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사랑한 악마의 경고

[서평] <사랑에 빠진 악마>를 읽고

등록 2006.03.13 13:35수정 2006.03.13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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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인들이 듣고 가로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마태복음 12장 24절)

알아야 읽힌다


18세기 환상문학의 선구자로 알려진 자크 카조트(Jacques Cazotte 프랑스 1719~1792)는 <사랑에 빠진 악마>(최애영 역/열림원 간)에서 위 성구에 등장하는 귀신의 왕 바알세불, 곧 베엘제뷔트Béelzébuth(베엘제불이라고도 불린다)를 위험하고도 매혹적인 악마로 둔갑시켜 당대가 안고 있던 고민의 일단을 보여준다.

이 소설이 발표되던 18세기 후반은 중세의 미망에서 벗어나 이성과 합리의 계몽주의가 농익고 짓물러, 이성마저 회의 되던 때이다. 문학적으로는 고전주의의 '틀'이 해체되면서 낭만주의의 자유분방함이 발아하던 시점이기도 하다.

그런데 18세기 후반 들어 중세와의 단절을 이룩하는 데 기여한 합리적 회의정신이 역설적으로 이성의 절대성에 대해 회의하고 그 한계를 부각시키는 사조를 낳고, 급기야는 이성자체에 회의를 품는 신비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여지까지를 제공하기에 이른다.

다른 한편으로는 무도덕주의와 쾌락지상주의를 표방하던, 개인의 절대자유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면서 감각적 쾌락보다 감정적 깊이의 우월성을 우선시하려는 경향이 대두되기도 하였다.

이 시기에 등장한 카조트의 악마는, 따라서 당대의 회의에 기댄 새로운 미학이자 이성의 합리성에 회의를 던지는 '지적 불확실성'에 대한 당대 사람들의 불안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시기적으로 '사실'과 '낭만'의 접점에서 태어난 것이 그의 악마이고 법(교리 혹은 교회법)과 자유(이성 혹은 개인), 이 두 범주 어디에서도 편안할 수 없는 불안은 환상의 세계를 도피처로 삼을 수밖에 없다.

악마란 신 혹은 신성이 전제된 개념이다. 이미 이항대립의 구조를 내포하고 있는 악마이고 보니 카조트의 악마 역시 이성과 열정, 도덕과 욕망, 자연과 초자연, 실재와 비실재, 꿈과 현실 등의 경계에서 시대를 희롱하고 정신의 회의를 조롱한다. 비온데타, 즉 악마는 다음과 같이 독백한다.


"가능한 것은 어디에 있으며 불가능한 것은 또 어디에 있는가?"

그래도 모르겠다

악마가 사랑에 빠졌다? 근위대의 청년장교이자 귀족가문의 젊은이 알바로를 악마가 사랑을 했다고 한다. 그 악마는 누굴까? 누구냐고 물으니 비온데타, 곧 악마가 대답한다. "나는 공기 요정입니다. 요정 중에서도 으뜸가는 요정이지요." 믿을 수 없다.

불신하는 우리들에게 알바로가 말해준다. "나는 이 말을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겪은 일을 이해한 적이 있었던가? 그 모두를 꿈같다고 생각했다. 인생이란 꿈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다른 사람보다 훨씬 이상한 꿈을 꾸고 있을 뿐이다."

말 그대로 환상이다. 아니 실제였으면 하는 꿈이고 꿈이기에 다행인 실제다. 책을 읽는 독자들도 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악마(라 표현하지만 그녀는 아름답고 지적이며 순종적이기까지 하다)와 관계한 알바로는 의심하고 주저하면서도 실제이기를 바란다. "내가 정말 잠이 들었을까? 차라리 그 모든 것이 한낱 꿈이었다면 내가 오히려 행복할까? 난 그녀가 불을 끄는 것을 보았다... 그녀가 불을 끈 거야... 그녀였어..."

알바로에게 비온데타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으로 다가온다. 그녀의 마법에 빠지지 않으려는 알바로의 이성은, 그러나 주체할 수 없는 열정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나는 그녀의 입술에서 멀어지기를 원했지만, 도저히 그림으로 표현할 수 없는 그 흰빛과 그 부드러움과 그 조화로운 곡선의 두 팔은 나를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꽁꽁 묶어버렸다..."

