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날, 내 기억의 편린 속으로한지숙
40년 넘게 교직에 몸담으신 어머니는 손재주가 아주 많은 분이었다. 퇴근길에 동대문 시장에 들러 주섬주섬 옷감 몇 가지 사들고 와, "우두커니 텔레비전만 바라보면 뭐하니, 귀로 들으면 되지…"하며 드르륵 재봉틀 돌려 원피스 한 장 뚝딱 만들어 입고 아침에 출근하던 분이 바로 우리 어머니다.
어릴 때 우리 형제들은 어머니 손끝에서 피어난 요술옷들을 입고 온동네를 휘젓고 다녔다. 입 안에서 질겅거리던 껌 속에 갖가지 크레용을 잘게 부수어 무지개 빛 컬러껌을 씹던 그 시절. 내 기억의 편린 속, 집안 구석구석에 흩어진 자잘한 옷감 조각들은 컬러껌의 매력만큼이나 잊을 수 없는 빛깔의 조화다.
그때는 옷감 조각 나뒹굴고 실밥 묻어나는 것이 왜 그리 싫었는지, 게을러서 청소하기 싫어서라기보다 쓸고 닦아도 늘 재봉틀로 무언가 만들던 어머니 취미 덕에 집안은 깔끔할 새 없었다.
하도 잔소리를 해대는 나 때문에 커다란 냉장고 상자에 자잘한 조각들을 슬쩍 꾸겨넣곤 하던 어머니. 요즘의 내 사는 모양새가 그와 크게 다르지 않으니, '엄마 딸 아니랄까봐…' 코웃음치는 언니의 말을 떠올리면 웃음도 나고 가슴 한켠이 뭉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