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속에서도, 지옥에서도 우리는 별을 본다

[책 에세이]<초콜릿 우체국>과 <별들의 들판>을 읽고

등록 2006.03.14 16:21수정 2006.03.14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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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강토의 밤을 얼리고 있다. 졸린 눈을 부비며 일어난 새벽, 습관처럼 컴퓨터 전원을 켜고 베란다로 나가 담배에 불을 붙인다. 창밖을 보니 3월의 봄눈이 멀리 희뿌연 하게 논두렁과 논을 갈라놓고 있다. 시린 밤공기의 막이 팽팽하게 쳐진 하늘에는 별빛이 유난히 반짝인다. 그 빛이 내 가슴을 찌른다. 선물로 받은 책을 단숨에 읽고 썼던 감상 몇 자를 떠올린다. 황경신의 <초콜릿 우체국>이다.

초콜릿 우체국/황경신/북하우스
초콜릿 우체국/황경신/북하우스교보문고
"천문학자들에 의하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밤하늘의 별들은 현재 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별빛이 그 별을 떠났던 때에 그곳에 있었을 뿐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별빛은 이미 소멸되어 그 존재조차 사라진 죽은 별의 빛일 수 있다는 것이다…그것만으로도 별빛은 아름답지 않은가?"(위 책의 발문 중에서)


"지금은요, 수백 장의 새장을 그리고, 새를 기다리고, 그런 과정들이 너무 막막하고 힘들게만 느껴져요. 전 그냥 누군가 그려 놓은 새장 속으로 날아 들어가서 마음 놓고 노래만 부르면 좋겠어요. 하지만 하루키가 그런 말을 했죠. 누구도 종교에서 기적만을 잘라 가질 수는 없다고, 그러니 사랑에서 기쁨만 잘라 가질 수도 없겠죠."(위 책의 발문을 쓴 황인뢰에게 보낸 저자의 메일 중에서)

작가 황경신은 월간 잡지 <페이퍼>의 편집장이다. 그가 <페이퍼>에 연재한 아주 짧은 장편, 즉 손바닥 장편 중 40개의 작품을 책으로 엮어 낸 것이 <초콜릿 우체국>이다. 첫 편의 에피소드는 코끼리가 스케이트를 탈 수 있도록, 스케이트화를 코끼리 발에 신기기 위한 동물들의 회합이다. 얼마나 기발한 상상력인가?

단막극으로 제작되어 방영되기도 한 '곰스크로 가는 기차'는 남녀 간의 사랑과 각자의 입장에 따라 다른 삶의 방식, 애정의 플랫폼을 가상의 공간인 곰스크역과 일정한 스케줄대로 오고 가지 않는 열차 시간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보여준다.

<초콜릿 우체국>을 보면 천사들은 인간에게서 질투심을 없애려고 노력하고, 사람들은 기억 속 사람들에게 초콜릿 선물을 보낼 수 있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표현이 꼭 어울리는 별빛 같은 이야기들이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의 느낌과 어우러져 우리를 순수하고 투명한 동심의 세계로 끌어 들인다.

누구도 종교에서 기적만을 가질 순 없다

우연히 몇 편의 작품을 알게 된 후로, 아주 가끔씩 순수하고 맑은 영혼의 글을 만나고픈 생각이 들면, 나도 모르게 황경신의 홈페이지를 방문하곤 했다. 그녀는 발문을 쓴 황인뢰 PD와 의기투합하여 '한 뼘 드라마'를 만들기도 한 작가다. 그녀의 책 첫 장에서 만난 별과 별빛의 기억. 나도 모르게 내 무의식은 별빛처럼 반짝인다. 오늘만큼은 내 영혼도 저 별빛처럼 아름다울 것만 같다.

책을 읽으며 나도 황경신처럼 '새장을 그리고, 새를 기다리는' 내가 아니라 '누군가 그려 놓은 새장 속으로 날아 들어가서'는 '마음 놓고 노래만 부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나는 또한 알고 있다. '누구도 종교에서 기적만을 가질 수 없음'을, '그러니 사랑에서 기쁨만 잘라 가질 수도 없음'을 말이다.


그럼으로 나와 여러분은 아름다운 다이아몬드가 되기 위하여(황인뢰는 발문에서 황경신의 글을 별빛과 엄청난 압력을 견디어 비로소 탄생하는 다이아몬드의 아름다움에 비교하고 있다) 엄청난 압력과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높은 고열 속에서 생성의 고통을 견디어야 한다.

