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일, 당시 이해찬 국무총리가 문제 많은 '업자들'과 잔디밭을 누빌 때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는 제3차 남북장성급회담이 열렸다. 남북대치로 인한 팽팽한 긴장감과 함께 어찌 보면 남북평화의 걸림돌 역할을 해왔던 양측 군부의 만남은 그 자체로써 뜻깊다 할 수 있다.
이번 장성급 회담의 핵심쟁점 중 하나는 서해상 북방한계선(NLL:Northern Limit Line) 재설정과 공동어로 수역설정이다. 남북 모두 수십 명의 사상자를 낸 1·2차 서해교전이 일어난 '꽃게잡이 철'이 다가오는 때 분쟁의 원인인 NLL문제를 양측 군부가 논의하고, 남측 시민사회에서 일관되게 제기한 '공동어로수역설정' 요구를 받아안은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남북의 경직된 태도, 즉 북측은 NLL에, 남측은 공동어로수역설정에 각각 집착하면서 차기 회담 일정조차 잡지 못한 채 무산됐다.
그런데 지난 2월 20일 국회의원 회관에서 "세계 모든 국민들은 모국과 미국의 두 나라를 갖고 있다"며 '미국도 우리나라'라는 망언을 서슴지 않던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 이방호. 바로 그가 3월 13일 한나라당 정책위 회의에서 NLL과 관련, '우리가 적절하게 어떻게 대응할지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힌 이종석 통일부 장관 발언을 '친북좌파'라고 비난했다.
NLL선은 50년간 사수해온 우리의 전략지대. 즉 우리의 영토, 영해이다. 그런데 이 선을 무시하고 저들은 통합을 주장하는데 이 문제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다'는 발언을 통일부 장관이 했다. 이것은 중대한 문제이다.
우리가 단호히 거부해야 되는데,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뜻은 이 정권이, 정말 친북좌파 정권이 실제 지배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어떤 경우라도 영토와 영해는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이것을 만약 협상한다고 한다면 한나라당은 절대 저항한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2006. 3. 13. 한나라당 대변인실 발표문).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의 논리를 자기의 지식인 체 한껏 뽐낸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이 신문은 1999년 6월 3일, DJ가 집권한 다음해 「NLL해역, 국제법상 우리 영해 "관할권 인정 문제없다"」는 제목으로 "서해 북방한계선(NLL=Northern Limit Line) 남쪽 수역은 국제법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한국의 영해다"라는 입장을 강력히 개진하며, 그 후 다음과 논리를 틈만 나면 설파해 왔기 때문이다.
서해 북방한계선(NLL=Northern Limit Line) 남쪽 수역은 국제법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한국의 영해다. … "설사 국제적인 분쟁으로 비화하더라도 한국과 유엔사측 주장 근거가 확실하기 때문에 한국의 관할권을 인정받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조선일보, 1999년 6월 3일 「[NLL해역] 국제법상 우리 영해 "관할권 인정 문제없다"」)
국제법상 엄격한 해석을 기준으로 할 때 논란의 여지가 있어 그렇게(영해침범이 아니라 월선행위) 표현했다는 것이 국방 당국자의 궁색한 변명이다. … 우리의 배타적 주권이 미치는 해역이 우리 영해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며… 군이 '햇볕'을 의식하기 시작하면 나라의 장래는 암담하다. (조선일보, 1999년 6월 10일 사설 「국방부의 '꽃게잡이 월선'론」)
하지만 이방호 의원의 짧은 지식, 일반적으로 '무식함'이라고 표현하는 문제는 추측컨대, 조선일보를 대충 읽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그래서 그의 무식함을 교정하는 차원에서 더 구체적인 조선일보 기사 몇 개를 소개한다.
장면 1 :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6년 7월16일 오후 국회 본회의 속기록
국민회의 소속의원 : "북한함정의 서해상 도발에 대해 우리 대응이 왜 소극적이었느냐."
