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남대 강연회장에서 단상위까지 올라가 가부좌로 학생들이 김 전 대통령의 강연을 듣고 있다.오마이뉴스 이승욱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올해 들어 첫 지방 나들이를 나섰다. 그것도 대구경북지역 방문이다.
21일 김 전 대통령은 영남대학교(총장 우동기·경북 경산시 소재)의 명예 정치학 박사 학위 수여식에 참석하는 한편 특별 강연을 위해 대구를 1박 2일 동안 방문했다. 김 전 대통령은 전날 오후 5시 10분 KTX로 대구에 도착해 휴식 시간을 가진 뒤 이날 오전 10시 30분 영남대에서 학위 수여식과 특별 강연을 동시에 가졌다.
이번 방문은 김 전 대통령의 올해 첫 지방 나들이일 뿐만 아니라 퇴임 후 지방 대학에서 한 강연으로는 처음이다. 무엇보다 오는 6월 방북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이뤄져 김 전 대통령의 행보에 보다 많은 관심을 모았다.
"지역감정, 근본적인 것도 오래된 것도 아니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의 방문이 단순히 정치적인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엔 김 전 대통령의 개인적인 인연도 있다.
김 전 대통령이 명박 학위를 수여받은 영남대는 그의 정치적·숙명적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을 '정관상' 교주(校主)로 모신 대학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대구는 여전히 호남과 영남으로 대별되는 지역감정의 한 축인 도시다.
그래서 김 전 대통령이 대구를 선택한 것은 그 자신에게나 지역감정의 폐해를 인식하는 모든 국민에게 뜻깊은 일인 셈이다.
| | | "콧물이 주책없이... 부시 내 말 그대로 따라해" | | | 고령 불구하고 특유의 '유머'로 연신 웃음 | | | | 지난해 건강 악화로 주위를 샀던 김 전 대통령은 여든 넷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강연의 열의는 남달랐다.
단연 눈에 띈 것은 김 전 대통령의 '유머'였다. 연설문을 읽다가 갑자기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낸 김 전 대통령은 "실례합니다"면서 손수건으로 코를 풀었다. 잠시나마 정적이 흐르자 그는 "콧물이 주책없이 나와서"라고 말했고, 장내는 웃음바다가 됐다.
김 전 대통령은 또 '악의 축' 발언 직후 부시 대통령과의 회담을 소개하면서 "'전쟁 도중에도 휴전협정하고 북과 대화를 했고 50년 동안 큰 탈이 없이 지금까지 잘해왔는데 대화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면서 "그런데 회담이 끝난 이후 부시 대통령이 내 말을 그대로 기자들에게 하더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한 학생이 발렌타이데이나 화이트데이 때 이희호 여사와 초콜렛이나 사탕을 주고받느냐는 질문을 하자 "왜 하필 꼭 그런 질문을 하느냐"면서도 "집사람이 초콜렛을 갖다줬는데 나는 잊어버렸다"고 말해 박수가 터져 나왔다.
또 한 학생이 '노벨상을 받을 정도면 부부생활도 평화적으로 해결하느냐'고 묻자 김 전 대통령은 "노벨상을 주면서 별다른 지침을 준 것은 없었다"면서 "항상 상대방의 장점을 보고 화내는 것을 미루다면 자연히 풀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 | | | |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영남대 학생들과 강연 공동 주관단체인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소속 회원 등 300여명이 모인 가운데 특별 강연에서 지역감정 문제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강연 후 질의응답에서 김 전 대통령은 지역감정과 관련한 질문에 "의식적으로나 목적적으로 온 것이 아니라 영남대를 한번 와 보자는 생각으로 온 것일 뿐"이라고 일단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동서 지역갈등에 대해서 백제와 신라를 거론하지만 이것은 조상들에 대한 모욕"이라면서 "자유당 정권 당시에도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라도나 경상도를 따지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그는 또 지난 1963년 대선을 예로 들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지지를 받아 당선됐다, 결국 전라도 사람들이 당선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또 "(지역감정은) 정권 유지를 위해서 정치인들이 문화적인 열등감과 우열감을 드러내도록 유도한 것으로, 근본적인 것도 오래된 것도 아니다"라면서 "지역주의는 이성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오염되지 않은 젊은 학생들이 나서서 타파해 달라"고 당부했다.
앞서 김 전 대통령은 '남북관계 발전과 민족의 미래'를 주제로 강연했다. 그의 화두는 지난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남북관계는 정상회담 이후 지난 6년 사이에 획기적인 진전을 이룩했다고 말 할 수 있다"면서 "한민족이 역사속에서 보기 드물게 자기 운명을 자기 의지를 가지고 결정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21일 영남대를 찾아 명예박사 학위 수여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실사구시'(實事求是)라 적은 친필 휘호를 선물로 전달하고 있다.영남대학교
"6월 방북에서 '김정일 답방 연기' 설명도 있을 것"
또 김 전 대통령은 또 "(6·15 정상회담) 당시 난산 끝에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도 합의됐는데 아직 실행되지 않고 있다"면서 "이번에 방북하면 그에 대한 설명도 있을 것으로 알고 답방이 반드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해 6월 방북에서 답방 문제를 집중 거론할 것임을 시사했다.
