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 물오르면 난 자일리톨을 마신다

고향에서 자작나무 수액 마시며 클래식 맘껏 듣고 싶다

등록 2006.03.30 14:34수정 2006.03.30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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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나도 한 때는 자작나무를 타고 싶었다

나도 한 때는 자작나무를 타고 싶었다 ⓒ sigoli.com

‘종아리가 슬픈 여자’ ‘나도 꼭 한 번은 타보고 싶고’ ‘하얗고 시린 허벅지를 드러낸 사람들’ ‘분바른 소녀’ 그리고 ‘눈밭에 함께 뒹굴고 싶은 희미한 영혼’ 자작나무에 대한 감상이다.


북구(北歐) 설원 그리고 몽골과 시베리아 넓은 대지엔 사람 손길이 닿지 않아 하얀 페인트가 벗겨지고 있다.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인 듯 부스럼 딱지가 쓸모없는 허깨비를 털어내고 있다.

아, 기어코 올 겨울엔 백두대간 골짜기 눈밭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눈부신 자작나무를 훔쳐보려 무진 애를 썼다. 허사였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몸을 씻으면서 까르르 까르르 웃던 여인의 뒷모습 한 시도 놓치지 않으려 했지만 벌써 봄을 맞고 말았다.

a 원종호 자작나무 숲 미술관장, 소설가 박도 선생이 자작나무 수액을 마시고 있다.

원종호 자작나무 숲 미술관장, 소설가 박도 선생이 자작나무 수액을 마시고 있다. ⓒ sigoli.com

내 마음은 아직 헤어나질 못하고 망부석처럼 허허벌판에 쓸쓸히 서성이고 있다. 되살아난 봄바람에 몸을 가누지 못하겠다. 낮밤의 치열한 춘투(春鬪)에 개구리 소리 끼루룩 끼루룩 도깨비 나올 듯 밤이 무섭도록 심란하다.

아지랑이 산모롱이에 자지러질 즈음 남도사람들은 고로쇠단풍 수액을 마셨다. 며칠 지나 강원도에선 몸 속 쓰레기를 배출하기 위해 자작나무 수액을 받는다. 자일리톨 원액 자체를 마시며 봄날을 즐기고 있다. 한 번 떠나볼까?

여기는 강원도 어느 깊은 산골짜기. 안흥찐빵을 먹고 큰 길을 달리다 작은 길로 접어들었다. 얼마나 들어왔다고, 계속 갈까 말까를 저울질 하게 된다. 보이겠거니 이제는 나오겠거니 다 왔다 싶어 두리번거려보지만 자작나무는커녕 미루나무도 보이지 않는다.

a 5월 초엔 이렇듯 연한 잎을 피운다.

5월 초엔 이렇듯 연한 잎을 피운다. ⓒ sigoli.com

분명 길가엔 자작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시멘트길도 이젠 흙길로 바뀌었다. 한숨이 절로 나오던 차에 퍽이나 애쓴 흔적이 역력하게 흙길을 잘도 다져놓아 내려서 걷고 싶다. 잠시 뒤 산자락을 휘돌자 우리 앞엔 하얀 젓가락이 무수히 꽂혀 있다. 그래, 자작나무가 없을 턱이 없지.


아직, 강원도의 봄은 더디다. 오려면 한참이나 기다려야 한다. 마른 풀과 앙상한 나무뿐이다. 며칠 더 늦췄더라면 쏙쏙 속삭이며 제비초리를 드러내는 새싹이라도 있으면 덜 외로울 텐데 서둘러 찾아온 결과니 어쩌지도 못하였다.

두리번두리번 주변을 둘러보았다. 생동하는 봄 언저리에서도 변화가 감지되었다. 나는 일정이 바빠 자작나무가 있다는 박도 선생님 말씀이 없었더라면 당분간 자작나무를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자작나무는 미루나무, 은사시나무와 사뭇 다르다. 대략 15년 된 5000그루가 어울려 숲을 이뤘다. 더 들어가자 40~50년이나 되어 거목이 된 나무도 있다. 아예 겨울에 왔더라면 자작나무와 흰눈의 어울림을 맘껏 누렸으리라 생각하니 회한만 가득하다.

