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중3 만우절, 그 축제 속으로 GO! GO!

벚꽃 축제와 만우절 축제 사이

등록 2006.04.02 12:37수정 2006.04.02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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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3 딸애는 아침에 부스스 눈을 뜨고 힘없이 집을 나섭니다. 어제 인터넷에서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라는 동영상을 보아서 더 마음이 무거운가 봅니다. 지금 고등학교 1학년이 3학년이 되는 2008학년부터 새 입시제도가 시작되니 아무리 조령모개(朝令暮改)식 입시제도라 해도 중3 딸애도 틀림없이 '트라이앵글' 세대가 되겠지요!


딸애는 그 동영상을 보고 눈이 퉁퉁 부었습니다. 그러나 '입시'라는 단어 자체가 숨을 탁 막히게 하므로 아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새 입시정책이 '죽음의 트라이 앵글'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쉽게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학원비 때문에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고, 노래방 도우미를 하는 지금의 학부모들 입장만은 좀 더 들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a 비에 젖은 꽃송이

비에 젖은 꽃송이 ⓒ 한성수

오늘(2006. 4. 1)은 토요일이라 딸아이는 일찍 집에 왔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집을 나설 때와는 달리 얼굴에 생기가 돌고 씩씩합니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집니다.

"신나는 일, 있었니?"
"그럼요. 아버지! 오늘 만우절은 환상이었어요."

지금부터 하는 딸아이의 이야기는 환상입니다. 그러니 어디에 있는 학교인지 파악하려거나 무슨 티끌을 잡아 책임을 물으려거나 재발방지대책을 세우는 등의 행위로 그 환상을 깨뜨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a 창원 내동 벚꽃거리. 4월1일부터 이 곳에서도 벚꽃 축제가 벌어진다.

창원 내동 벚꽃거리. 4월1일부터 이 곳에서도 벚꽃 축제가 벌어진다. ⓒ 한성수

(다음은 딸아이의 구술을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아침 9시에 학교를 들어서는데 친구들의 얼굴에 발그레 홍조가 띄고 있다.
"너희들 가져왔냐?"
"그럼, 당빠(우리에겐 당근은 이미 옛말)지! ㅋㅋ!"
"약속대로 9시에 핸드폰 소리가 울리면, 우리가 동시에 일어서서 선생님께 애교를 떨고 함성을 지르자!"


8시 40분, 첫 교시가 시작되고 친구들의 얼굴에 긴장하는 빛이 역력하다. 설레는 마음에 왜 그리 시간이 느리게 흐르던지…. 드디어 아침 9시! 제일 먼저 내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한다. 영어선생님의 눈길이 내게 꽂혔다. 허걱! 나는 주섬주섬 휴대폰을 찾는 시늉을 하며 일어선다. 그 순간 일제히 울리는 요란한 휴대폰 소리! 교실은 일순 왁자지껄한 음악의 향연이 벌어진다.

"얘들아! 썰렁하고 재미없지? 내 시간에는 그냥 내 수업이나 하자!"


역시 영어 샘은 강하다. 얼굴에는 미소마저 가득하다. 친구들은 하나둘 휴대폰 벨을 끈다. 완존 실패다! 친구들의 표정이 이지러진다.

a 하늘을 덮은 벚꽃무리

하늘을 덮은 벚꽃무리 ⓒ 한성수

영어시간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니 아이들이 난리다.
"12반과 6반은 멋지게 성공했대!"
"정말이야? 어떻게?"

우리학교는 남녀공학인데 남학생 반인 6반과 여학생 반인 12반이 일제히 반을 옮겼다. 6반을 찾은 과학 선생님은 처음에 깜짝 놀라서 두리번거리시더니 태연하게 책을 펼치신다.

"사실 나도 오늘 여학생들과 공부하고 싶었어요! 여러분도 과학 과목과 이 과학 쌤을 얼마나 좋아했으면 이렇게 반까지 옮겨서 수업을 할까? 이 쌤은 완전히 감동 먹었어요!"

아이들은 복에 없는 과학 수업을 꼬박 받아야만 했다. 선생님은 수업 마지막에 두 반 모두 '결과처리'를 하겠다고 말씀하셔서 친구들이 싫은 표정을 짓자 "너희들은 만우절 행사를 하면서 오늘이 만우절인 것을 까먹었냐?"라고 하신다. 아이들은 함성을 지르고 난리가 났다. 역시 우리학교 선생님은 지대(짱)다.

2교시는 우리 담임선생님 과목이다. 우리는 일제히 윗도리를 거꾸로 입고 뒤로 돌아앉았다.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반장의 "렷차! 례경!"소리에 우리는 일제히 거꾸로(뒤통수로) 인사를 한다. 참으로 우스꽝스런 모습이었는지 잠시 선생님께서는 쿡쿡 웃으신다. 그러다가 선생님은 교탁 반대쪽인 교실뒤쪽으로 자리를 옮겨 왔다.