경색된 북미 관계 개선과 6자 회담의 진전을 위해 김 전 대통령은 미국의 결단을 촉구했다.
김 전 대통령은 "서로 불신이 있는데도 한 쪽에게만 먼저 실천하라고 하면 거래는 성공하기 어렵다"면서 "북한이 이미 핵을 완전히 포기하고 검증을 받을 용의가 있다고 한 만큼 미국이 보다 진전된 반대급부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 6자가 공동으로 존중하는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통일은 가장 중요한 민족의 목표이지만 서두르지 말고 착실하고 안정된 기조 위에 추진해 나가야 한다"면서 "통일과정은 남북이 각자 '윈윈'하는 공동 승리의 기반 위에 이룩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를 위해 김 대통령은 젊은 세대들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은 21세기 주류국가로서 우리 역사상 처음 세계적 국가의 영광을 안게 될 것"이라면서 "축구와 야구에 있어서도 엄청난 힘을 발휘했다, 야망과 헌신에 찬 젊은이야 말로 민족의 꿈이요 희망"이라는 당부의 말로 영남대에서 강연을 마쳤다.
"북핵 해결, 미국이 결단해야... 일본 우경화, 전체 국민의 문제"
이날 강연에서 김 전 대통령은 일본의 우경화 움직임 등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은 지도자 한 사람의 문제보다는 일본 국민 전체의 문제라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다.
김 전 대통령은 "동북아 지역의 평화를 위해 한·중·일 삼국간의 협력이 필요하다"면서 "하지만 일본이 올바른 반성을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이 억울하다면서 급진적으로 우경화되고 있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일본은 (독일과 달리) 전후 과거사에 대해서 올바른 교육을 시키지 않아 인구의 8할 정도가 과거의 잘못을 알지 못하고 있다"면서 "고이즈미 총리 개인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일본 국민 전체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 | | 처음은 폰카 촬영 세례... 마지막은 "건강하세요" | | | [이모저모] 뜨거운 환영 속에 진행된 영남대 방문 | | | |
| | ▲ 21일 영남대를 방문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동을 하는 동안 한 여학생이 휴대폰으로 김 전 대통령의 모습을 촬영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남대학교 명예박사 학위 수여와 강연회는 학생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서 진행됐다.
21일 오전 10시 김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를 비롯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일행은 영남대 중앙도서관 앞에서 우동기 영남대 총장과 이의근 경북도지사(총동창회장) 일행 등의 영접을 받았다.
이에 앞서 김 전 대통령 일행의 방문 소식을 접한 학생 등 100여명이 중앙도서관 앞으로 모여들어 일행을 에워쌌고, 김 전 대통령은 학생들의 휴대폰 사진 촬영 세례를 받았다.
김 전 대통령은 이 여사와 함께 중앙도서관 옆 뜰에서 기념식수를 하고 이어서 1층 환담장에서 우 총장 등과 환담을 나눴다. 환담이 진행되는 동안 수업을 마치고 나온 학생들로 환담장 주변은 더욱 붐볐다. 200~300여명의 학생들이 김 전 대통령이 강연장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특히 강연회가 열린 영남대 인문관 강당에서는 더 많은 학생들이 김 전 대통령의 환영하면서 관심을 보였다. 학군단(ROTC)의 사열을 받으면서 입장한 김 전 대통령에게 학생들은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이날 강연회는 주관단체인 영남대 통일문제연구소와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등이 사전 청강 신청을 받았지만 신청 학생만 700여명이 넘었다. 결국 대학측은 강당에 들어가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서 전광판과 300석 규모의 간이 좌석을 동원해야 했다.
이날 환대를 느낀 듯 김 전 대통령도 "나의 착각이 아니길 바라는데 많은 학생들이 지금 환영해주는 것을 보면 지역감정 문제도 두려워 하지 않아도 되고 잘 될 것"이라고 반색했다.
이날 강연회가 끝난 후 강당 밖에서 기다리던 학생과 시민들은 "건강하십시오"라는 말과 박수로 김 전 대통령을 배웅했고 김 전 대통령은 손을 들어 따뜻한 환대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한편 이날 김 전 대통령은 명예 정치학 박사학위 수여를 감사하는 뜻으로 직접 쓴 '실사구시'(實事求是) 휘호를 전달했고, 영남대는 영남대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무등산도'(無等山圖) 영인본을 선물했다.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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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 "6월 방북에서 김정일 답방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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