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가 확연하다. <조선일보>는 "초대형 게이트로 비화될" 가능성을 제기한 반면 <세계일보>는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 비화할지는 미지수"라고 했다. 검찰이 투자컨설팅업체인 베스투스글로벌의 김재록 고문에 대해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데 대한 언론의 반응은 이렇게 다르다.
김씨는 김대중 정부 시절 '금융계의 마당발'로 불린 인물로 공적자금이 투입된 부실기업 정리에 개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검찰이 어제 구속영장을 신청한 사유도 2001년 10월 공적자금이 투입된 모 화재보험을 인수하려던 정모 씨로부터 고위 공무원에게 부탁해 인수 편의를 봐주겠다며 10억여 원을 받은 혐의다.
<조선일보>는 이 기초사실을 토대로 게이트 가능성을 제기했다. 근거는 두 가지다. "김씨로부터 청탁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는 정관계 인사 등 비호세력에 대한 수사가 이번 수사의 핵심"이라는 검찰의 말이 하나다. 또 하나의 근거는 '관측'이다. "검찰이 체포 하루 만에 전격적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도 김씨와 이들(정관계 고위인사) 간의 연관성에 대한 단서를 상당 부분 확보했기 때문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계일보>는 "검찰이 이미 지난해부터 김씨를 내사해왔고 올 1월 수차례 소환한 데 이어 집과 사무실 압수수색까지 벌였지만 개인비리 외에 '윗선'의 개입에 대한 뚜렷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는 점을 근거로 게이트로 비화할지는 미지수라고 했다.
<조선>과 <세계>의 보도 차이... 검찰 수사는 어디까지 갔나
어느 신문의 전망이 맞는 걸까? 이 대목에서 눈여겨봐야 할 점은 두 신문을 제외한 다른 신문의 보도태도다.
<조선일보>가 관련 뉴스를 1면과 종합면 머리로 전진 배치한 데 반해 대다수 신문은 사회면, 그것도 제1사회면이 아니라 제2 또는 제3사회면으로 후진 배치했다. 보도내용도 건조하다. 검찰이 밝힌 구속영장 청구 사실과 혐의내용, 그리고 김씨의 이력을 전하는 선에 그쳤다. 중립적 보도태도를 견지한 셈이다.
그럼 왜 이런 보도 편차가 나타나는 걸까? 점검할 사항은 역시 정보다. 정보의 차이가 확신의 차이를 낳았을 수 있다.
실제로 <세계일보>가 '미지수'라고 평한 근거는 모두 과거형이다. 지난해부터 올 1월까지 내사와 소환조사를 벌였지만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점이 근거다.
반면 <조선일보>는 '그 후'를 보도했다. 검찰의 분위기가 올 1월 김씨를 조사할 때와는 사뭇 다르다며 "이 때문에 검찰 안팎에서는 검찰이 이미 김씨와 친분이 있는 경제부처 및 금융권 인사와의 '거래' 단서들을 상당 부분 확보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이와 함께 검찰이 김씨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거론되는 L, J, O씨 등에 대한 계좌추적을 진행 중이라고 보도했다. '그 전'에는 별무소득이었지만 '그 후'는 다르다는 얘기다.
약하지만 흘려버릴 수 없는 정황이다. 검찰이 한가해서 계좌추적을 하겠느냐는 추측이 나온다. 혐의점을 잡은 뒤에 계좌추적을 하는 검찰의 수사관행도 놓칠 수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계좌추적 사실만 갖고 게이트로 연결 짓는 건 무리다 계좌추적은 김씨와 정관계 고위인사 간의 '거래'를 밝히는 창이다. 검찰은 이제 겨우 그 창 손잡이를 잡았을 뿐이다. 중요한 건 창 밖이 꽃밭인지 오물밭인지 여부다.
<경향신문>이 김씨 뒤에 당시 경제부처 고위관료 ㅇ씨, 장관 출신 정치인 ㄱ씨, 금융권 고위관계자 ㅇ씨가 있다는 '소문'을 전하고, <동아일보>가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와 김씨가 막역한 사이라고 전하면서도 중립적인 보도태도를 유지한 점을 놓치지 말자. 지금은 '예의주시'할 단계이지 '치고 나갈' 단계는 아니라고 판단했음을 엿볼 수 있다.
검찰수사 막 시작됐는데 결론 내리는 건 무모한 일
차이가 또 하나 있다. 대다수 신문이 김씨의 행적을 김대중 정부에 한정해 보도한 반면 <조선일보>는 시효를 연장했다. "수사대상에는 김대중 정부와 현 정부의 경제부처와 금융권 핵심 관계자들이 포함"됐다며 "김씨 수사는 현 정권 인사들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어느 신문의 판단과 전망이 맞는지를 따졌지만 결론은 낼 수 없다. 애초부터 무리한 일이다. 검찰이 이제 막 수사를 시작한 상태에서 결론을 앞당겨 내리는 건 무모한 일이다.
그래도 관전 포인트 하나는 잡았다. 수사 초입단계인데도 <조선일보>는 게이트 가능성을 강력 제기했다. 놓치지 말자. <조선일보>의 이런 보도가 '오버'로 귀착될지, 아니면 '혜안'으로 평가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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