우두커니 서 있는 자작나무에게 다가갔다. 그냥 나뭇결로도 눈요깃거리가 충분했으니 발걸음 자체가 가벼웠다. 나무는 온도변화에 민감하다. 벌써 껍질에서 생동감이 있고 잎은 곧 연노랑 잎을 틔우려고 아우성이다.

a 자작나무와 눈 잘 어울리는 한쌍 아닌가?

자작나무와 눈 잘 어울리는 한쌍 아닌가? ⓒ sigoli.com

음악이 흐르면 좋겠다. 자작나무 숲이 장관을 이루는 러시아는 자작나무를 노래하는 곡도 많다. 우리 시골의 수양버들처럼 러시아 사람들에겐 떠나온 고향과 수많은 사연을 떠올리게 하는 나무다. 자작나무를 노래하는 기악곡과 러시아 로망스, 한국가곡을 들어보자.

먼저, 박경숙&니나코간의 'Russian Romance' 중 '아무르강의 물결'이다. 라흐마니노프 첼로소나타와 귀에 익은 러시아 로망스를 첼로와 피아노로 연주한다. 니나코간은 레오니드 코간의 딸. 올 10월에 두 사람의 내한연주가 있으니 미리 들어둠도 좋겠다.

러시아에서 가장 인기있는 대스타 류베. 그의 노랫말은 민중의 설움과 분노를 달랜다. 그런데 류베 노래가 인기가 있는 이유가 사회주의 체제에서 발생했던 부작용보다 새롭게 출현한 자본주의에 러시아 사람들이 더욱 고통스러워했음을 반증하는 것이어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류베(Lube)의 '위하여' 중 '자작나무'가 몸을 깨웠다.

아직 봄은 가지 않았지. 한 겨울 자작나무를 보며 고향을 그리는 노래는 없을까. 마침 며칠 전 흰눈이 와서 안성맞춤이겠다. 알렉산드로 빠드볼로또프의 '하얀 자작나무'에 빠졌다가 윤연모 시 김승호 곡 김희정이 부른 한국예술가곡연합회 신작예술가곡 제3집 '자작나무'를 피아노 연주로 듣는다.

a 자작나무에 눈이 내리고 있다. 시베리아, 몽골 분위기는 또 어떨까?

자작나무에 눈이 내리고 있다. 시베리아, 몽골 분위기는 또 어떨까? ⓒ sigoli.com

우수(雨水)가 지나고 경칩(驚蟄) 무렵이면 영하로 떨어지는 밤엔 물을 머금고 있다가 화창한 낮에 조그만 생채기라도 있으면 밖으로 나오려고 발버둥을 친다. 4월 중순 곡우(穀雨) 무렵 낮 기온이 15도를 오르내리면 촉촉한 비를 맞아 펌프질을 하듯 약수(藥水)를 뽑아낸다.

혈액 정화, 이뇨작용 및 신진대사 활성화로 시작하여 염증과 상처를 일찍 치유하고 아토피성 피부질환을 개선하며 간의 단백질 합성 증가로 피로 회복을 촉진한다. 면역증강과 노화 억제는 물론 출산 후 여성 체내출혈을 막아 빠른 회복을 돕는다.

입맛이 떨어지는 봄철 식욕을 촉진하고 신경안정, 위장병에 효험이 있다지만 먹어봐야 식후경 아닌가. 두런두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금줄을 쳐놓은 듯 링거 호스를 꽂아 물통에 모아둔 자작나무수액을 연신 들이켜노라니 시간이 보통 빨리 지나가는 게 아니다.

a 자작나무와 흡사한 사시나무. 냇가에 줄줄이 늘어선 미루나무도 볼만 하다.

