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는 종교가 아니다!"

'차 우상' 벗기는 <혜우스님의 다반사>

등록 2006.03.23 11:35수정 2006.03.23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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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곡우(4월 20일)가 2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곡우는 봄의 마지막 절기이자 '곡식을 위한 비'가 내려 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때여서 농촌 들녘은 부산해진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곡우는 차인(차를 만들거나 차 마시기를 좋아하는 이)들을 한껏 설레게 하는 절기이기도 하다.

이른바 '우전차'라는 것 때문인데, 곡우전에 나오는 연한 잎의 차를 우전차라 하여 가장 좋은 차로 여긴다. 맛과 향이 연하면서도 그윽하고 깊어서 잘 빚어진 우전차를 마시면 가히 선경에 이를 수도 있다.


그런데 웰빙을 부르짖는 오늘날, 차가 웰빙식품의 대표격으로 뜨고 있는 현실에서 우전차니 무슨 차니 하는 차의 이름과 종류와 차의 질을 제대로 알고 차를 대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리고 국내 대규모 제다공장에서 나오는 차 가운데 '선다일미'의 말뜻을 풀어주거나 '끽다거'라는 상징어의 목적어 자리에 앉을 자격이 있을 만큼 향과 맛을 갖춘 차가 과연 하나라도 있을지 의문이다. 대중은 그저 차가 몸에 좋은 건강식품이라는 매스컴의 호들갑에 커피 대신 티백 녹차를 마시고 녹돈 삼겹살을 좇고 녹차 화장품을 선호할 뿐이렸다.

또한 번잡한 준비와 까다로운 형식 때문에 차 마시기를 기피하는 사람들 가운데 '다도'라는 이름의 형식주의와 엄격주의가 왜색 차문화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요즘 농약 묻은 중국 차가 이땅에 범람하는 '차 사대주의' 사태 속에서 진정한 우리 차와 차문화를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중국 차의 밀어붙이기에 한국 차의 판매가 줄면서 '한국 차 위기 상황'이 심각하게 거론되고 있다. 한국 차 무엇이 문제인가?

<혜우스님의 다반사> 책표지
<혜우스님의 다반사> 책표지초롱
<혜우스님의 다반사>(부제 '오롯한 차 만들기, 차 쉽게 마시기')는 이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책이다. 햇차가 나오는 시기에 맞춰 20여년 간 오로지 토굴에서 '차 안거'를 해 온 저자(순천 혜우 전통덖음차 제다교육원 원장)가 한국 최초로 제다법과 차 생활의 대중화를 위해 자신의 '차 수도'를 혼신의 대중언어로 풀어놓았다.

이 책을 내게 된 동기는 요즘 우리 전통차와 차문화의 참모습 찾기보다는 형식과 허례허식, 차 호사에 치우쳐 차에 관한 인식이 심각하게 왜곡되고 있는 현실에 화두를 던지기 위한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우리 차 문화 왜곡의 주범인 '전통 제다법'의 문제점에 대해 신랄히 지적하고 그 해결을 명쾌히 제시하고 있다. 즉 한국 전통차가 가마솥 덖음차인 이유, '전통 덖음차 제다법'으로 잘못 알려진 '구증구포'에 대한 오해와 진실, 오롯한 차 덖기, 좋은 차와 그른 차 구별 및 그른 차를 좋은 차로 치유해 바꾸기 등 일찍이 다른 제다인들의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한국 차의 치부에 대해 가르침을 내놓고 있다.


즉 차의 출발은 차 만들기(제다)인 바, 그동안 국내에서는 차가 인기상품으로 뜨면서 차 상업주의 팽창 속에 차의 가격 수준에 걸맞은 차의 질에 대한 고민과 토론은 기피돼 왔다. 일부 고가의 차를 내는 제다인들은 자신의 제다법이 마치 전가의 보도인 양 공개를 마다하고 자신의 차가 천하의 명차인 양 배타적인 행태를 보여오고 있다.

그 결과 최근 들어 한국 전통차가 정체성의 방황 속에서 인기가 시들해지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차사대주의'가 겹쳐 허례허식의 일본식 다도가 횡행하고, 값싸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보이차 등 중국 차가 밀려 들어와 한국 전통차와 차문화가 위기를 맞고 있다는 진단이다.


한국 전통차 제다 및 차 생활에 관한 유일한 고전은 조선 후기 초의선사의 <다신전>과 <동다송>이 있다. 그러나 문화와 차 환경이 바뀐 현대에 이르러 이 두 저술은 한국 전통차의 고전은 되고 있으나 시대에 걸맞은 정밀한 제다나 상세한 차 생활에 대한 지침이 더 요구돼 왔다.

특히 중국에 차 학과가 무수히 많고 일본이 10여 곳의 차시험장을 운영하면서 제다법 및 차 품질관리, 특히 비료와 농약을 사용을 줄이는 품종개발 등에 국가적인 힘을 쏟고 있는 반면 한국은 민간 차원의 차 상업주의만 극성을 부릴 뿐 옳은 제다법 기준 마련이나 차의 품질 제고에 관한 공적인 관심이 전무한 상태이다.

이런 차에 <혜우스님의 다반사>는 '오롯한 제다법'을 비롯한 제다와 차 생활 전반에 관해 저자가 '토굴 차 생활 수도' 현장에서 오랜 기간 몸소 겪은 고민과 해법을 쉬운 말로 풀어놓은 것이기에 한국 전통차와 차 생활의 이해에 대중을 전례없이 쉽게 인도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기에 이 책에 대해 한국 전통차의 본가인 해남 대흥사 주지 몽산스님은 "초의스님이 <다신전>을 쓰실 적 품었을 법한 고민과 같은 맥락을 갖고 있는 다서로서, 이 책이 초의스님 이후 한국 차문화를 재정립하는 작은 초석이 되기를 기대한다"면서 일독을 권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차는 종교가 아니다!"라고 외치고 있다. 이는 차에 대한 신비주의와 허영과 우상을 단박에 허물어 주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말 한마디로 그동안 차에 주눅 들어 감히 범접하기를 주저했던 사람들이 허물없이 차에 다가갈 수 있게 됐다.

이 책은 차에 대한 허례허식과 중구난방식 주장으로 오히려 차로부터 멀어지게 된 대중들로 하여금 다시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차 곁으로 다가오게 할 것이다. 특히 차계에서는 <혜우스님의 다반사>가 차를 생업으로 하는 차 농가들에게 쉽고 제대로 된 제다법을 가르쳐줌으로써 제다의 교과서로 쓰일 것이며, 차 생활의 허영과 위선을 벗겨줌으로써 일반인들의 차 생활을 한결 가볍게 인도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저자 혜우스님은 섬진강변 순천시 황전면 비촌리 비룡초교 폐교자리에 '혜우 전통차 제다교육원'을 열고 차농가들에게 무료 제다교육을 베풀고 있다. 이는 자신의 검증 안 된 제다법을 보물단지처럼 껴안고 있는 사람들에게 사표가 될만한 일이라고 하겠다.

'혜우 전통 덖음차 제다 교육원'(전화 011-9308-7979)은 해마다 제다시기의 절정기인 5월 중순 이후 차 농가와 일반인들에게 무료로 전통 덖음차 제다 교육을 실시한다.

혜우스님의 다반사

혜우 지음,
초롱,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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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창간발의인, 문화부 기자, 여론매체부장, 논설위원 역임. 곡성 산절로야생다원 대표. (사)남도정통제다다도보존연구소 소장. 철학박사(서울대 교육학과, 성균관대 대학원 동양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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