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을 위한 '앗싸! 가오리 회무침'

입 맛 잃은 부모님을 위한 특별식

등록 2006.03.20 10:13수정 2006.03.20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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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8일)는 큰 처남이 장모님을 모시고 우리 동네에 왔습니다. 처제는 우리와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살고 있어서 장모님은 처제 댁에서 하루를 보내고, 오늘 우리 집으로 왔습니다. 아침식사를 한 후 장모님은 지나가는(?) 말씀처럼 이야기를 꺼냅니다.


a 앗싸, 가오리 회무침

앗싸, 가오리 회무침 ⓒ 한성수

"요즘 겨울에서 봄으로 철이 바뀌는 때라서 그런지, 요새 아픈 늙은이가 참 많더라. 나도 힘이 하나도 없고 입맛도 통 없는 것이 어디 몸살이 오려는 것은 아닌지, 쩝!"

부엌에서 일하던 아내는 장모님께 다가와서는 귀에 대고 소곤댑니다.

"아니, 엄마! 가오리 회무침이 드시고 싶으면 그렇다고 말씀을 하시지!"

장모님은 '입맛을 잃었을 때 다시 입맛을 돌아오게 하는 음식'이라며, 가오리 회무침을 유난히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부부와 동서 내외는 서둘러 마산 어시장으로 향합니다. 어시장은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서 애를 먹었는데, 이제 넓은 주차장을 새로 갖추어서 주차하기가 편해서 좋습니다.

시장에는 싱싱한 횟거리와 수산물을 찾는 사람들로 북적대고 있습니다.


"아저씨, 뭐 찾습니까? 도다리, 광어, 감씨(감성돔)는 1kg에 1만5천원이고, 밀치(참숭어)와 우럭은 1kg에 만원, 숭어는 8천원이고, 멍게는 5천원입니다. 전복은 네 마리에 만원입니다. 뭣이든지 다 있습니다."

"가오리 찾는데, 없나요?"
"가부리(가오리)는 저 위쪽으로 가보이소."


시장을 한 바퀴 돌고서야 우리는 겨우 가오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가오리는 어떻게 하는가요?"
"1kg에 1만5천원입니더. 좀 드릴까예?"

a 주인공, 가오리

주인공, 가오리 ⓒ 한성수

우리는 가오리 1kg과 숭어 1kg을 시켰습니다. 아주머니는 '숭어가 워낙 커서 한마리가 2kg에 200g 모자라는데, 그냥 8천원만 달라'며 너스레를 떱니다. 아주머니의 손놀림은 너무 재빠르고 정확해서 나는 혀를 내두릅니다. 회 값은 초장 두 개와 된장 1개를 합해서 2만5천원입니다.

a 배, 파, 미나리, 무를 채 썬다.

배, 파, 미나리, 무를 채 썬다. ⓒ 한성수

집에 도착해서 아내는 무와 배를 일정한 크기로 채를 썰어냅니다. 내가 '크기가 조금 굵지 않느냐'고 하자, 아내는 '크기가 조금 굵어야 씹히는 맛이 좋다'고 일러 줍니다. 그리고 채의 길이와 비슷하게 미나리와 파를 자르고, 여기에 시장에서 장만해온 가오리를 넣어 조물조물 무칩니다.

a 숭어회.

숭어회. ⓒ 한성수

"초고추장에 버무릴 때는 가능하면 빨리 무쳐내는 게 좋아요. 오래 무치면 손에서 나온 열기가 회의 신선도를 떨어뜨릴 뿐더러 배와 무채에서 물이 나와서 산뜻한 맛을 버릴 수가 있거든요."

a 채에 가오리를 무친다

채에 가오리를 무친다 ⓒ 한성수

아내는 가오리 회무침을 접시에 담았습니다. 장모님은 '입에 착 달라붙는 달콤한 맛이 나면서도 끝 맛이 개운하다'며 한 접시를 비워내십니다. 환절기에 기력과 입맛을 잃으신 노부모님께 가오리 회무침, 어떠세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U 포터'에도 올립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U 포터'에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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