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곡마을에서 '고봉 기대승'을 만나다

광주 8경 중 하나인 월봉서원

등록 2006.03.19 11:47수정 2006.03.19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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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내리는 주말 오후, 광주 8경 중 하나인 월봉서원과 황룡강 물안개를 찾아나섰다. 며칠 전 같이 가기로 했던 동료 선생님들과 아이들을 하교시킨 후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고 출발했다.

월봉서원 전경
월봉서원 전경고병하
광주에 살면서도 고봉을 잘 몰랐고, 4학년 1학기 사회교과서에 간단히 언급이 되고 있지만 그다지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지난 겨울방학 연수에서 서부문화센터 김종 원장님의 강의 '호남인의 삶과 문학'을 들은 후, 나의 무지함에 부끄러웠던 탓도 있고, 여러가지 이유로 이제서야 고봉의 월봉서원을 찾아 광곡마을(너브실)로 향한 것이다.


임곡을 지나 광곡마을에 접어들자 월봉서원과 고봉학술원을 알리는 표석이 보였고 바로 우회전을 하니 자그마한 마을이 있었다. 전형적인 시골 고샅길을 오르니 백우산 자락에 울창한 소나무로 둘러싸인 서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월봉서원 현판
월봉서원 현판고병하
고봉 기대승은 조선시대 성리학자로 본관은 행주이며 광산구에서 태어났다. 그의 선조는 행주산성이 있는 경기도 고양시 고봉산 아래에서 대대로 살았으니 그의 호 고봉은 거기서 따온 것이다. 고봉의 가족은 기묘사화때 기씨 일가가 화를 입자 남으로 내려와 이곳에 터를 잡고, 여기에서 고봉이 태어났다.

조선 중종 시절, 경상도 석학 퇴계와 전라도 고봉이 스물 여섯 살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8년 동안 사단칠정론에 관해 서로의 의견을 피력하였다. 그때 살았던 선비들은 고봉이 퇴계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퇴계는 고봉과 수많은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고봉이 자신보다 학덕이 높다고 칭송하였다.

빙월당과 충신당을 옆에서 찍은 모습
빙월당과 충신당을 옆에서 찍은 모습고병하
고봉은 선조 5년 9월 대사간(현 대법원장)에 임명되나 병을 이유로 사양하고 낙향하다 천안에서 종기가 나 고부에 있는 며느리의 친정집에 머무르다 46세에 객지에서 운명했다. 그는 죽음에 임박하여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겻다.

"명이 길고 짧은 것, 죽고 사는 것은 하늘의 뜻이다. 어려서부터 글읽기에 힘썼고 드디어 성현의 학문에 뜻을 모았다. 중년 이래도 겨우 얻은 바 있으나 공부가 독실하지 못하여 항상 마음먹은 바에 부응하지 못할까 두려워하였다. 만일 임하(林下)에서 몇 년만 더 학문을 강구할 수 있었다면 다행이었을텐데, 병이 들었으니 이를 어찌할꼬?"


동제 명성제
동제 명성제고병하
월봉서원에는 빙월당과 충신당이 있다. 빙월당은 고봉 기대승을 주벽으로 박상, 박순, 김장생, 김집 등 조선조의 학자와 명신들을 배향했던 월봉서원의 강당이름이다. 빙월당의 당호는 정조가 고봉의 고결한 학덕을 상징하는 '빙심설월(氷心雪月)'로 하사했다고 한다.


충신당 또한 강당으로 쓰였던 곳이다. 서원 앞 좌우에는 동제인 명성제와 서제인 존성제가 있고, 서원 좌측에는 장판각이 있다. 장판각에는 고봉과 퇴계가 주고 받은 편지들을 목판으로 새겨 보관하는 곳이다.

서제 존성제
서제 존성제고병하
서원과 주변을 둘어보고 고샅길을 내려오니 고봉 학술원이 있었다. 기세훈 이사장이 운영하는 곳인데 출타 중이어서 들어가지는 못했다. 학술원 안에 있는 애일당은 둘러보지 못했지만 돌담길을 돌아가니 고봉의 아들이 시묘살이를 했다는 칠송정이 있었다. 동네 할머니들이 애일당을 보려거든 미리 전화하고 오라고 번호를 알려주셨다.


애일당 앞으로 실개천이 흐르고 있는데, 풍수지리학적으로 볼 때 뒤에는 백우산이, 앞에는 실개천이, 조금 더 앞으로는 황룡강이 흐르고 있는 지형이 배산임수의 지형으로 좋은 위치라고 볼 수 있다고 한다. 다만 지금은 동네 앞에 철도가 다니고 있어서 아쉬운 상황이다.

고봉과 퇴계가 주고 받은 편지들을 목판으로 새겨 보관하고 있는 장판각
고봉과 퇴계가 주고 받은 편지들을 목판으로 새겨 보관하고 있는 장판각고병하
마침 비가 그쳐서 선생님들과 고봉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둘러보는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다음에는 더 자세히 둘러보고 걸어보고 후손을 만나보는 시간을 만들고 싶다.

고봉의 아들이 시묘살이를 했다는 칠송정
고봉의 아들이 시묘살이를 했다는 칠송정고병하

고봉 학술원 뒷담길
고봉 학술원 뒷담길고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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