국방장관 이양호 : "대응은 확실히 했다. 다만 북방한계선은 어선 보호를 위해 우리가 그어 놓은 것으로 정전협정위반은 아니다."
국민회의 소속의원 : "그렇다면 침범해도 문제가 아니냐."
국방장관 이양호 : "(북한이 NLL을 넘어온다 하더라도) 상관하지 않겠다."
장면 2 : 위 논쟁에 대한 조선일보의 1996년 7월 17일자 기사
… 바다의 경우는 남-북간에 의견이 엇갈려 지금까지 정해진 경계선이 없다. 바다에 말뚝을 표시할 수도 없는 입장으로… 서해상의 북방한계선은 휴전 한 달이 지난 1953년 8월 30일 유엔사측이 최접경 수역인 백령도 연평도 등 6개 도서군과 이를 마주하는 북한측 지역과의 중간지점 해상에 임의로 설정한 것… 때문에 서로간의 수역을 침범했을 경우 정전협정 위반사항이나 국제법상으로 제소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무력충돌을 우려해 양측이 '힘의 균형'을 통해 자제하고 있을 뿐이다. 이점에서 이양호 국방장관이 "NLL 침범이 정전협정 위반사항은 아니다"라는 답변은 맞는 것이다.… (조선일보, 96년 7월 17일, 「해상북방한계선 파문 '합의된 선' 없어 논란 무의미」)
'정전협정 위반사항이 아니며 국제법상 제소할 없다'는 조선일보의 주장은 명백한 사실이다. 조선일보도 북방한계선과 관련, 이 정도의 지식은 갖추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렇게 주장하던 조선일보, 즉 YS정권 시절에는 NLL이 정전협상 위반사항도 아니고 국제법상 제소할 수 없는 입장을 주장하던 조선일보가, DJ정권이 들어서자 기존 사실을 뒤엎은 것이다.
그러면 다시 이방호 의원이 또하나의 조국이라고 말했던 미국은 NLL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보였는지를 살펴보자.
7월 16일(미국 현지시각) 미국 국무부 정례 브리핑에서는,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 해역의 성격 규정을 둘러싼 논란이 있었다. 국제법상 어느 나라의 주권도 미치지 않는 공해(International Waters)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미국 기자들은 제임스 폴리 대변인을 상대로 "사실상 공해가 아닌가"라고 따져 물었고, 폴리 대변인은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한 기자가 "그렇다면 왜 북한이 공해에서 조업권을 갖지 못하는가"라고 질문했다. 폴리는 "문제는 진정 남북한의 국익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라며 "대립을 피하고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NLL을 지키는 것은) 양측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실질적 문제"라고 말했다. … 이같은 분위기는 미 언론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미 언론은 서해 해역을 표기할 때면, '분쟁해역(Contested or Disputed Waters)'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조선일보 1999년 6월 17일 「NLL과 미정부 "사실상 공해…충돌막게 조업선 지켜야"」)
미국 또한 NLL을 '공해'라고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럼 이방호 의원의 주장을 재정리해보자.
그의 주장대로, NLL을 협상의 대상으로 검토하는 노무현 정권이 친북좌파정권이라면, NLL이 우리 영해도 아니며 정전협정 위반도 아닐 뿐더러 국제법상 NLL을 북측이 침범해도 제소의 대상도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 조선일보는 '친북극좌파신문'이다.
또한 남북의 영해가 아니라 '공해'라고 주장한 미국은 '친북극좌파정권'이다. 그리고 당시 이양호 국방장관이 속한 YS정권도 '친북극좌정권'이 되고, 그 때 '대통령 직속 농어촌발전위원'을 역임한 이방호 의원은 친북극좌정권의 일원이 돼버린다.
조선일보를 친북극좌파신문으로, 스스로 조국이라고 부르는 미국을 친북극좌파정권으로 만들어버린 이방호. 앞으로 이방호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 의장직을 제대로 수행할려면 우선 사실부터 제대로 알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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