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데이, 책과의 미팅은 어떠세요?

황인숙의 <이제 다시 그 마음들을>을 읽고

등록 2006.03.14 13:54수정 2006.03.14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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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의 글을 읽고 술술 잘 읽힌다면 그것은 글쓴이와 문장호흡이 일치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황인숙의 서평 모음집 <이제 다시 그 마음들을>이 내게는 바로 그런 책이었다. 황인숙 시인은 은사님 중 한 분이 좋아하는 시인이었는데, 그 후 시인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작품을 찾아 읽었다. 시집은 물론이고 마음산책에서 출간된 <인숙만필>을 이 책에 앞서 읽었다.

젊은 시절 허드레 책을 읽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낸 게 아쉽다는 저자는 양질의 책을 소개하는 서평집을 세상에 내 놓았다. 저자 혼자 알고 있기엔 너무 아까운 책들이 여기에 다 모여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갑자기 마음이 바쁘다. 어떤 책을 읽으면 너무 좋아서 혼자만 알고 싶을 때가 있다. 한편으로는 이 책을 주위 사람들에게 알려 공유하고 싶은 마음도 드는데 이 두 감정이 묘하게 교차되면서도 여전히 내릴 수밖에 없는 하나의 결론은 누가 읽어도 좋을 책이라는 사실이다.


쓰시마 유코의 <나>

이 책에서도 저자의 친구가 저자에게 소개할까 말까 망설이다 알려 준 책이 등장한다. 바로 쓰시마 유코의 <나>라는 작품이다. 쓰시마 유코는 다자이 오사무의 딸이라고 한다. 여기서부터 벌써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몸을 감싸온다. 다자이 오사무를 좋아하는 저자의 친구가 추천하는 책 <나>을 통해 쓰시마 유코와 친구를 같이 읽는다는 저자의 말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은 아주 천천히, 사미센 연주를 듣듯이, 세공품을 감상하듯이, 일본 정원을 산책하듯이 읽어야 할 것이다. 성큼성큼 읽어치우면 '일상의 소중한 시간과 아련히 새겨져 있는 기억의 무늬'를 놓칠지 모르니까. - 본문 중에서

쓰시마 유코가 태어난 이듬해 다자이 오사무는 동반자살을 한다. 다자이 오사무의 음울함처럼 쓰시마 유코의 <나>에 실린 15편의 단편에서도 '어둡게건 밝게건 도처에 죽음'이 널려 있다고 한다. 나는 슬프고 암울한 소설은 좀처럼 읽기가 싫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호기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내게는 다자이 오사무 하면 떠오르는 친구가 있다. 그의 소설집 <만년>에 실린 단편 '추억'은 다자이 오사무가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를 담은 보석과도 같은 작품으로 그 친구가 소개해준 책이었다. 친구와 함께 '추억'을 떠올리며 쓰시마 유코의 <나>를 한번 읽어보고 싶다.


가산 카나파니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저자는 책을 읽는 사람으로서 이제야 읽게 되어 부끄러웠다던 작품을 소개한다. 바로 가산 카나파니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다. 우선 가산 카나파니의 이력부터가 눈에 띤다. 북부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난 그는 시리아에서 난민으로 정착해 살다가 자동차에 장착된 폭탄 폭발로 36세에 세상을 떠난 인물이었다. 사후 '제3세계의 노벨 문학상'이라고 불리는 로터스 문학상이 수여됐다고 한다.


팔레스타인 난민이라는 이야기만 들어도 가슴이 내려앉는다. 그 설움을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 얼마 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풀리지 않는 갈등,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그들을 그린 영화 <뮌헨>을 보았는데, 보고 나서도 가슴이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카나파니의 소설에는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휘젓는 힘'이 있기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를 죽이지 않을 수 없었을 거라는 저자 친구의 말이 가슴을 더욱 아프게 만든다. 저자는 카나파니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와 더불어 단편 '하이파에 돌아와서'도 함께 소개하고 있는데, 창작과비평사에서 나온 <불볕 속의 사람들>에 들어있다고 했다.

'카나파니의 자기 동포에 대한 연민과 애정에 찬 소설을 읽으면 이스라엘 사람조차도 마자린 팽조가 <첫 소설>이라는 소설에 썼듯 혹독하고 부당하게 고통을 겪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가슴 저린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저자가 소개하는 책들은 하나같이 가볍지 않은 여운을 독자들에게 안겨준다. 밝고 경쾌한 부류와 그 반대의 부류의 책들을 골고루 선물처럼 묶어 놓았다. 책을 통해 또 다른 책을 만나고, 책을 통해 또 다른 세상과 만나는 일은 그래서 언제나 스릴 만점의 놀이기구를 타는 일과 비슷하다.

저자의 말처럼 행간에서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때가 있다. 책을 통해 자기 자신과 만날 때, 그 기분은 또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 황인숙의 <이제 다시 그 마음들을>을 통해 독자들은 좋은 책들과 미팅하게 될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다. 화이트데이다. 책과의 미팅은 어떠할지. 달콤한 사탕 대신 영혼을 흔들만한 책 선물은 어떨까.

이제 다시 그 마음들을 - 황인숙의 엉뚱한 책읽기

황인숙 지음,
이다미디어,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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