이후, 우리들의 숲에 이제는 그와 같은 사람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인프라'가 충분히 쌓여 있어서, 그와 같은 즐거움을 누릴 자격이 우리에게도 있었던 것인지, 조금은 걱정되기도 하는데, 만약 그렇지 않다면 김연아의 존재는 사람들의 숲에서 아름답지만 화분속의 나무, 혹은 고독한 섬과도 같은 존재일 수 있을 것이다.


귀하고 예쁜 나무, 다른 나무들의 사랑과 이해와 보호가 필요한 나무, 그가 미래에는 잘 자라서 보기 좋은 큰 나무가 되고, 그의 그늘에서 아이들이 놀고, 쉬었다 가는 마음씨 좋은 나무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다. 그래서 어떤 미래에 소수 정예의 세계적인 피겨스케이팅 아카데미가 설립될, 그런 날도 온다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월간 전라도닷컴>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월간 전라도닷컴>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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