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산지 필리핀' 표시가 선명하다. 대체 필리핀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조태용
앞서 말한 것처럼 플랜테이션 농업은 단작(單作)을 한다. 단작이라는 것은 단일 작물을 한 곳에서 집중적으로 재배한다는 것인데, 농업에서 단작은 곧 병충해에 취약함을 뜻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바나나를 좋아하는 바이러스나 벌레가 엄습했다고 가정했을 때 주변에 단일 작물은 그들의 쉬운 공격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한 작물을 지속적으로 심게 되면 연작장애가 일어나 병충해에 약하게 된다.
또한 필리핀 토종 바나나는 크기가 작은 바나나였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먹는 것은 큼지막한 바나나다. 즉 우리가 먹는 바나나는 필리핀 사람들에게는 외래종인 것이다. 외래종 바나나를 심다 보니 토착 기후에 취약하다.
그래서 단작, 외래종, 연작까지 겹치니 다량의 농약 사용이 불가피하다. 또한 수출을 위하여 미끈하게 벌레자국 하나 없이 키워야 하므로 많은 농약을 사용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바나나 경작지는 비행기로 엄청난 양의 농약을 살포하여 재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필리핀 농부들은 농산물 다국적 기업에 종속되어 비행기로 뿌려지는 다량의 농약을 뒤집어쓰고 농사를 짓게 되는 것이다.
필리핀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
또한 값싼 바나나의 이면에는 필리핀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이 있다. 이들의 하루 일당은 1.1달러 수준이라고 한다. 그 돈으로 그들은 농약으로 오염된 몸을 치료한다.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기에 턱없이 부족한 돈이다. 그들의 저임금이 있었기에 3천원만 주면 푸짐한 바나나가 우리 식탁에 올라오는 것이다.
더구나 자연상태에서 바나나는 사과나 배보다 쉽게 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시장에서 판매하는 바나나는 국내산 과일보다 더욱 싱싱하다. 자연에서 이런 일은 불가능하다. 결국은 많은 방부제와 살충, 살균을 위한 농약이 살포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알려진 농약으로는 '데민'이라는 농약이 있는데, 이것은 골프장에도 뿌려지는 농약이다. 바나나가 우리 손에 껍질이 벗겨지기까지 이러한 역사와 과정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바나나가 갑자기 저렴해지기 시작한 것은 1991년이다. 수입개방에 의하여 바나나가 대량 수입되었기 때문인데 이로 인해 바나나는 저렴한 수입 과일의 대명사가 되었다.
'페어트레이드'가 필요하다
그럼 필리핀 농민들은 바나나가 많이 팔리길 원할까? 그들은 결코 그런 바나나 생산에 종사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필리핀 농민과 연대하여 이른바 '공정한 무역(Fair Trade)'를 통해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구입하는 시민단체와 매장이 있다.
한 필리핀 농민이 일본에 보낸 한 통의 편지가 계기가 됐다고 한다. 즉, 당신들이 바나나를 구입하기 때문에 우리가 농약과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는 폭로가 있었던 것이다. 그 후 일본에서는 바나나에 대한 인식이 전환되었고, 정당한 가격을 주고 구입하는 '공정한 무역'의 시발점이 되었다.
우리가 먹는 수입산 과일 대부분은 이런 방식으로 재배되는 것들이다. 요즘 많은 양이 수입되고 있는 오렌지의 경우, 주 생산지는 미국의 캘리포니아다. 캘리포니아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농약을 사용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프랜시스 라페가 쓴 <굶주리는 세계>(창비)에 따르면, 미국은 전세계 농약 사용량 180만 톤 중에서 90만 톤의 농약을 사용하는데, 이중 25%가 캘리포니아에서 사용된다고 한다. 캘리포니아 오렌지를 좋아하는 분들은 꼭 이 사실은 알아두기 바란다.
바나나의 신선함과 싼 값에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에는 엄청난 농약과 노동력 착취가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여러분은 단지 바나나를 가격이 싸다는 이유로, 또는 아이들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구매하지만, 당신의 구매가 필리핀 농민 착취의 기반에서 이루어지며, 알게 모르게 다국적 농업 기업들이 그들을 지속적으로 착취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당신의 구매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페어트레이드'란 발전도상국의 유기·무농약농산물이나 수공예품을 공정한 가격으로 거래하며, 일을 만드는 것부터 기술원조까지 하는 종래의 무역과 대극을 이루는 무역으로, 세계의 NGO들이 중심이 되어 벌이고 있는 풀뿌리 국제경제활동이다. 공정한 가격으로 구매해주기를 원하는 개발도상국 생산자들의 요구를 부응하여 만들어낸 것으로 고용과 경제적 자립과 빈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무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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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서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친환경 농산물 직거래 참거래농민장터(www.farmmate.com)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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