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는 '표적' 아닌 '통로'에 불과?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김재록 의혹 독해법

등록 2006.03.27 11:36수정 2006.03.27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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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기아차그룹 본사 사옥.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기아차그룹 본사 사옥.오마이뉴스 이성규
'오버'는 아니었다. 언론 가운데 최초로 '김재록 게이트'를 제기한 <조선일보>의 보도는 오늘에 와서 '혜안'에 가까웠음이 확인됐다. 거의 모든 언론이 '빅 게이트' '초대형 게이트'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검찰 수사가 "심상치 않다"는 얘기도 빼놓지 않고 있다.

사건의 실체를 언급하기는 너무 빠르다. 검찰 수사가 이제 겨우 초입 단계인 만큼 예의주시하는 게 온당하다. 예의주시하되 줄기를 잡는 노력도 병행하자. 실체 못잖게 중요한 게 '어떻게 보는가' 하는 점이다.

오늘자 언론 보도만 추리면 관전 포인트는 두 개다. 현대기아차와 아더앤더슨이다.

언론도 적잖이 놀란 것 같다. 검찰이 어제(26일) 현대기아차 본사를 전격적으로 압수수색한 것을 의외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럴 만도 하다. 지난해 말부터 수사에 들어가 올 1월 김재록 씨를 소환조사까지 하고도 증거를 잡지 못한 검찰이었다. 그래서 일부 언론은 '게이트' 비화 여부를 반신반의하기도 했다. 그런 검찰이 수사 개시와 동시에 재계 서열 2위 그룹을 압수수색했다.

언론 못잖게 놀란 곳이 현대기아차라고 한다. <한국일보>가 "도대체 어떤 사안에 대해 수사를 하는 건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는 김동진 부회장의 말을 전한 것만 봐도 그렇다.

그래서 일부 언론은 현대기아차에 대한 압수수색이 그룹 후계구도와 재계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진단하고 있다.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받는 곳, 그래서 현대기아차 본사와 함께 어제 압수수색을 당한 (주)글로비스의 대주주가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의 아들인 정의선씨란 점, 그런데 공교롭게도 정의선씨에 대한 편법증여 통로가 바로 글로비스로 알려졌다는 점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볼 일이 아니라는 정황도 함께 제시했다. "후계구도와 관련된 사안은 아니다"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 하겠다"는 검찰의 말이 그 하나다(수사를 하기 전에 벌써 수사범위를 제한하는 처사가 옳은지는 논외로 하자). 그리고 또 하나. 언론은 전격 압수수색이 내부 제보 때문이라는 사실도 전했다.


<조선>은 왜 아더앤더슨 인맥을 주목했을까

'김재록 게이트'와 관련 아더앤더슨의 인맥을 주목한 <조선>의 27일자 보도.
'김재록 게이트'와 관련 아더앤더슨의 인맥을 주목한 <조선>의 27일자 보도.
이렇게 보면 검찰이 현대기아차를 '표적'으로 삼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증거 확보에 애를 먹던 검찰이 내부 제보에 힘입어 김씨에 대한 수사 기세를 쥐고자 했던 측면이 크다는 추론도 나온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자. '표적'이 아니란 추론이 '통로'도 아닐 것이란 2차 추론을 낳는 건 아니다. 그 예가 있다.

<조선일보>는 현대기아차 그룹 계열사가 비밀리에 작성한 '정관계 로비 명단'을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검찰이 압수수색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했는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현대기아차는 정관계 고위인사로 가기 위한 '기착역'이란 얘기다.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는 아더앤더슨이다. 이 부문을 가장 소상하게 보도한 곳은 <조선일보>. 김대중 정부 시절 경제 요직에 있었던 강봉균·정건용·김진표·진념씨 등의 아들딸이 아더앤더슨에서 일했을 뿐만 아니라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처조카인 이형택 전 예금보험공사 전무를 비롯해 이용근 전 금융감독위원장, 강운태 전 의원 등이 이 회사의 고문을 지냈다는 게 <조선일보>의 보도다.

<조선일보>가 이 인맥을 중시한 이유는 뭘까? "아더앤더슨이 정부와 국책은행 등이 추진한 부실기업·채권 매각을 대거 수주해 급성장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아더앤더슨이 거대한 인맥에 기대 노른자 사업을 거의 휩쓸었다는 얘기다.

바로 이 지점에서 두 개의 관전 포인트가 만난다. 현대기아차 계열사가 비자금을 조성하고 '정관계 로비 명단'을 작성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인수·합병이다. 법정관리나 워크아웃 상태에 있던 기아차 계열사들을 인수·합병하는 데 비자금을 동원해 로비했다는 의혹이다. 그리고 아더앤더슨은 바로 그런 기업들의 인수·합병 컨설팅을 도맡다시피 했던 곳이고, 바로 그곳에 경제 요직에 있던 인사들과 그 자녀가 몰려들었다.

얼개는 그려지지만 여전히 확증이...

얼개는 대충 그려진다. 문제는 확증이다. 언론이 바로 이 점에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단정을 내리는 언론은 없다. 심지어 보도를 선도하는 <조선일보>조차 퇴로를 열어놓고 있다. 이런 식이다. "고위 관료 자녀들이 아더앤더슨에 근무했다고 해서 꼭 그 부모들이 직무와 관련해 아더앤더슨에 편의를 제공했다고 할 수는 없다."

다른 언론도 상식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관련자로 거명되는 인사들 대부분이 금융 전문가인데 검찰에 잡힐 흔적을 남겨 놓았겠느냐는 의문이다.

상황은 매우 유동적이고 불가측하다. 현재로선 지켜보는 게 상수다. 하지만 '어떻게 볼 것인가'를 제기한 마당이니 '무엇을 볼 것인가'도 마저 짚자.

<세계일보>는 "비정상적인 구조조정과 왜곡된 정책 결정이 없었는지…반드시 검증돼야 한다"고 했다. <한겨레>는 "부실기업 국외매각 정책의 희생양을 찾거나 특정 정치세력을 겨냥한 표적수사라는 의혹 제기도 있다"고 했다.

진단과 당부가 미묘하게 엇나간다. 이게 현실이다. 그래서 더더욱 철저해야 한다. 천문학적인 규모의 혈세를 투입하고도 공적자금 회수율이 60% 안팎에 머무는 작금의 현실이 어디서 기인했는지, 또 '바이 코리아'의 실상이 무엇이었는지를 밝히기 위해서라도 검찰 수사는 철저해야 한다. 전 국민과 한국 경제 전체를 소용돌이에 몰아넣었던 IMF와 그 이후의 전개과정이 아직도 명쾌하게 드러나지 않는 현실을 감안하면 검찰 수사에 대한 주목도는 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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