자작나무와 흡사한 사시나무. 냇가에 줄줄이 늘어선 미루나무도 볼만 하다. ⓒ sigoli.com

민가에 자작나무 수액을 받아놓았다. 약간 싸늘하여 한 통을 들고 따끈한 방으로 들어가 땀을 쪽쪽 빼며 마시자고 하고 싶었으나 초면이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더 둘러보고 흰 분필을 칠해놓은 듯한 나무를 어루만졌다. 그래. 자작나무껍질은 장마철에도 새까만 연기와 석유 타는 냄새를 풍기며 잘도 탄다.

오고 싶지 않았지만 아쉬움에 치를 떨며 자리를 물렸다. 인사치레 거나하게 하고는 나오려는데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 <길에서 길을 묻다>를 펴낸 박도 선생과 내가 의기투합을 하느라 아예 길을 떠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a 정말 매끈한 나무 아닌가? 한꺼풀 때를 벗긴 듯 말끔하다.

정말 매끈한 나무 아닌가? 한꺼풀 때를 벗긴 듯 말끔하다. ⓒ sigoli.com

“선생님 우리 자작나무 축제 한번 할까요?”
“어떻게요?”
“소박하게 하는 겁니다. 물은 맘껏 마시고 음악도 좀 들으면서 작은 이야기판을 열어도 될 듯싶은데요.”
“될까요?”
“그럼요. 간혹 산신제를 지내는 곳도 있지만 남부지방에서 고로쇠수액을 파는 것처럼 축제로 자리잡지는 않았거든요. 게다가 강원도엔 이런 좋은 곳이 곳곳에 숨어 있으니 문화를 곁들이면서 건강도 챙기면 다들 좋아할 겁니다.”
“김규환씨, 그럼 점심 때 막국수 먹고 횡성장날로 맞추면 시장 구경도 하면 좋겠네.”
“딱 좋습니다. 한번 추진해보죠.”
“나는 귀농이야기를 할까요?”
“좋습니다. 다른 건 제가 서울 가서 더 살을 붙여보겠습니다. 아주 색다른 맛일 거예요.”

우린 아쉬워 떠나며 몸에서 밀어내는 찌꺼기를 땅에 오줌으로 두 번이나 되돌려주고 나니 아침에 서울에서 바삐 달려오느라 쌓인 피로가 싹 가셨다. 횡성읍내로 돌아왔다. 붉게 물든 노을에 비친 자작나무는 무슨 색일까? 멋진 음악까지 곁들여진다니 어서 4월이 오면 좋겠다. 5월 초엔 정선으로 가서 산나물에 향기에 취하고 싶다.

a 건국대 일감호 옆에 자작나무가 있어 운치가 있다.

건국대 일감호 옆에 자작나무가 있어 운치가 있다. ⓒ sigoli.com

덧붙이는 글 | 김규환 기자는 고향신문을 만들고 있습니다. 시골아이고향☜ 에 놀러 오세요. 고향의 맛과 멋이 있습니다. 이 기사는 sbs U포터에도 보냅니다.

- 축제를 기획하다가 난관에 부딪혀 결국 전남 화순 백아산 <산채원> 예정지에 자작나무 1000그루를 심고 말았습니다. 언제 그 나무가 클지 모르겠네요. 위와 같은 형식으로 같이 하실 의향이 있는 자작나무를 가꾸시는 산주께서는 제게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 꼭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김규환 기자는 고향신문을 만들고 있습니다. 시골아이고향☜ 에 놀러 오세요. 고향의 맛과 멋이 있습니다. 이 기사는 sbs U포터에도 보냅니다.

- 축제를 기획하다가 난관에 부딪혀 결국 전남 화순 백아산 <산채원> 예정지에 자작나무 1000그루를 심고 말았습니다. 언제 그 나무가 클지 모르겠네요. 위와 같은 형식으로 같이 하실 의향이 있는 자작나무를 가꾸시는 산주께서는 제게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 꼭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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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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