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겨지고 피 범벅된 우릴 보호하소서"

[블로그] 이라크 여성 블로거 '리버벤드'의 호소

등록 2006.03.21 17:34수정 2006.03.23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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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기사는 '리버벤드'(Riverbend)라는 블로거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이다. 리버벤드는 이라크의 젊은 여성으로 불 타는 바그다드에서 자신의 일상을 블로그에 올리고 있다. 그의 블로그 '바그다드 버닝 (Baghdad Burning)'은 2005년 독일국제방송 (Deutsche Welle International)에서 주최한 블로그 시상식에서 최우수 저널리즘 블로그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오마이뉴스 인터내셔널>은 본인의 허락을 얻어 리버벤드라는 필명 아래 이 이라크 여성 블로거의 글을 계속 게재할 계획이다. <편집자주>
a 지난 2004년 4월 바그다드에서 이라크저항세력이 한 미군 험비차량을 공격한 것을 길가로 끌고나와 불을 지른 일단의 이라크인들이 불타는 미군차량 위로 올라가 승리의 춤을 추고있다.

지난 2004년 4월 바그다드에서 이라크저항세력이 한 미군 험비차량을 공격한 것을 길가로 끌고나와 불을 지른 일단의 이라크인들이 불타는 미군차량 위로 올라가 승리의 춤을 추고있다. ⓒ 연합=AP

"우리는 샤나킬(Shanakil)이나 사나피르(Sanafir)가 아니라, 차별없이 하나 된 무슬림이다."

독립 국가로서 이라크의 위상을 종식시킨 이 전쟁이 시작된 지 3년이 흘렀다. 3년 간의 점령과 피범벅 말이다.

봄은 재생과 부활을 의미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사람들에게 봄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되살리며 미래의 재앙을 준비하는 시간이 되었다. 올 해는 여러 모로 연료, 식수, 식량, 응급용품 및 의약품 등을 사재기 하던, 전쟁이 시작되기 직전인 2003년과 유사한 점이 많다. 우리는 2003년과 마찬가지로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지만, 폭탄이나 B-52 폭격기가 일용품보다 더 흔한 이 상황에서 무엇을 비축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3년 전 전쟁이 시작될 때는 어느 누구도 상황이 이처럼 나빠지리라고 상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 몇 주 동안 긴장감은 더해지고 있으며 내게 이러한 상황은 피곤할 뿐이다. 사실 우리 모두가 피곤해 하고 있다.

3년 간 전기 사정은 어느 때보다 나빠졌고 치안은 나쁜 정도를 지나 나날이 악화되고 있다. 이 나라는 마치 혼돈의 언저리에 서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 혼돈은 무슬림 무장집단과 광신도들이 미리 계획하고 조작한 혼돈이다.

초.중.고교와 대학, 직장은 문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고 있다. 일주일에 이틀은 학교나 직장에 나가고 닷새는 집에 틀어 박혀 바깥 사정이 좋아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보통이다. 지금 각급 학교는 휴교 중인데, 검은 색과 녹색 깃발, 검은 복장의 무리들, 시아파의 축제인 라트미야스(latmiyas)로 대표되는 '아르바이니야(일명 40번째 날)'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 주 수요일에 아이들을 다시 등교시키도록 '시도'해 보라는 통지문을 받았다. 내가 '시도'라고 표현한 이유는 그 동안의 여러 가지 경험들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오래동안 연기되었던 의회모임이 열리기 전에 학교들은 휴교를 했으며, 사마라에 있는 회교사원에 폭탄이 떨어졌을 때에도 학교들은 문을 닫았다. 올해 어린이들은 학교에 가는 날보다 집에 있는 날들이 더 많았다.


나는 올해의 아르바이니야가 특별히 염려된다. 사마라에 있는 아스카리 사원에서 일어난 참사보다 더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이라크인 대부분은 이 모든 상황이 이라크인들을 이간질시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획책하고 있다는 의견에 동의할 것이다.