나와 여러분은 이미 생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 만들어져야 하고 늘 매일매일 다르게 생성되기 위하여 스스로를 고난의 시간 속으로 내던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 지구에 도달하여 누구의 눈에 포착되고 비춰질지도 모를 빛을 떠나보내는 저 밤하늘의 별과 같이, 지금 여기에서, 우리 자신의 빛을 저 우주를 향하여 혹은 누군가를 향하여 떠나보내야 한다.

그 치열한 삶에의 사랑이 있다면 우리의 빛은 누군가의 눈에 저 밤하늘의 별빛과 같이 반짝이는 아름다움으로 보일 것을 굳게 믿어야 한다.

내 상념은 공지영의 <별들의 들판>으로…

별들의 들판/공지영/창비
별들의 들판/공지영/창비교보문고
아름다운 별빛은 여전히 빛나고 있다. 내 눈에 별빛이 포착 되었듯이 베를린의 하늘에도 별빛은 빛나고 있으리라. 하필이면 왜 베를린의 별빛인가? 내 상념의 나래가 공지영의 <별들의 들판>으로 날아간 까닭이다. 초콜릿 우체국이 이 밤에 끄집어낸 기억 속의 장소이듯이 공지영의 들판 역시 기억 속의 장소이다. 기자는 다만 별빛을 보고 그 빛이 내려앉았을 장소를 떠올리고 있을 뿐이다.

5년 만에 작품을 내놓으면서 공지영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오랫동안 칼을 놓았다가 이제 어쩔 수 없이 수술실로 들어선 의사처럼 두려웠다…. 결국 나는 묻고 있었던 것 같다. 쓰고 싶은데 다시 소설가가 되고 싶은데, 될 수 있을까요?" 공지영은 그렇게 불안해하며 별들의 들판에 섰던 것이다.

그 소설집의 첫 단편은 '빈들의 속삭임'이다. 별빛에 홀린 나는 이제 빈들의 속삭임까지 들리는 상념의 공간에 나를 세운다. 주인공 여자는 전 남편과 헤어져 베를린에 산다. 푸른 눈의 이방인 의사와 행복한 삶을 살고 있지만 전 남편 사이에서 낳은 여민 때문에 아버지와 살고 있는 그를 만나기 위해 뉴질랜드를 방문한다. 그녀에게 그것은 전남편과의 지옥 같았던 결혼 생활을 떠올려야 하는 고통이다.

화가였던 전 남편은 화단의 평단과는 달리, 그녀에게는 상습적인 폭력과 잔인한 가해를 서슴지 않는 병든 영혼의 소유자였을 뿐이었다. 폭력을 감내하고 버티던 인고의 세월은, 이제 생각하면 결국 헛된 낭비의 시간이었다. 그녀에게 폭력에 지나지 않았던 그의 '광기'를, 세상은 '예술혼'이라는 옷을 입혀 침이 마르게 칭송했다.

"그에게는 광기가 있다. 그 광기는 푸른빛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색채로 표현된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언뜻 오싹한 기분이 들기도 하는 것은 비단 내가 평론가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의 그림이 그런 오싹한 광기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을 사로잡는 것은 그 푸름 밑에 있는 붉은 열망 때문이다. 아니 갈망이라고나 할까, 잡히지 않는 것, 잡을 수 없는 것에 대한 뜨거운 갈망…"(책 속에서)

그 광기가 가정에서는 잔인한 폭력과 가학으로 가장 소중한 사람의 영혼을 짓이기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니 갑자기 별빛은 빛을 잃는다. 밤하늘은 이제 바로 그 푸름 뒤에 붉은 열망을 숨긴, 잡히지 않는 것에 대한 갈망으로 영혼이 병들어 가고 있는 위선자들의 세상으로 바뀐다. 상상력의 세상에서 내려오면 이처럼 현실의 지옥이다. 밤하늘에 바람이 세차다. 파동은 팽팽한 긴장을 찢는다. 할 수 있는 일이란 두려움에 떠는 것뿐이리.

"어떤 시인이었던가, 바람이 불지 않아도 낙엽이 떨어지는 건, 지구 한끝에서 누군가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책 속에서)

마찬가지로 어깨를 들썩이며 울 수밖에 없어도 우리에게 황경신이 있고 공지영이 있고 그들을 읽는 우리이기에 바람을 견딜 수 있지 않은가? 또 다시 별을 볼 수 있지 않은가.

덧붙이는 글 | * 초콜릿 우체국/황경신/북하우스/11,000원

* 별들의 들판/공지영/창비/9,000원

덧붙이는 글 * 초콜릿 우체국/황경신/북하우스/11,000원

* 별들의 들판/공지영/창비/9,000원

초콜릿 우체국 - 황경신의 한뼘이야기

황경신 지음,
소담출판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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