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보증수표 '결혼' 그 믿음에 부도를 내다

[서평]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

등록 2006.03.21 12:01수정 2006.03.21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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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먼타임스

[최희영 기자] 나른한 봄날, 독자들의 시선을 확 잡아끄는 책이 나왔다. 제목부터 심상찮은 <아내가 결혼했다>가 그것. 제2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이 소설은 일부일처제의 통념을 발칙하게 비틀고 꼬집는다.

이 소설은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결혼이란 완전무결한 제도인가. 절대적인 사랑이 과연 존재하기는 한 걸까. 사랑이라는 미명 하에 소유욕과 독점욕만 표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면서 작가는 소설을 통해 폴리아모리(비독점적 다자연애)의 결혼관을 거침없이 밀고나간다.


남자가 있다. 그리고 여자가 있다. 남자는 여자가 자신만 사랑하기를 원했다. 여자를 독점하기 위한 가장 유력한 방법은 무엇인가. 결혼이다. 남자는 여자에게 청혼하고 결혼한다. 단, 둘 중 누구라도 사랑하는 생기면 놓아주는 조건에 합의하고.

남자와 여자는 법적 부부가 되어 산다. 남편은 아내의 인생관을 존중하고 살아간다. 진실로 쿨한 남편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아내가 회사 일 때문에 경주로 내려갔고 둘은 주말부부가 됐다. 그래도 별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 아내는 폭탄선언을 한다. 결혼을 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는 것이다.

아내는 이혼하자는 것이 아니다. 결혼생활을 유지한 채 그 남자와도 결혼하고 싶다는 것이다. 복혼 혹은 이중결혼을 하겠다는 것이다. 남편은 혼돈에 빠진다. 드라마 ‘사랑과 전쟁’에도 나오기 힘든 어처구니없는 상황 앞에서 남편은 아내를 설득하고 회유하고 협박했다. 하지만 아내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이처럼 ‘아내가 결혼했다’는 일반적 상식과 보편적 윤리관을 가진 사람이라면 납득하기 어려운 내용을 담은 소설이다. 장편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단 세 명의 인물만이 등장하고 이렇다 할 구성도 없다. 그런데 잘 읽힌다.

무거운 주제를 노련하고 부드러운 문체로 전달하기 때문이다. 사랑과 결혼, 그리고 인생을 축구, 영화, 음악, 철학 지식을 동원해 빚어내는 능력도 돋보인다.


소설가 김형경씨는 “일부일처제의 등 뒤에서 도발적인 질문을 제기하면서 굳은살처럼 견고한 결혼제도 전체에 대해 시비를 거는 작품”이라면서 “발칙한 발상에 비해 주제를 풀어가는 방식은 진중하고, 진지한 문제 제기에 비해 당돌한 문체가 매력적”이라고 분석했다.

이 소설이 더욱 빛을 발하는 이유는 ‘남편이 결혼했다’가 아니라, ‘아내가 결혼했다’이기 때문이다. 가부장적 결혼제도 안에서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혜택(?)을 누리지 못한 여성독자들이 대리만족을 느끼며 읽을 수 있게 만든다.


서로를 독점하지 않는 자유로운 연애를 남편에게 설득시키는 아내 캐릭터는 독자들의 폭넓은 사유를 유도한다.

하지만 씁쓸한 입맛을 다시는 독자도 있을 터. 문학평론가 김미현씨는 “현재의 아내가 다른 남자와 또 결혼했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소설은 한 번 읽으면 황당하지만 두 번 생각하면 슬프다. 그 이유는 이런 ‘판타지’가 필요할 만큼 일부일처제나 절대적 사랑의 시효가 만료되어 가고 있는 현실을 상기시켜 주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아내가 결혼했다 - 박현욱 장편소설

박현욱 지음,
문학동네,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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