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환 가옥 사랑채고병하
하지만 둘러본 몇 군데는 방치되어서 집이 많이 헐고 문풍지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더 늦기 전에 한옥들을 수리 보존해야 할텐데'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창평지방은 천석꾼 만석꾼이 많았고 나라가 위급할 때 주저없이 돈을 내놓았던 지주들이 많았다. 임진왜란 때는 고경명 3부자가 목숨을 바쳐서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본보기가 됐고, 일제 강점기 때는 녹천 고광순 선생이 일본군과 장렬히 싸우다 구례 연곡사에서 숨을 거두었다.
또 월봉산의 정기가 가득 어린 곳으로 나라의 존망이 위급했던 을사보호조약 이후 민족의 활로를 찾기 위해 신문학에 대한 열의가 불꽃처럼 타오르던 향리의 피끓는 젊은이들을 위해 규장각 직각 춘강 고정주 선생은 병오년 4월(1906년 4월 1일) 이 곳에 창평초등학교의 전신인 '창흥의숙'을 처음으로 건립했다. 지금 창평 곳곳에는 4월 1일 창평초등학교 개교 100주년 행사를 알리는 플래카드가 펄럭이고 있다.
그리고 담양 누정문화의 선두로 창평의 상월정이 있고, 넓은 들판에서 나오는 질좋은 쌀로 만든 창평엿이 유명하다. 먹고 살기도 힘들었던 세상에 엿을 해먹을 정도로 여유가 있었고, 생금밭이라 불리우는 대밭이 많아서 더욱 윤택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옛부터 양반 고을이었던 창평의 한옥 마을을 제대로 유지보존하는 방법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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