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매니페스토 정책선거 실천 협약식에서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나란히 서 있지만, 시선이 엇갈리고 있다.오마이뉴스 이종호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5·31 지방선거'의 정책경쟁을 다짐하는 자리에서 낮은 공약 실천율에 대해 서로 '네 탓'을 주장하며 신경전을 벌였다.
양당 대표의 설전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손지열 위원장)가 16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한 '매니페스토 정책선거실천 협약식'을 열고 여·야 5당 대표로부터 "실현가능한 공약으로 정책대결을 펼치자"는 약속을 받아내는 자리에서 벌어졌다.
발단은 사회자인 백지연 매니페스토 캐스터가 '2002년 지방선거의 공약 이행률이 20∼30%대로 매우 낮은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말한 데서 시작됐다.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박 대표가 먼저 마이크를 잡고 선공의 포문을 열었다.
박 대표는 "우리는 야당이기 때문에 국회에서 (원내의석수가 부족해) 표로 숫자가 모자라서, 총선 때 약속한 것부터 민생현장에 가서 (약속)한 것, 내가 국회에서 대표연설한 것을 지키려고 최선을 다했는데 거기서 한 30%만 지켰다"면서 낮은 공약 이행률의 원인을 '열린우리당의 탓'으로 주장했다.
이어 박 대표는 "나머지는 왜 못 지켰는가는 국회에서 표로 졌다든지, 또 열린우리당에서 반대해서 못 지켰다든지, 그런 이유까지 다 묶어 '국민께 드리는 약속, 이렇게 지켰습니다'라는 백서를 곧 펴낸다"며 "우리는 매니페스토 운동을 진작부터 실천하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정 의장은 박 대표의 발언을 듣고 가만 있지 않았다. 정 의장이 꺼내든 반격의 무기는 '지방권력 심판론'이었다.
정 의장은 "지방자치 10년쯤 됐으니까 중간결산을 해봐야 한다"며 "박 대표는 열린우리당 때문에 (공약을) 지키기 어려웠다고 말씀하셨는데, 지방정부는 사실 85%를 한나라당이 10년 동안 독점해왔다"고 '한나라당의 탓'으로 돌렸다.
이어 정 의장은 "좀전에 (공약이행률) 수치는 (중앙정부가 아닌) 16개 시도지사들을 평가한 것"이라며 "앞으로는 '빌 공(空)'자로 공약해서 나중에 국민들께 신뢰를 잃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응수했다.
덧붙여 정 의장은 "(지방자치) 10년 동안 64군데 시장군수가 청사를 짓느라 4조원을 썼는데 시골에 가면 복지회관, 여성복지, 노인복지 이런 시설은 없다"며 "시청청사, 군청청사를 너무 호화롭게 짓는 것은 통제해야 하고 그것이 바로 매니페스토 운동의 정신이라고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정동영 - 박근혜 나란히 옆에 앉았지만...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우리당이 반대해서 못했다`고 낮은 공약이행률의 원인을 우리당탓으로 돌렸다.오마이뉴스 이종호
예상치 못했던 정 의장과 박 대표의 설전에 백지연 사회자는 "간단한 코멘트만 부탁드린 것인데… 정치인들께는 마이크를 드리면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들었다"는 말로 뜨거워진 분위기를 식혔다.
이날 정 의장과 박 대표는 행사장에서 사이좋게(?) 나란히 앉았으나, 최근 '이해찬 총리 3·1절 골프파문'과 '최연희 의원 성추행 사건'으로 양당간의 공방이 끊이지 않는 상황 탓인지 불편한 심정을 설전으로 고스란히 드러냈다.
| | | '메니페스토'란? | | | | '성명서', '선언서'란 의미의 영어로 후보자가 유권자들에게 구체적인 정책공약을 미리 제시함으로써 일종의 '약속'을 하는 것. 이 약속은 선거때만 되면 후보자와 정당이 마구잡이로 쏟아내는 무책임한 공약(空約)이 아니라 그 내용에 구체적인 실천계획을 담도록 한다. '매니페스토 운동'은 유권자들이 정당이나 후보자의 공약을 쉽게 비교하고 검증할 수 있도록 공약 추진 계획 등을 계량화함으로써 정책 경쟁을 유도하자는 운동이다. | | | | |
한편, 이날 행사에는 정동영 의장과 박근혜 대표를 비롯해 한화갑 민주당 대표,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 신국환 국민중심당 공동대표 등 5당 대표가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매니페스토 운동에 적극 동참한다는 의미에서 '정책경쟁 실천'이라는 글귀가 쓰인 조각을 맞춰 공 모양을 만들어내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후 '정책선거 실천협약 증서'에 각각 서명했다.
이외에도 정 의장과 박 대표는 행사가 끝나고 나갈 때 행사 참석한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 사인공세에 시달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