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 392회

등록 2006.03.21 08:14수정 2006.03.21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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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생각하기는?”

“빠르면 내일 저녁, 최소한 사흘 내에는 공격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어요.”


단사의 장점은 모든 정보를 취합하고 일어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미리 준비를 한다는 점이다. 이번 일 역시 그녀 나름대로는 대책을 강구해 놓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풍철한에게 상의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혼자서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라는 말이다. 지금 그녀가 풍철한에게 원하는 것은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다.

풍철한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영주가 없는 이 시점에서 모든 것을 결정할 사람은 이대오위의 수장 중 가장 연장자인 자신이다. 영주는 자신을 믿고 모든 일을 상의했고 후사를 맡겼다. 더구나 현 시점에서 영주가 던진 몇 가지 의혹스런 문제가 완전히 풀리지 않고 있는 상태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생각해 보아야 한다. 후속대책을 생각하지 않고 무모하게 한 가지에 고집하다가는 균대위 모두를 잃을 수도 있다. 이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던 그들이 움직인다는 것은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서일 것이다.

그들은 분명 자신들을 모두 파악했을 것이고, 어떠한 경우라도 승리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움직인 것이다. 이런 어려운 형국을 타개할 방법은 오직 하나다. 그들이 파악하지 못한 변수의 발생. 상대가 모르는 자신 만이 가지고 있는 패를 사용하는 것이다.

“이제는 노인네들께 사정을 해야 할 처지구나.”


“이미 늦었어요. 신검산장에 연락해도 열흘 이내에 이곳에 당도하시기 어려워요.”

단사의 말에 풍철한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의 눈에는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는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이 뒤따랐다. 그리고는 탄식하듯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나는 어둠 속에 묻힌 네 분을 생각하고 있다.”

그 말에 갑자기 단사의 얼굴이 홱 변했다. 극도로 놀란 표정이었다.

“검저유혼(劍底遊魂).......!”

단사가 나직하게 부르짖었다. 그녀가 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돼요. 어떻게 뒷감당을 하시려고요?”

“그 분들이 움직여야 신검산장에 계신 분들도 어쩔 수 없이 움직이실 게다. 어차피 저들이 본격적으로 나섰다면 우리 힘만으로는 어렵다. 우리가 당한 후에는 신검산장이라고 내버려 두지 않는다.”

“비원에서는 그것을 원치 않을 거예요. 비원과 적이 될 수도 있어요.”

“시기를 놓치면 당한다. 육양수(六陽手) 어르신이 이곳에 계시니 그 분들께 부탁드려 움직이게 하기 쉬울 게다.”

“검저유혼을 움직이려면 영주의 결단이 필요해요.”

단사는 말리고 싶었다. 되도록이면 검저유혼 네 분은 세상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 옳은 일이다. 황실과의 관계가 매우 껄끄러워질 수가 있고, 어쩌면 영주가 다칠 수도 있다. 풍철한은 품속에서 무엇인가를 꺼나 식탁 앞에 놓았다.

“이미 영주께 말씀드렸다.”

식탁 위에 놓인 것은 바로 담천의가 가지고 있던 초혼령이었다. 검저유혼을 움직이는데 필요한 단 하나의 물건. 그것은 곧 그들에게 자유를 주어야 한다는 대가도 포함된다. 초혼령을 풍철한에게 맡긴 것을 보면 담천의는 풍철한에게 모든 권한을 준 셈이었다.

“오라버니는 이미........?”

“천마곡이 어떤 곳인지 아는 순간부터...... 그리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종의 움직임을 알 때부터 나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았다. 나는 그것을 알기위해 내 혈육보다 가까운 친구를 잃었다.”

참풍십이식(斬風十二式)으로 산서제일도(山西第一刀)의 명예를 가지고 있던 참풍도(斬風刀) 가군영(珂君楹)의 죽음을 말함이다. 자신과 함께 천마곡에 들어가 조사를 하다가 미완성의 시검사도 괴물들이 있음을 알고 죽이려 하다가 오히려 당했던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풍철한은 알려지지 않은 많은 사실을 알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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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은 수시로 이루어졌다. 도무지 전열을 가다듬을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만박거사라는 호칭에 어울리지 않게 구효기는 당황하고 있었다. 이미 새벽에 시작된 첫 번째 공격으로 중군을 제외한 우군(右軍)과 좌군(左軍)은 괴멸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후방을 공격해 왔던 적들로 인해 우군과 좌군을 지원하지 못한 것이 그 원인이었다. 그나마 구양휘를 비롯한 세가(世家)의 인물들을 동원해 배후로 공격해 왔던 자들을 처리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오전까지 지속된 첫 번째 공격에서 제마척사맹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진용을 갖추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문제는 시검사도에 당한 군웅들이었다. 그들은 세시진이 지나기 전에 피부가 갈라지기 시작해 검붉게 변했고, 목내이(木乃伊)처럼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군웅들에게 공포에 질리게 했다.