악마의 유혹 앞에서 알바로는 자신 스스로 확고하게 지키려했던 관성적 가치, 어머니의 허락을 받은 후 관계를 맺고 결혼을 하려던 신념마저도 포기하고 만다.

"... 결국 마라빌랴스 성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나를 결심시킨 것을 안다면..... 그래요! 결심이 섰어요.... 어디로든 떠납시다. 거기서 내 가족의 동의를 기다리기로 합시다..."

"우리의 결합. 우리의 인연이 타인의 의지에 달려 있다니... 당신에게서 당신을 얻는 것이 아니라 당신 어머니에게서 당신을 쟁취해야겠군요." 이랬던 비온데타는 알바로의 말에 이번에는 정반대로 말한다. "난 그분들의 처분에 나를 맡길 생각이에요. 난 부드러움과 배려와 복종과 인내심을 놀랍도록 발휘할 거예요. 시험에 정면으로 대응하겠어요."

도대체 카조트는 악마를 통해 무엇을 우리에게 말하려는 것일까? 자신이 살았던 시대의 회의하는 이성의 불안을 말하려는 것일까. 당대의 쾌락지상주의에 대한 일침을 가하고자 한 것일까. 어렵다.

알바로의 결심을 조롱하듯 결혼이란 관습 혹은 제도에 대한 일침은 또 얼마나 당당한가. "당신들의 의식은 기만에 대비하기 위해 취해지는 예방책일 뿐이에요. 난 그런 것이 중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현대의 자유연애사상보다 훨씬 시대를 앞서가고 있다.

결국 내 안의 것이다

살바도르 달리 작/십자가에 매달리신 성 요한네스의 그리스도/1951
살바도르 달리 작/십자가에 매달리신 성 요한네스의 그리스도/1951한길아트
신은, 악마는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믿는 자에게만 신은 존재한다. 이 소설의 가장 큰 유산은 환상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들이 실제보다 더욱 실감나는 교훈을 준다는 점이다.

마침내 사랑을 쟁취한 악마가 말하는 고백은 정직하기만 하다. "하지만 당신은 알아야만 해.... 내가.... 내가 악마라는 것을 말이야. 내 소중한 알바로, 난 악마야....."

알바로의 꿈에 대해, 악마의 유희에 대해 어머니가 부른 케브라쿠에르노스(악마의 사악한 시도를 물리친다는 뜻을 가짐) 선생은 말한다. "우리의 적은 인간들이 서로를 타락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계략들을 차용함으로써 그 공격방법에 있어 놀랍게도 교묘해졌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 말은 악마의 교활함이 인간이 만든 계략을 차용한 것이라는 사실에 다름 아니다. 작가의 패러독스가 긴 여운을 남긴다.

"진실과 거짓이 혼합된 모호함과, 휴식과 각성 사이의 비몽사몽의 상태를 조작하게 된 것이지요." 악마 스스로 실체를 보여줬던 마지막 장면에 대한 해석은 곧 이 작품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 환상과 실제가 모호한, 현실과 기대가 뒤범벅이 된 사건이 이 소설의 줄거리가 아니던가.

그리고는 악마의 퇴장은 예정된 실패임을 주장한다. "악마로 말하자면, 그의 후퇴는 어쩔 수 없는 숙명이었습니다." 이 대목에 이르면 악마보다 인간이 더욱 사악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앞에서 선생은 "악마가 주장하는 자신의 승리와 나리의 패배는 나리께도 그에게도 한낱 착각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나리께서는 회개를 통하여 그것을 말끔히 씻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라며 신의 구원에 인간의 졸렬한 타락을 기대고 있지 않은가.

신이든 악마이든, 환상이든 실제든 결국에는 우리 자신 안에 있는 것을, 불안을 누군가에게 의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우리에게 알바로는 말한다. "비온데타, 내가 나 자신의 유일한 적이라오."

사랑에 빠진 악마

자크 카조트 지음, 최애영 옮김,
열림원,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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