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후 3시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는 '국군사병 건강관리 개선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국방부의 의무발전 개선방안은 한마디로 지나간 '유행가 가락' 같습니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
"군 내부를 잘 모르시니까 그렇게들 말하시는 것 같은데… 우리도 문제가 뭔지는 잘 압니다." (남택서 국군의무사령부 보건운영처장)
20일 오후 3시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는 '때늦은' 토론회가 열렸다. 신상진 한나라당 의원이 주최한 '국군사병 건강관리 개선을 위한 토론회'가 그것. 지난해 10월 전역 후 보름 만에 위암말기 판정을 받고 투병 중 숨진 고 노충국 예비역병장 사건 덕분에 마련된 정책 토론회였다.
이 자리에는 국방부와 의무사령부를 대표해 강성흡 보건정책팀장과 남택서 보건운영처장이 참석했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 정상혁 이화여대 의대 교수, 김현준 보건복지부 공공의료팀장, 고 노충국씨 아버지 노춘석씨를 비롯 <조선일보> 의료전문기자, <오마이뉴스> 기자 등도 참석해 사병의 의료접근권 개선 방안에 관한 허심탄회한 얘기를 나눴다.
"지나간 유행가 가락... 국방부 의무발전계획은 10년 전과 똑같다"
전문가들은 고 노충국씨와 김웅민씨 사망 이후 국방부가 내놓은 군 의무체계 발전방안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국방 e-health 체계 구축, 부천 국방메디컬센터 건립, 신형 구급차·헬기 도입 등 국방부가 내놓은 개선방안이 모조리 도마에 올랐다. 전문가들의 진단은 한마디로 '장미빛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
"국방부의 계획은 10년 전 내가 국군의무사령부 장교로 근무할 때 보고한 내용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국방부는 '국방 e-health 체계 구축' 등 방안을 심층 검토하겠다거나 적극 추진하겠다는 답변만 되풀이하는데, 내가 듣기에는 모두 지나간 유행가 가락 같다."
발제자로 나선 김윤 서울대 교수는 의무사령부에서 근무한 경험에 빗대 국방부의 개선안을 이렇게 꼬집었다.
다른 전문가의 평가도 마찬가지. 정상혁 이화여대 교수는 국방부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국방메디컬센터(부천병원)에 대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아이디어"라고 깎아내렸다.
"부천병원은 국가자원의 낭비이자 국민의 세금을 엉뚱한 곳에 쓰는 것과 같다. 설혹 짓는다 해도 부천병원은 전시에 최전방에 해당된다."
전쟁이 터지면 최전방이 될 부천에 종합메디컬센터를 건립하는 게 의미가 있느냐는 지적이다. 그런데도 국방부는 국방메디컬센터 건립에 향후 5년간 약 7329억원의 예산을 배정하고 있다.
아예 국방부 의무발전계획안을 백지화해야 한다는 비판까지 나왔다. 임태훈 성공회대 인권평화센터 연구원은 "국방부가 발표한 군 의무발전계획의 전면 백지화가 필요하다"며 "국회와 민간단체, 국방부와 의료전문가가 참여하는 팀을 구성해 병사들의 의료접근권에 대한 정확한 실태조사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예산 확보와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사태가 이쯤 되자 군과 국방부는 발끈하고 나섰다. 남태선 의무사령부 보건운영처장은 '의무발전계획 전면 백지화' 주장에 대해 "군에 대해서 잘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그는 "군의관으로 20년 동안 근무했고 군의 의료체계 개선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다, 우리도 문제가 뭔지는 잘 안다"며 앞선 이들의 비판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반박은 계속해서 '예산확보와 지원' 문제로 넘어갔다. 사병복지 개선을 위해 노력하려고 해도 한정된 예산과 무관심 탓에 어렵다는 얘기다. 결국 국방예산을 더 늘려달라는 요구로 이어졌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우리가 군 의료체계 전반에 대한 개선책을 제시하고 추진하고 있지만 이런 계획 상당 부분은 의무사령부나 국방부의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개선이 힘든 것들이므로, 앞으로도 군을 사랑하시는 여러분들께서 계속 도와주시고, 국회와 정부 차원에서 예산 확보와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2020년까지 매년 국방예산 9% 증가, 얼마나 더...
지난해 국방부가 발표한 '국방개혁 2020안'의 총 소요예산은 모두 621조원. 다른 국가 예산이 줄어드는데 반해 국방 예산은 매년 9%씩 증가하도록 돼 있다. 또 국방부는 오는 2010년까지 모두 1조4824억원을 들여 군 의료체계 개선에 힘쓰겠다고 밝힌 바 있다. 1조4824억원의 의료체계 개선비용 대부분은 최신형 구급차나 헬기 구입, 약품 구입, 병원 건축 등에 쓰일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군 사병들이 민간수준의 진료를 받기 위해 의료전문인력 확충과 군의관 처우개선을 핵심 과제로 꼽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5년간 국방부가 지출할 1조4824억 중 여기에 쓰일 돈은 불과 135억원. 1%도 채 되지 않는다.
천문학적 액수를 책정해 놓고도 예산 탓을 하는 국방부에 대해 참석자들은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이었다. 박홍신(위암 4기 박상연씨 부친)씨는 마이크를 붙잡고 "결국 예산이 없다며 발뺌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지만, 너무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토론회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3시간여 만에 마무리됐다. 토론회 장소인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 기둥 한쪽에는 '天下第一强軍'이라는 붓글씨가 붙어 있었다. 천하제일강군. 병사들의 건강조차 지키지 못하는 대한민국 군대에 어울릴 수 있을지 다시 한번 되새겨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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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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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적 예산 쓰는 국방부 "그래도 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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