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반지 끼고안준철
그렇게 아이들과 사랑싸움(?)을 하다 보면 참 행복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왜 아이들과 함께 산에 가면 안 되는지 한 번 따져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 똑같은 아이들인데 담임이 아니라고 이렇게 달라져야 하다니. 아이들에게 전화를 하는 것도 그렇다. 작년에는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한 아이들 뿐만 아니라 반 전체 아이들에게도 한 달이 멀다 하고 집으로 전화를 걸곤 했었는데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전화는 고사하고 아이들에게 전자메일을 보내는 것조차 망설여진다. 어쩌다 메일이 오면 답장을 해주는 것이 고작이다. 그것도 아주 길지는 않게. 작년 한 해 동안 아이들과 주고받은 메일을 출력하면 장편소설 분량의 꽤 두꺼운 책이 한두 권은 나올 성싶다. 가끔 컴퓨터에 들어가 빼곡히 적힌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내어 그들과 주고받았던 얘기들을 뒤적이면 언제 이렇게 많은 메일을 주고받았는지 의아스러울 정도이다.
그렇게 마음을 쏟은 아이들이니 하루아침에 정을 뗀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것이 교직사회의 불문율인 것을 어찌하겠는가. 그런데 아이들이 하필이면 산에 가자고 졸라대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작년에 반 아이들과 자주 산행을 했기 때문이다. 그땐 내가 아이들에게 산에 가자고 졸라대곤 했었다. 담임을 잘못 만나 고생한다고 투덜거릴 때는 언제고 이제는 그 시절이 그립다고 야단을 떨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들으면 섭섭할 말이지만 올해는 담임을 맡지 않으니 정말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담임이 하는 일이 그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로 하루 일과가 한산하다. 거기에 늘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심리적인 압박감까지 보태면 그때가 그립다는 아이들의 말이 내게는 징그럽게 들리기도 한다. 그렇다고 한들 사람이 사람을 그리워한다는 것만큼 값지고 아름다운 일이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