그런 막대한 피해 속에 공격해 왔던 시검사도의 괴물들과 실혼인들의 절반 이상 도륙했지만 다시 그런 규모로 공격이 이어진다면 막아내기 힘들 것이란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화마로 인하여 천막이나 식량 등이 소실된 것도 큰 문제였다. 암울한 상황이었다.

더구나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초저녁 무렵 시작된 두 번째 공격은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 첫 번째 공격에서 군웅들에게 막대한 타격을 입힌 시검사도의 괴물들과 실혼인들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것이 오히려 군웅들에게 가공할 압력으로 마음을 짓눌렀다.

제마척사맹의 군웅들 중에서 멀쩡하다고 할 인물들은 문파의 문주들이나 그 측근고수들 뿐이었다. 어둠 속 혼전의 와중에서 자신을 지킬 수 없었던 인물들은 거의 죽었거나 부당을 당한 상태.

그 사실까지도 꿰뚫고 있는 상대가 주력을 이끌고 공격해 왔던 것이다. 사실 아직 미완성의 시검사도나 실혼인들로서는 제마척사맹의 절정고수들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은 현명한 전략이었다. 대군을 비롯해 절대구마들이 직접 수하들을 이끌고 공격해 나선 것이다.

채 반시진도 안되는 공격 속에서 제마척사맹의 고수들 태반이 죽거나 부상당했다. 황보가(皇甫家)의 가주(家主)인 모화금검(謨花金劍) 황보장성(皇甫長成)이 옆구리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것도 바로 이 때.

철부왕(鐵斧王) 나정강(羅晸康)과 겨우 부상에서 회복한 뇌정보(雷霆堡)의 보주(堡主) 벽뇌신군(霹雷神君) 양승조(楊承祖) 역시 치명적이지는 않아도 심한 부상을 입었던 것이다.

만약 당황하고 있는 구효기 대신에 몽화가 사태 수습에 나서지 않았다면 제마척사맹의 수뇌급 고수들마저 당했을 터였다. 방어를 위한 원형진(圓形陣)을 구축해 피해를 최소한 줄인 것이 고작이었지만 기습의 효과가 떨어진 상대를 퇴각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피해수습을 위해 본격적으로 나설 수 없는 것은 언제 적이 다시 쳐들어올지 모른다는 우려감 때문이었다. 이 중에서 가장 바쁜 인물은 의술을 아는 갈인규와 당일기였다. 너무나 많은 부상자로 인해 그들은 눈코 뜰 새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아직 꺼지지 않은 불씨로 인해 자욱한 연기가 휘몰고 지나가는 폐허와 같은 그곳에 다섯 남녀가 나타난 것은 자시가 훨씬 지난 시각이었다. 한 인물의 등에 업혀있던 사내가 힘겹게 건넨 말은 뜻밖이었다.

“여기에 구양형이 있소? 그리고 몽화란 여인이 있소?”

그 사내는 구효기를 찾지도 않았고 독고문을 찾지도 않았다. 그가 찾은 것은 구양휘와 제마척사맹의 인물들 사이에서도 있는지 조차 모호한 몽화였다. 그리고 그 순간 제마척사맹의 인물들은 그가 누군지 알았고, 한편으로는 안도의, 또 한편으로는 실망의 기색을 나타냈던 것이다.

업혀있던 그 사내는 그들이 기다렸던 인물이었다. 그들에게 막연한 희망을 주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을 찾아 온 그 사내는 스스로 걷지도 못한 채 병색이 완연한 모습이었고, 더구나 온 몸에 부상을 당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처참한 모습이었다.

또 한번 군웅들의 마음속에 절망감이 스며드는 순간이었다. 허나 군웅들을 헤치고 그 사내를 반갑게 맞아들인 인물들은 구양휘와 그 형제들이었다. 광도와 팽악, 그리고 갈인규였다. 그리고 그들 뒤에 몽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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