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와 손자,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합니다.한명라
수술을 해야 한다는 아버님을 모시고 오던 날, 남편은 쌀자루 하나도 자동차 트렁크에 싣고 왔습니다.
그날 저녁 아버님께서 아주버님과 큰댁으로 떠나신 후, 트렁크에 실린 쌀자루를 내리느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저는 평소보다 몇 배나 힘들게 실랑이해야 했습니다. 겨우겨우 손수레에 무거운 쌀자루를 실었고, 그 손수레를 끌고 지하주차장을 올라오느라 아들아이는 몇 번이나 멈춰서서 가쁜 숨을 몰아 쉬어야 했습니다.
그 이유는 평소에는 번쩍 들어올릴 수 있을 만큼 만만했던 쌀자루의 무게가 예전보다 훨씬 무거웠던 까닭이었습니다.
아마도 아버님께서는 당신이 병원에 입원하고 수술을 해야 한다면, 어쩌면 입원을 해야 하는 기간이 예상보다 길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평소보다 더 많은 쌀을 자루에 꾹꾹 눌러 담으셨을 것입니다.
지난해 아버님 손으로 직접 농사를 지으시고, 나락 상태로 자루에 담아 두었다가 자식들이 식량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면,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 방아를 찧어주시는 아버님이십니다.
다른 자식보다 유난히 쌀을 많이 먹는다는 막내아들네. 지난번 설에 쌀을 가져갔기에 지금쯤은 쌀이 거의 떨어져 가고 있다고 짐작을 하신 아버님께서는 편치 않은 몸을 이끌고, 무거운 나락자루를 정미기계에 부어가면서 방아를 찧으셨을 겁니다.
한시가 급하게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의사선생님 말씀이 있고 나서, 그때야 자식에게 별일이 아니지만 상의할 일이 있으니 잠시 다녀가라고 하시던 아버님.
당신이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면 한동안 자식의 식량을 챙겨 줄 수 없다는 생각에, 아버님은 아픈 몸 상태에도 방아를 찧어 쌀자루를 준비해 놓고, 당신 아들을 기다리셨을 것입니다.
당장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을 해야 할 만큼 위급한 상황임에도, 그 아픈 몸으로 손수 방아를 찧으셨을 아버님. 평소보다 더 무거운 쌀자루를 준비해 놓고 아들을 기다리셨을 아버님을 생각하면, 저도 모르게 마음 한켠이 저려옵니다.
아버님의 속 깊은 사랑을 어찌 제가 감히 짐작이나 하겠는지요. 십분의 일, 아니 백분의 일도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아버님의 사랑을 오래도록 제 마음에 담아두고 싶다는 생각에, 쌀자루가 우리 집에 도착한 지 며칠이 지나도록 선뜻 베란다에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