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없는 시대, 과연 올까?

[오해와 이해] '담배 제조·판매 금지 입법 청원안'을 살펴보니

등록 2006.03.16 14:42수정 2006.03.21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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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윤수

"A씨는 회사에 출근해 일하던 중 경찰에 체포됐다. A씨의 혐의는 담배판매. 외국에 나갔다 몰래 들여온 담배를 팔다가 경찰의 레이다망에 포착된 것이다. 경찰의 대대적인 담배 판매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면서 A씨와 같은 혐의로 체포된 이들은 전국적으로 100여 명에 이른다."

2020년 3월 15일 <오마이뉴스>에 실린 기사의 한 토막이다. 물론 담배를 만들고 판매하는 행위가 법으로 금지될 경우를 가정한 가상 시나리오다.

박재갑 전 국립암센터 원장이 국회에 입법청원한 '담배제조 및 판매금지에 관한 법률'의 운명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말 담배가 사라지는 시대가 올 수 있을까.

김대중 전 대통령과 박관용 전 국회의장 등 각계 저명인사 158명이 청원인으로 참여했으며 현직 국회의원 195명이 찬성 서명하는 등 그 위세만 보면 이 법안은 당장이라도 입법이 가능할 듯 싶다. 네티즌들의 법안에 대한 지지도도 높아 각 포털 사이트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찬성율은 60%를 넘었다.

하지만 실제 입법 가능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물음표다. 법안에 찬성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게 되겠냐'라는 분위기다.

입법청원을 주도한 박 전 원장은 "되지 않을 거였다면 아예 시도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법안이 생명을 얻기까지 넘어야 할 산은 너무나도 많다.

[쟁점 1] 흡연권은 행복추구권... 판매금지는 위헌?


우선 법안이 통과되려면 위헌 시비를 넘어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흡연권을 인간의 존엄과 행복추구권을 규정한 헌법 10조와 사생활의 자유를 규정한 헌법 17조에 의해 뒷받침되는 헌법상의 기본권으로 인정했다. 법률안이 흡연권을 침해한다면 당연히 위헌이라 입법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이번 청원안에서도 흡연권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 흡연 자체를 금지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담배를 피우는 행위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다만 담배를 판매할 목적으로 제조하거나 남에게 파는 행위만이 제재 대상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법이 제정되면 국민의 4분의 1이 범죄자가 될 것이라는 말은 맞지 않다. 외국에 나가서 담배를 마음껏 피우는 행위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집에서 담배를 만들어서 피워도 처벌 대상이 아니다.

박 전 원장은 "어떻게 흡연이라는 행위 자체를 마약류처럼 처벌의 대상으로 삼겠냐"며 "법률안을 만들고 여러 헌법 학자들에게 자문을 구한 결과 문제가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대론자들은 담배 제조와 매매를 금지하게 되면 담배를 구할 수 없게 되고 사실상 흡연권을 제한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므로 위헌 소지가 다분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KT&G 관계자는 "헌법의 판례에 따라 이번 입법청원안은 위헌 가능성이 높다"며 "법제화가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쟁점 2] 흡연자의 선택은 담배 밀수일까, 금연일까

a 한국에서 생산되는 각종 담배들.

한국에서 생산되는 각종 담배들. ⓒ KT&G 제공

히말라야산맥의 작은 나라 부탄. 이 나라는 세계에서 최초로 2004년 12월부터 담배 판매를 전면 금지했다. 부탄에서는 담배를 팔다 적발되면 상점은 영업허가가 취소되고 개인은 210달러의 벌금을 내야한다.

다만 흡연 자체는 금지하지 않아 담배 피우는 것은 자유다. 개인적으로 담배를 수입할 수도 있다. 다만 100%의 수입관세가 부과된다. 부탄의 애연가들은 해외여행에서 돌아오면서 담배를 구입해 오거나 해외여행에 나서는 친구들에게 부탁하는 방식으로 힘겹게 담배를 구하고 있다.

물론 담배 밀수업자와 암시장에서의 불법적 담배 판매가 있기는 하지만 부탄은 담배판매금지 조치로 흡연율을 줄이는 데 성공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AFP통신 보도에 따르면 부탄의 흡연인구는 계속 감소추세에 있으며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그러나 이번 법안이 부탄의 사례와 다른 것은 담배의 수출입까지 금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담배를 스스로 만들지 않는 한 흡연이 불가능해진다.

이에 따라 반대론자들은 법안이 담배의 밀수와 불법 제조를 부추겨 지하경제만 키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1920년대 실시된 미국의 금주법은 무허가 술집과 밀주 제조를 부추기는 결과만 낳은 채 실패했고 술의 제조와 유통을 장악한 갱단만 큰 돈을 챙겼다.