두려운 것은 폭격이 아닌 불화와 차별의 광풍


a 지난해 7월 이라크 어린이들이 바그다드의 사드르 시티에서 떠나는 미군 순찰대에 돌을 던지고 있다.

지난해 7월 이라크 어린이들이 바그다드의 사드르 시티에서 떠나는 미군 순찰대에 돌을 던지고 있다. ⓒ AP 연합뉴스

나는 무슨 이유로 2006년의 상황이 작년이나 재작년보다 훨씬 더 어려워졌는지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이는 전기, 식수, 훼손된 건물과 거리, 볼썽사나운 콘크리트 안전벽 등과 같은 밖으로 드러나는 요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이런 외적인 어려움은 불안을 야기하고 있지만 개선이 가능한 사항들이다. 이라크인들은 이 나라가 재건될 수 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입증해 보이고 있다. 상황을 악화시키는 원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무엇인가에 있다.

진짜 두려움은 최근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게 된 사고방식과 정신상태에서 온다. 불화와 차별의 광풍이 이 나라의 중심부를 쓸고 지나가며, 사람들은 이간질시키고 싸우게 하고 있는 것이다. 교양 있고 예의 바른 사람들이 모여 '수니'가 어쩌고, '시아'가 어쩌고 하며 서로 욕을 하는 낙심 천만한 상황이 되고 만 것이다. 사람들이 이사짐을 싸들고 '수니파 동네' 혹은 '시아파 동네'로 이사가는 것을 목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쩌다 이런 일들이 생겼는가?

이라크에서 항상 수니파와 시아파의 분리가 존재해 왔으나 독재치하에서 마치 이런 불화가 없는 것처럼 묵살돼 왔다고 주장하는 분석 글들을 나는 계속해서 읽고 있다. 그런데, 이런 글의 대부분은 외국인들이나 외국에서 수십년 동안 거주해 온 이라크인들이 쓴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사실이 아니다. 만약 분리가 있어 왔다면 그것은 시아, 수니파의 양 극단에 속한 사람들 사이의 문제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친구를 사귀거나 이웃과 교제하는 데에 시아니, 수니니 하는 것을 구분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이러한 종파 차이에 관심도 없었으며, 이러한 질문을 받게 되면 질문한 사람이 우둔하거나 무례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어렸을 적 친척집을 방문했을 때의 이야기다. 나는 그때 집 밖에서 이웃 아이들 중 하나와 놀고 있었다. 아말은 나와 동갑이었을 뿐만 아니라 같은 달에 사흘 간격으로 태어났다. 우리는 우스꽝스러운 농담을 주고 받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말이 수줍게 물었다.

"너 사나피르니, 아니면 샤나킬이니?". 나는 순간 당황했다. 아랍어로 '사나피르'는 스머프(Smurfs)라는 뜻이고, 샤나킬은 스노크(Snork)라는 뜻이다. 분명한 것은 아말이 내가 수니(사나피르)인지 시아(샤나킬)인지를 간접적으로 물은 것이다.

"뭐라고?" 나는 반쯤 웃으며 되물었다. 아말은 웃으면서 내가 기도할 때 배 위에 손을 펼쳐 놓는지 주먹을 쥐는지를 물었다. 나는 이 질문에 별로 흥미가 없었지만 내가 열살이나 되어서도 아직도 제대로 기도하는 법을 모른다는 사실이 약간 창피스러웠다.

그날 저녁, 나는 어머니에게 우리가 스머프인지 스노크인지를 물었다. 이 질문에 엄마는 내가 아말에게 지어보였던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엄마. 우리가 이런 자세로 기도해요? 아니면 다른 자세로 하나요?"

나는 일어서서 두 가지의 기도자세를 취해 보였다. 어머니는 투명한 눈동자로 고개를 끄떡이며 이모를 바라보았다. "왜 그런 걸 묻니? 누가 너한테 물어보라고 했니?" 나는 어머니에게 샤나킬파에 속하는 아말이 오전에 물어봤었다고 설명했다.

