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오전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과 김근태 최고위원등 지도부가 최고위원회의에서 참석자들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자료사진).오마이뉴스 이종호
여권의 입장은 정리된 걸까? 열린우리당은 그런 것 같다. 어제 최고위원 회의를 열어 이해찬 총리 사퇴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정리했고, 김한길 원내대표는 노무현 대통령이 귀국하는 대로 이 입장을 청와대에 전달한다고 한다.
그럼 청와대는? 아니다. 입장이 정리된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유임론에서 원칙론으로 약간 후퇴했다는 보도는 있지만 사퇴 입장을 굳혔다는 소식은 없다.
그래서 궁금하다.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이 기세싸움을 하는 걸까? 실상은 알 수 없지만 대충 엿볼 수 있는 뉴스는 있다. 두 가지다.
대통령 귀국 전에 내려진 '무력시위' 긴급소집령
<한겨레>와 <조선일보>는 열린우리당 최고위원들이 지난 9일 노량진 홍어집에서 긴급 모임을 갖고 이총리 사퇴 불가피론을 정리했다고 나란히 보도했다.
또 <동아일보>는 열린우리당이 오는 16일 긴급 의원총회를 열기로 하고 외유 중인 30여 명의 의원에게 귀국령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이 두 뉴스가 함의하는 바는 뭘까? 뉴스 그 자체만 봐서는 독해가 쉽지 않다. 흐름 속에서 이 뉴스를 보는 게 온당하다. 시점에 주목하자.
열린우리당이 노량진 홍어집에서 긴급 최고위원 회의를 연 9일은 이 총리 유임론이 급속히 퍼지던 시점이었다. 7일과 8일 청와대 관계자들이 잇따라 나서 이 총리를 엄호한 데 이어 9일 아침에는 이강진 총리 공보수석이 "이총리가 사의를 표명한 적이 없다"고 말한 내용이 <조선일보> 지면을 탔다.
바로 그 날 저녁 열린우리당이 긴급 최고위원 회의를 소집했고(이 날 회의는 오후에 갑자기 잡혔다고 한다), 회의 결과는 유임론에 쐐기를 박는 것이었다.
16일 의원총회는 노대통령 귀국 이틀 후에 열린다. 노대통령이 청와대 보좌진과 이 총리 본인으로부터 사태 전말을 보고받은 뒤에 열린우리당의 긴급 의총이 열린다.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긴급 의총 안건은 '대응방안 논의'다. 무엇에 대응하겠다는 것인가?
노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의 사퇴 불가피론을 수용한다면 대응방안을 논의하고 말 것도 없다. 따라서 긴급 의총에서 논의할 대응방안은 '만약의 경우'에 대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비상국면일 때 발동하는 의원 전원 소집령을 내린 것도 이런 해석을 뒷받침한다.
하지만 정작 주목할 점은 다른 데 있다. 열린우리당이 긴급 의총 소집을 공고한 시점이다. 노 대통령이 귀국하기도 전에 소집령을 공고했고, 개최 시점은 노 대통령 귀국 이틀 후로 잡았다.
긴급 의원총회가 선제적 예방조치의 성격을 띤다는 분석은 그래서 나온다. 일종의 '무력시위'라는 얘기다. '만약의 경우'가 발생할 것을 우려해 대응방안을 모색하고자 하려는 것보다는 '만약의 경우' 자체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압박방안'을 미리 꺼냈다는 분석이 나올만 하다.
사퇴불가피론 정한 뒤에 여론조사 실시
열린우리당이 굳히기를 하려는 흔적은 이들 사례 외에도 널려있다.
열린우리당이 사퇴 불가피론을 정리한 건 지난 9일, 이 입장을 이 총리에게 전달한 건 그 다음날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열린우리당은 그 다음부터 의견수렴 절차에 들어갔다. 소속 의원을 상대로 이 총리 사태 해법을 청취하고, 일반인 1500명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시점은 지난 주말이었다. 결과는 소속의원 2/3, 일반국민 60% 이상이 사퇴 불가피론에 찬성한다는 것이었다.
열린우리당은 절차를 거꾸로 밟았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해 당 지도부가 먼저 입장을 정한 뒤에 여론을 조성했다는 얘기다. 물론 이렇게 사후적으로 조성한 여론은 당 지도부의 사퇴 불가피론을 강화시키면서 청와대를 압박하는 이중효과를 낳았다.
열린우리당은 크게 우려하고 있다. 노 대통령이 당심과 민심에 반하는 결정을 내려 당 위기상황을 증폭시킬지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래서 지켜볼 수만은 없다. 당이 직접 나서서 청와대를 끌고 가야 한다.
검증이 필요하다. 이 총리 사태에 대응하는 열린우리당의 태도는 이전과는 사뭇 다르다. 청와대가 일을 벌이면 당이 주워담는 이전의 모습과는 분명 다르다. 사후적이고 수동적인 모습에서 선제적이고 능동적인 모습으로 바뀌었다. 이 총리 거취 못잖게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당청 관계는 변하고 있는가? 아니면 위기상황이 빚은 일회성 파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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