우리는 선생님의 눈길을 피하면서 책을 뒤집어 들고 해당 페이지를 찾을 수 없는 듯이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수업 중에 담임선생님께서는 "3학년 마지막 만우절이니 계획을 잘 세워 실패하지 말고 즐거운 추억을 만들라"며 격려까지 해 주신다. 우리 선생님은 오늘 정말로 간지난다!(미인인 것처럼 보인다)

우리 반도 "3교시 국어 시간에는 기필코 남학생 반과 반을 바꾸어 보자"며 결의를 다진다. 그런데 2교시에 15반에서는 충격적인 퍼포먼스를 벌였다고 한다. 4층이 교실인 15반은 수업시간이 시작될 때쯤 유리창에 신발 10여 켤레를 가지런히 놓아두었단다. 그리고 창문에 '선생님, 죄송해요. 더 이상 저희들은 견딜 수가 없어요!'라고 씌워 붙였다.

깜짝 놀란 선생님이 창밖을 보니 10여명이 운동장에 엎어지고, 자빠져서 죽은 시늉을 하고 빨간 펜으로 얼굴 쪽에는 피 칠갑을 해 놓았다. 선생님도 1교시 사건을 이미 듣고 대책회의(?)를 하신 터라 눈치를 채셨겠지만 혹시나 싶어 4층에서 뛰어내려오셨단다.

그러나 선생님이 도착할 때쯤은 모두 자취를 감춘 뒤였다. 다른 고등학교 언니들이 이미 써 먹은 것을 그대로 따라한 것이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이건 좀 심하다 싶다. 선생님께서 얼마나 당황하셨을까?

a 화려한 창원 대로변 벚꽃

화려한 창원 대로변 벚꽃 ⓒ 한성수

3교시는 드디어 국어시간이다. 수업시작 5분전, 우리 반은 남학생 반인 2반과 반을 바꾸기로 하고 일제히 2반으로 뛰었다. 그런데 2반 남학생은 이미 다른 반과 바꾸기로 했단다. 급히 다른 남학생 반과 교섭을 하는데, 결국 실패다. 그 사이에 수업 시작 벨이 울리고, 우리는 이제 낭패가 났다. 우리는 '음악실', '음악실'을 외치며 음악실로 피신을 했다.

우리 몇은 남학생 화장실에 숨었다. 그러나 다른 곳에 숨은 몇몇은 이미 00선생님께 걸려 벌을 쓰고 있다. 우리도 할 수 없이 남학생 화장실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고, 결국 나도 무릎을 꿇는 벌을 섰다. 처음으로 가 본 남학생 화장실은 냄새가 나고 지저분해서 싫었다.

4교시가 시작될 때 어떤 여학생이 "스쿨 오브 락!"이라고 외치며 복도를 뛰어 간다. 우리는 발로 바닥을 구르며 박수를 쳤다. 또 어떤 애는 "대한민국!"이라고 외쳐 우리는 박자에 맞춰 손뼉을 치기도 했고, 윤도현의 애국가를 소리쳐 부르기도 했다. 드디어 4월 1일 만우절 축제가 끝났다.

우리는 종례시간에 모두 "bye-bye"라고 인사하며 "랄랄라~랄랄라~랄라~랄라라~♪"스머프 노래를 불렀다. 나는 이런 축제가 일 년에 서너 번이었으면 좋겠다. 즐거운 만우절 축제야! 일 년 동안, 안녕! 오늘은 정말 스트레스가 확 뚫린 즐거운 하루였다.

a 다 피지도 않았는데, 비가 와서 떨어진다.

다 피지도 않았는데, 비가 와서 떨어진다. ⓒ 한성수

이 자리를 빌어 아이들의 갑작스럽고 짓궂은 장난에 놀라셨을 텐데도 야단치지 않고 기쁘게 받아주신 선생님들께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사진은 창원대로변과 내동공원-창원기능대학 입구의 벚꽃 사진인데, 오늘 찍었습다. 비가 와서 상인들은 울상인데, 비에 젖은 꽃송이가 더 아릅답더이다. 이곳에서도 진해군항제와는 또다른 벚꽃축제가 4월1일부터 시작됩니다. 진해 벚꽃 구경하시고, 돌아가시는 길에 차를 타고 창원으로 나오시면 대로변에 벚꽃이 장관이랍니다)

덧붙이는 글 | 저의 다음 블로그(기사)에도 올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저의 다음 블로그(기사)에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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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 있는 소시민의 세상사는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싶어서 가입을 원합니다. 또 가족간의 아프고 시리고 따뜻한 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글공부를 정식으로 하지 않아 가능할 지 모르겠으나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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