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3월3일 자택에서장선태
핵가족 시대에 보기 드문 풍경을 전남 고흥군 고흥읍 남계리 신계마을에서 엿볼 수 있다. 5대 아홉 명의 식구가 한 집에서 유교 가풍 아래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것.
집은 야트막한 산비탈 공원 아래 있는 2층 양옥이다. 이 집의 큰 어른은 올해로 100세가 되는 정양순 할머니. 18세 되던 해 인근 포두면 중촌에서 25살 낭군에게 시집와 첫 아이를 낳았다. 집안을 일으키겠다고 일본으로 건너간 남편은 13년만에 돌아왔고 정붙일 새도 없이 또 어디론가 떠났고, 그후 3년만에 돌아 왔다. 그러나 일제징용이 기다리고 있었고 다시 2년을 강제징집에 동원됐다.
남편이 천신만고 끝에 귀국한 시점에 여순사건(여수 주둔 국군 제14연대가 제주도 출동 거부, 친일파 처단, 조국통일 등을 내걸고 반란을 일으킨 사건)이 일어났고, 군인신분이었던 남편은 여순사건 희생자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런 일은 당시 드문 일도 아니었으나 신혼의 달콤함은 너무나 짧았다. 좋았던 시절 청춘의 기억도 희미해져 버린 정할머니는 아직도 한 세기를 살아온 사람이라 보이지 않을 만큼 건강하다. 매일 오전 9시면 집을 나서 2km 떨어진 노인정과 집을 도보로 왕복한다.
노인정에선 맏언니로서 7~80대 아랫사람들(?)과 사는 얘기를 나누고, 노래와 화투놀이 구경에 시간을 보내다 4시쯤 집에 온다. 그 뒤엔 고손자의 재롱과 함께 세상을 관조하며 건강한 마음을 나눈다. 일평생 청상으로 한 많은 세월을 지탱해 왔지만 소식하며 절제하는 생활, 가족간 화목이 이어진 까닭인지 집안에는 온화한 기운이 가득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