법안을 청원한 사람들도 이 점에는 견해를 같이하고 있다. 따라서 법안의 성패 여부는 법 시행 유예기간 10년동안 얼마나 흡연율을 줄이느냐에 달렸다고 설명한다. 현재 1000만여명에 달하는 흡연 인구를 100만 이하로 줄여야만 밀수와 암시장 형성 등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 전 원장은 "담배 시장이 줄어들면 외국으로부터의 밀수 수요나 불법 담배제조 수요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흡연자 수가 국가가 관리할 수 있는 수준으로 줄어야만 담배제조와 판매를 전면 금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사회적 합의를 거쳐 일단 법안이 제정되면 본격적인 흡연율 줄이기 정책과 대체 세원마련, 담배 산업 종사자의 업종 전환 등 본격적인 준비가 가능해질 것"이라며 "10년동안 노력을 했는데도 조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전면 시행은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부연했다.

[쟁점 3] 담배생산의 부가가치와 사회적 손실

a 올해는 담배를 뚝 끊어버립시다!/금연홍보 포스터

올해는 담배를 뚝 끊어버립시다!/금연홍보 포스터 ⓒ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지선하 교수(연세대 보건대학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흡연으로 인한 보건·사회적 손실은 2004년 한 해 9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됐다. 여기에는 흡연으로 인한 추가 의료비 등 흡연자의 내부적 비용, 간접흡연으로 인한 질병 치료비 등이 모두 포함돼 있다.

지 교수는 또 지금과 같은 추세로 흡연 행위가 계속될 경우 2015년에는 이같은 손실이 102조원이 되고 2030년에는 217조원이 될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담배산업이 유지됨으로써 경제에 생기는 플러스(+) 효과, 즉 세수입·입연초 생산에서 담배제조와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가가치를 압도한다는 것이 법안 찬성론자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반대론자들은 값은 비싸고 질은 낮은 담배의 범람으로 오히려 우리 사회가 치러야할 사회적 비용이 커질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쟁점 4] 다국적 담배회사가 가만 있지 않을텐데...

만약 법안이 제정되면 영국의 BAT, 미국의 필립모리스 등 거대 다국적 담배제조사들이 가만히 있겠느냐는 문제가 있다.

이와 관련 박재갑 전 원장은 "담배 다국적 기업의 테러 가능성 때문에 외국에 나가지 못 한다"고 말했다. 물론 과장된 측면은 없지 않지만 담배 제조업체들로서는 하나의 시장이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강력하게 입법 저지에 나설 가능성이 많다.

흔히 거론 되는 것이 통상마찰 가능성이다. 전세계적으로 담배를 없애지 않는 한 한국만 담배 수입을 금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태국은 지난 1966년 담배 수입을 전면금지했다. 외국산 담배가 태국 담배에 비해 유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미국은 즉각 태국의 조치가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의 규정 11조 '수량 제한 금지의 원칙'에 어긋난다며 세계 무역기구 WTO에 제소했다.

쟁점은 담배 소비를 제한하는 정책이 자유무역을 제한할 수 있는 예외 조항에 해당하느냐였다. GATT 규정 20조(b)에는 그 나라의 자국민, 동식물 보호를 위해서 필수적인 조치라면 수입제한도 가능하다는 예외조항이 마련돼 있다.

GATT는 흡연을 제한하기 위한 정책이 이 예외 조항에 해당된다면서도 수입금지를 통해서만 흡연 제한이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이유로 미국의 손을 들어줬다. 통상적인 광고 금지도 담배의 소비를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의 석면 수입 금지에 대한 캐나다의 제소에 대해서는 프랑스의 손을 들어줬다. WTO 패널은 각 회원국이 자신들의 상황에 맞는 건강보호 수준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면서 프랑스의 석면 수입금지 조치는 자국민 보호에 필수적이라고 인정했다.

a 이탈리아 담배 케이스에 큼직하게 쓰여진 경고 문구들.

이탈리아 담배 케이스에 큼직하게 쓰여진 경고 문구들. ⓒ 김은정

김한호 교수(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는 "프랑스의 경우는 특정 제품에 대해서 생산, 판매 및 수입 등에 대해서 포괄적인 금지조치를 내린 경우이기 때문에 담배 제조 및 매매금지법과 상당히 유사하다"며 "WTO의 자유무역 원칙은 각국 정부가 담배 규제를 도입하는 것에 충분한 여지를 주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특히 태국의 사례에서는 자국의 담배 생산과 판매는 용인하면서 외국 기업에 대해서만 차별한 것이 문제가 됐지만 이번 법안은 국내 기업과 외국기업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르다는 것이다.

박재갑 전 원장은 "작년 10월 프랑스 리옹에서 열린 세계보건기구 산하 세계암센터원장 회의에서 담배의 경작과 수출입, 매매의 완전 금지를 최초로 결의한 국제선언인 '리옹선언'이 만장일치로 채택됐다"며 "세계적으로도 담배에 대한 규제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담배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법안을 만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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