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출근길에 '땡' 잡았어요!

이웃이 버린 어린이용 책, 요긴하게 읽고 있습니다

등록 2006.03.16 15:51수정 2006.03.16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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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는 평일날 아침은 늘 분주하다. 미리 맞춰놓은 알람에 눈을 뜨고, 자는 아이가 깰까봐 조용하게 나와, 후다닥 지하철 역으로 향하는 게 보통.


며칠 전 아침, 그날따라 시계 알람 소리를 못 들었는지 조금 늦게 일어났다. 허겁지겁 준비하고 집을 나섰는데, 아파트 입구 재활용 자리에 얌전하게 끈으로 묶어 놓은 어린이용 책이 발목을 붙들었다.

조금 늦기는 했지만,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니 우리 아이에게 지금 읽어주면 딱 좋을 듯한 종류의 책이었다. 한두 권도 아니고 어림잡아도 몇 십 권은 될 듯했다. 책을 골라내야 할 것 같았는데 그 시간에 그럴 여유도 없고 해서, 두 번을 오르락내리락 해서 일단 집으로 옮겨 놓았다. '퇴근 후에 집에 가서 다시 살펴봐야지' 하고 말이다.

아이 책은 살 때마다 참 많이 망설이게 된다. 혹시 또 내 취향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내가 읽히고 싶은 책만 고르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어떤 책이 좋은지, 어떤 책을 사줘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가끔 아이를 데리고 서점에 가면 종류는 또 왜 이렇게 많은 건지 고르기가 쉽지 않다. 보고 있으면 이것도 사주고 싶고, 저것도 사주고 싶고…. 더구나 책값도 만만치 않아서 몇 권만 고르다 보면 몇 만 원이 훌쩍 넘어가기 일쑤다. 다 사주고 싶지만 여유치 않을 때도 많이 있다.

그래서 나는 꼭 필요해서 사는 책 말고는 다른 집에서 아이들이 읽다가 때가 지난 책을 얻어오는 걸 좋아한다. 우선 이 집 저 집에서 얻어 오다 보면 아주 다양한 종류의 책을 아이에게 읽어줄 수 있기 때문에 좋고, 만만치 않은 책값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지금 우리집에 있는 책은, 내가 사준 책도 있지만 이번 경우처럼 오가다가 한두 권 재활용을 통해 얻은 책들도 있다. 또 조카들이 읽던 것들을 가져온 것도 있고 다른 친구들에게서 얻어온 것도 있다.

퇴근 후 집에 가니 가져다 놓은 책이 그대로 있다. 아이와 둘이 끈을 풀러서 책을 펼쳐보니 버릴 만한 것이 별로 없고, 다 좋아 보였다. 아이는 새 책이 생겨서 기분이 좋아서 묻는다.


"엄마, 이거 다 내 거예요?"
"그럼~ 다 여름이 거지!"
"엄마가 사준 거예요?"

순간, 뭐라고 잘 설명을 해줘야 아이가 이해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산 게 아니구, 얻은 거야. 아침에 엄마가 출근하면서 보니까 누가 바깥에 내놨더라. 가져갈 사람 있으면 가져가라고…."
"경비아저씨가요?"
"아니, 누군지는 잘 모르겠어. 그래서 엄마가 집에 가져온 거야. 좋지?"
"네. 엄마 이거 책 주셔서 고맙습니다~."

내가 책을 가져오기 바로 전에도 경비아저씨께서 아이에게 책을 한 권 주신 적이 있다. 그 책도 누군가 다 읽고 재활용에 담아 둔 걸 아저씨께서 정리하고 계시다가 마침 지나가는 우리 아이에게 읽으라며 주셨던 것이다. 아이는 그걸 기억하고는 내가 설명을 해주니 경비아저씨께서 주신 거냐고 물은 것이다.

아침 출근길에 내 발목을 붙든 "책"
아침 출근길에 내 발목을 붙든 "책"김미영

정리해보니 책이 꽤 되네요 ^^
정리해보니 책이 꽤 되네요 ^^김미영

책보며 즐거워 하는 여름이 ^^
책보며 즐거워 하는 여름이 ^^김미영
그날 아이와 나는 책 정리를 하면서 정말 신이 났었다. 책을 어느 집에서 내다 놓은 것인지 안다면 가서 인사라도 하고 싶었지만, 알 길이 없었다. 이 글을 통해 그 책의 원래 주인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아이 용품은 버리려고 할 때, 어느 것 하나 아깝지 않은 것이 없다. 못 쓰게 되는 이유가 단지 아이가 그 용품을 사용할 나이가 지나서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런 것들은 그냥 버리기가 아까워서 아는 집에 주곤 한다.

내 바람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내에서 일정 기간에 한 번씩 벼룩시장을 열어서 그러한 물품들을 서로 교환하거나 그냥 나눠줄 수 있도록 했으면 하는 것이다. 꼭 필요한 사람에게 아주 소중한 물건이 될텐데 그냥 버려지는 것이 안타깝다.

덧붙이는 글 | 저는 아이옷, 신발, 책, 장난감 등 많은 걸 얻어다 씁니다. 저 역시 필요 없게 된 물건들을 아는 사람들에게 주곤 하구요. 인터넷사이트에 보면 그렇게 나눠쓰는 곳이 있기는 하지만 사실 가까운 곳에서 그렇게 나눠쓸 수 있는 환경이 된다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살고 있는 동네에 '벼룩시장' 뭐 이런 게 생기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저는 아이옷, 신발, 책, 장난감 등 많은 걸 얻어다 씁니다. 저 역시 필요 없게 된 물건들을 아는 사람들에게 주곤 하구요. 인터넷사이트에 보면 그렇게 나눠쓰는 곳이 있기는 하지만 사실 가까운 곳에서 그렇게 나눠쓸 수 있는 환경이 된다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살고 있는 동네에 '벼룩시장' 뭐 이런 게 생기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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