"아말에게 대답해주렴. 우리는 샤나킬도 사나피르도 아니라 무슬림이라고. 이 둘은 아무 차이도 없다고 말이다."

바그다드를 떠나는 시민들

a 지난 6일 바그다드 북부교외 시아파 회교사원 앞에 경비를 서고있는 이라크 군인들.

지난 6일 바그다드 북부교외 시아파 회교사원 앞에 경비를 서고있는 이라크 군인들. ⓒ AP 연합뉴스

몇 년 후 나는 우리 가족 중 절반은 샤나킬이고 다른 절반은 사나피르이며, 우리 가족 중 아무도 이런 차이를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가족행사나 저녁식사 때 시아니, 수니니 하는 것 때문에 논쟁하거나 싸우지 않았다. 우리 가족들은 사촌들이 주먹을 쥐고 기도를 하든, 손을 펴고 기도를 하든 상관하지 않았다.

사실 내 세대에 속하는 이라크인들 중 많은 수가 이러한 태도와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간에 종파나 인종적 배경을 바탕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후진적이며,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예의가 없는 사람들의 문제라고 배웠다.

현 상황에서 가장 염려스러운 점은 종파에 기반한 차별이 상식처럼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바그다드에 사는 보통 이상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 중에는 수니-시아를 운운하는 경향을 경멸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정치가들과 정당들은 매일같이 신문이나 대중연설 등을 통해 '우리'와 '저들'을 가르면서 사람들에게 시아파나 수니파 어느 한쪽 편에 가담하라고 압박해오고 있다.

우리는 줄곧 '우리 수니파는 시아파 형제들과 단결해야한다' 혹은 '우리 사이파는 수니파 형제들을 용서해야 한다' (참고로 우리 수니와 시아파 자매들은 이러한 주장에 해당사항이 없다는 것을 밝혀 둔다) 등의 글을 읽고 있다. 정치가들과 종교인사들은 우리가 종국에는 단지 이라크인들일 뿐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잊어버린 것 같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 대한 점령군들의 책임은 무엇인가? 내가 보기에 이라크인들이 분열하는 것은 점령군들에게는 참으로 편리한 상황일 것 같다. 만약 이라크인들이 서로 납치하고 살해하는 것을 일삼는다면 점령군들은 중립적인 외국 국가로서 이라크인들 사이의 평화와 상호 이해를 증진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 전까지 매우 평화적이며 상호 이해적이었던 이라크인들 사이의 평화와 이해 말이다.

전쟁이 시작된 지 3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아주 명백하지는 않지만 눈에 띄게 퇴행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 몇 주 간만 해도 수천 명이 무의미한 폭력에 희생되어 목숨을 잃었으며, 서두에서 언급한 대로 미군과 이라크군은 사마라에 폭탄을 퍼부었다. 여기서 슬픈 사실은 공중에서 퍼부은 공격 자체가 아니라, 공격이 감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갈 곳이 없어 집에 있다 변을 당한 사람들의 체념이다. 이전에 사람들은 바그다드와 근교지역으로 피난을 갔지만, 이제는 바그다드 시민들이 도시를 떠나고 있으며, 이 나라를 떠나는 사람들도 생기고 있다. 평범한 이라크인들의 소망은 해외로 나가 안전한 피난처를 찾는 것이다.

3년이 지난 후 폭격의 악몽과 충격, 공포는 다른 종류의 악몽으로 변해가고 있다. 현재와 3년 전의 상황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차이가 있다. 3년 전에 우리는 재산이나 주택, 자동차, 전기, 식수, 연료 등 물질적인 것에 대해 걱정을 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걱정거리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정의 내리기 힘들다. 3년 전 가장 신랄했던 반전론자들조차도 이 나라의 상황이 이렇게까지 열악해질 것이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알라 위스투르 민일 라비아(알라여, 이라크전 4주년에서 우리를 보호하소서)."

(*번역:조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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