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록 게이트'와 관련 아더앤더슨의 인맥을 주목한 <조선>의 27일자 보도.
이렇게 보면 검찰이 현대기아차를 '표적'으로 삼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증거 확보에 애를 먹던 검찰이 내부 제보에 힘입어 김씨에 대한 수사 기세를 쥐고자 했던 측면이 크다는 추론도 나온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자. '표적'이 아니란 추론이 '통로'도 아닐 것이란 2차 추론을 낳는 건 아니다. 그 예가 있다.
<조선일보>는 현대기아차 그룹 계열사가 비밀리에 작성한 '정관계 로비 명단'을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검찰이 압수수색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했는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현대기아차는 정관계 고위인사로 가기 위한 '기착역'이란 얘기다.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는 아더앤더슨이다. 이 부문을 가장 소상하게 보도한 곳은 <조선일보>. 김대중 정부 시절 경제 요직에 있었던 강봉균·정건용·김진표·진념씨 등의 아들딸이 아더앤더슨에서 일했을 뿐만 아니라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처조카인 이형택 전 예금보험공사 전무를 비롯해 이용근 전 금융감독위원장, 강운태 전 의원 등이 이 회사의 고문을 지냈다는 게 <조선일보>의 보도다.
<조선일보>가 이 인맥을 중시한 이유는 뭘까? "아더앤더슨이 정부와 국책은행 등이 추진한 부실기업·채권 매각을 대거 수주해 급성장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아더앤더슨이 거대한 인맥에 기대 노른자 사업을 거의 휩쓸었다는 얘기다.
바로 이 지점에서 두 개의 관전 포인트가 만난다. 현대기아차 계열사가 비자금을 조성하고 '정관계 로비 명단'을 작성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인수·합병이다. 법정관리나 워크아웃 상태에 있던 기아차 계열사들을 인수·합병하는 데 비자금을 동원해 로비했다는 의혹이다. 그리고 아더앤더슨은 바로 그런 기업들의 인수·합병 컨설팅을 도맡다시피 했던 곳이고, 바로 그곳에 경제 요직에 있던 인사들과 그 자녀가 몰려들었다.
얼개는 그려지지만 여전히 확증이...
얼개는 대충 그려진다. 문제는 확증이다. 언론이 바로 이 점에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단정을 내리는 언론은 없다. 심지어 보도를 선도하는 <조선일보>조차 퇴로를 열어놓고 있다. 이런 식이다. "고위 관료 자녀들이 아더앤더슨에 근무했다고 해서 꼭 그 부모들이 직무와 관련해 아더앤더슨에 편의를 제공했다고 할 수는 없다."
다른 언론도 상식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관련자로 거명되는 인사들 대부분이 금융 전문가인데 검찰에 잡힐 흔적을 남겨 놓았겠느냐는 의문이다.
상황은 매우 유동적이고 불가측하다. 현재로선 지켜보는 게 상수다. 하지만 '어떻게 볼 것인가'를 제기한 마당이니 '무엇을 볼 것인가'도 마저 짚자.
<세계일보>는 "비정상적인 구조조정과 왜곡된 정책 결정이 없었는지…반드시 검증돼야 한다"고 했다. <한겨레>는 "부실기업 국외매각 정책의 희생양을 찾거나 특정 정치세력을 겨냥한 표적수사라는 의혹 제기도 있다"고 했다.
진단과 당부가 미묘하게 엇나간다. 이게 현실이다. 그래서 더더욱 철저해야 한다. 천문학적인 규모의 혈세를 투입하고도 공적자금 회수율이 60% 안팎에 머무는 작금의 현실이 어디서 기인했는지, 또 '바이 코리아'의 실상이 무엇이었는지를 밝히기 위해서라도 검찰 수사는 철저해야 한다. 전 국민과 한국 경제 전체를 소용돌이에 몰아넣었던 IMF와 그 이후의 전개과정이 아직도 명쾌하게 드러나지 않는 현실을 감안하면 검찰 수사에 대한 주목도는 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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